구포 국수, 다시 부산 대표 음식이 될 수 있을까
구포 국수는 현재 지리적 표시 단체 표장을 2012년 말 특허청에 제출한 상태이다. 부산에서는 이미 기장 미역, 기장 다시마, 금정산성 막걸리, 대저 토마토가 지리적 표시 단체 표장에 등록되어 있다. 구포 국수도 여기에 이름을 올리면 다섯 번째로 부산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등록까지 보통 1년가량 걸린다고 하니 최소 2015년부터는 구포 이외에서 만들어진 국수 제품에 ‘구포’라는 지명을 쓸 수 없게 된다. 구포국수영농협동조합 오성환 대표는 “단체 표장 등록은 오랜 역사를 가진 구포 국수가 사라질 위기에서 다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구포 국수 공장 유치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구포 유일의 국수 공장인 구포연합식품의 곽조길 대표의 각오도 남다르다.
“구포 국수라는 향토 명산물의 이름을 누군가는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면, 3대째 유일하게 구포에 남아 있는 인삼표가 그 역할을 해야지요. 디포리 육수와 현미, 검은콩 등을 넣은 건강식 구포 국수로 젊은 층에게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레시피를 만든다면 ‘구포 국수’ 브랜드를 보다 많은 소비자들에게 알릴 수 있으리라 봅니다.”
거북표 단독 상표에서 출발한 구포 국수는 잉어표, 인삼표, 방울이표, 붕어표, 범표, 광어표, 민어표 등 생산 공장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표장도 하나씩 늘어났다. 그리고 구포를 떠난 이들 업체는 여전히 구포 국수란 명칭과 로고를 사용하고 있다. 구포 국수의 지리적 상표 등록은 궁극적으로 이들 업체를 구포로 다시 불러 모을 것이다. 하지만 야심찬 계획과는 달리 현실은 녹녹하지 않다. 구포역 일대 도심 재개발을 통한 공장 부지 확보는 오를 만큼 오른 부산의 부동산 시세를 볼 때 지방 자치 단체 단독으로 진행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무언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구포 국수집을 찾아가다 보면 아니나 다를까 원조집의 간판을 단 음식점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하지만 원조집은 없다. 난리 통에 찌그러진 양은 냄비는 흉내 낼 수 있을 지언정 그 시절의 절박함과 배고픔이 재현되지 않는 한 원래 구포 국수 맛을 복원할 방법은 없다.
‘구포 국수가 어떤 음식인가. 역사적으로 아픔을 내장한 음식이 아닌가, 동란에 구호품으로 들어온 밀가루 덕분에 구포 일대에 제분 공장이 서고 자연스레 국수집도 하나둘 생기지 않았나. 그런 쓰린 허기를 달랬던 음식을 구포도 아니고, 또 무슨 식재료의 비밀을 간직한 채 몇 대에 걸쳐 가업으로 이어온 것도 아니면서, 구포 국수라고 우기니 환장할 노릇이다.’
(이상섭의 「다시 희망을-구포 국수」 중에서)
소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구포 국수는 구포라는 지명에 방점을 찍기에 망설여지는 점이 있다. 구포의 강바람과 햇빛이 독특한 국수 맛을 만들기는 했지만 맛이란 것이 워낙 시대차가 있고, 개인의 격차가 큰 것이다. 구포가 아니면서 구포 국수라는 상표를 쓴다는 것도 무색하지만 굳이 구포만 되는 이유도 찾기 힘들다. 밀가루라는 이색적인 재료는 이미 대중화된 지 한참이고 멸치 육수로 평준화된 국물 맛에서 원산지를 특정하고 굳이 맛의 차별성을 구별할 필요가 있을런지 의문이다.
차라리 이참에 제대로 된 우리 밀 국수를 이 땅에 다시 번성시켜야 되지 않을까. 그리고 MSG 조미료와 진짜 멸치 국물을 구분 못하는 사람들의 미각을 염려해야 되지 않을까. 국수는 누구나 값싸고 간편하게 그리고 별다른 반찬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한다. 전쟁 통의 절박한 상황이 만들어낸 한 그릇의 밥상, 구포 국수의 생명력은 바로 여기에 있고, 기억되어야 할 것은 국수 한 그릇에도 만족과 포만감을 느끼던 그 시대가 아니겠는가.
취재가 막바지에 이르던 추석 연휴가 임박한 어느 날, 70년 전통의 국수 공장에서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한달음에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달려간 공장은 외견상으로는 처음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안주인은 눈빛으로 2층 건조장에 올라가보라고 빙긋 웃는다. 햇볕이 차단된 작업장인지라 한눈에 알아챌 수 없었지만 부지런히 국수발을 건조대에 널고 있는 작업자의 실루엣이 예전과 왠지 달라보였다. 분명한 것은 조금 건장해 보이는 몸집은 확실히 2대 곽 사장의 것은 아니었다.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바로 곽씨네 국수 공장의 3대 계승자였다. 부산의 모 대학 식품 영양학과를 올 가을 졸업할 이 집 장남이 두 달 전부터 건조실 일부터 가업을 전수받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반갑고 다행인 것은 이 바람직한 젊은이의 키가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는 것이다. 구포 국수는 지금 100년 전통 명가에 도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