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4-20
  • 언어선택
본 영상은 영상입니다. VPN 설치하기 | 윈도우, 안드로이드 ☜ 클릭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지상 최대의 노래방, 사직 구장
구도 부산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 야구팬들
구도(球都) 부산, 그리고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열정을 지닌 롯데 자이언츠 야구팬들. 그들은 이길 때나 질 때나 언제든지 「부산 갈매기」를 부르며 ‘신문지’를 흔들고 ‘봉다리’를 뒤집어쓴다. 야구에 대한 남다른 식견을 가지고 준해설사마냥 선수들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부산의 야구팬들, 롯데 관중들은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하나가 된다. 박수만 치거나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열광적으로 「부산 갈매기」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고 응원단장의 지휘에 맞춰 파도타기도 곧잘 한다.

상대방 투수가 견제구를 던지면 “마! 마!” 하는 소리가 온 천지를 뒤흔들 정도로 일치단결한 모습을 보여준다. 선수 개개인의 응원가 또한 사직의 관중 모두가 알고 있다. 아니, 롯데의 팬이라면 의무적으로 알아야만 한다. 그러니 야구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도 일단 사직에 입성하려면 선수 개인의 응원가 정도는 숙지해야 할 터였다. 이처럼 자신을 내려놓고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외칠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아 사직 구장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마치 사직 구장은 야구 응원의 성지 같은 느낌이다.

이런 열광적인 롯데 팬들 가운데 언제나 우뚝 서서 그들을 지휘하고 있는 한 남자, 바로 롯데 자이언츠 야구팀 응원단장 조지훈(趙智薰)이 그 주인공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합창단을 지휘하고 있는 조지훈 단장, 그리 크지 않은 키와 덩치를 가진 ‘서울’ 남자지만, 별난 부산 아재들을 쥐고 흔드는 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다부진 몸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사직 구장을 다 덮고도 남을 것만 같다.

원래 그는 야구를 좋아하지 않았다. 응원단에 들어가기 전까지 따로 야구를 보러 다닌 적도 없을 정도였다. 다만 아버지께서 가끔 야구를 즐겨 보셨기 때문에 어깨너머로 조금씩 관전 했던 정도. 더군다나 아버지는 롯데와 숙명의 라이벌 관계에 있던 해태의 열성 팬이셨다. 당시 해태에는 선동렬(宣銅烈) 투수와 이종범(李鍾範) 선수 등과 같은 대스타들이 활약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는 그에게 별 흥미를 가지게 하지 않았다.

원래 전공이 체육 쪽이라서 그런지 운동이 물려서, 하는 것도 보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야구라고 하면 물불 가리지 않는 부산에서 응원단장을 하고 있다니… 운명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 보다.

롯데 자이언츠 응원단장으로서 치열하게 살아온 조지훈 단장, 경기 시작 전 팬들에게 큰 절부터 올리는 그는 부산 갈매기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서울 남자 조지훈의 롯데 적응기는 그리 만만치 않은 나날의 연속이었다.

롯데라는 별난 팀의 응원단장이 되다
조지훈 단장은 원래 대학교 때 체육을 전공했다. 우연찮게 같은 과 선배가 학교 응원단을 하고 있었는데, 그 분이 응원단에 들어오지 않겠느냐고 먼저 제안을 해왔다. 말이 제안이지 거의 반강제적으로 응원단에 들어가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조건 한 명씩 데리고 오는 것이었는데, 선배의 눈에 든 사람이 조지훈 단장이었다. 그는 이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응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원래 성격이 소심했던 터라 활발한 응원단은 체질에 맞지 않았다. 훈련의 강도도 높았고 선후배 간의 군기도 보통이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던 중 군대를 다녀온 그는 2001년부터 한화 이글스에서 1년, 기아 타이거즈에서 2년을 응원단장으로 일했다. 그때만 해도 이 길을 계속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단지 등록금을 마련해서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제일 먼저 했었고, 그래서 특기를 살려 응원으로 이른바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었다.

2006년, 처음 부산으로 내려올 때도 그런 마음이었다. 1년간 아르바이트 한다는 마음으로 쉽게 보고 내려왔던 것이다. 그런데 롯데 응원은 쉬운 마음을 먹어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첫째 그 해 성적이 좋지 않았던 탓도 있었지만, 부산만의 응원 문화나 지역 사람들의 성향이 있는데, 그런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일단 롯데에 가서 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부딪혀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 전에는 응원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경기를 꾸며주는 하나의 요소, 일부분으로 생각했었는데 여기는 그게 아니었어요. 사직에서 응원은 경기와 마찬가지였던 거죠. 팬들이 응원에 감정 이입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고 실수도 하면 안 될 것 같았고, 그렇게 시작이 된 거에요.”

처음 롯데 응원단장이 되고 나서는 마음고생이 심했다. 특히 2006년 4, 5월에는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더군다나 서울 남자 특유의 나긋나긋한 말투는 부산 아재들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롯데와 함께한 지 8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처럼 미움 받을 일이 없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를 질책하는 수많은 말들이 잊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는 많이 혼났어요. 팬들한테도 혼났지만 우리 응원단 스텝한테도 혼났어요. 원래 응원 스텝들은 못하더라도 격려를 많이 해주잖아요. 그런데 응원단 스텝들한테도 혼났고, 팬들에게 혼나는 건 다반사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혼났죠. 태어나서 그렇게 욕을 많이 먹어본 건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주로 팬들은 적절하지 못한 응원과, 응원 타이밍을 잡지 못한다고 질책했고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응원을 하지 못한다고 혼을 냈다.

“수비 때 응원을 안 하고 공격 때만 응원하잖아요? 그러면 수비 때 파도라도 한번 돌려야 하는데 왜 안하느냐, 「부산 갈매기」는 왜 안 부르냐, 상대 투수가 견제구를 던질 때 뭐라 해야 하는데 왜 바로 안하고 한 템포 쉬었다가 하느냐, 그렇게 혼나는 것이 하나의 일상이었어요.”

2006년 당시 롯데 야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해 보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으로 인해 선수나 감독에 대한 욕도 많았지만, 시즌 초에는 팬들도 설렘이 있기 때문에 선수, 감독보다는 응원단장에 대한 욕이 많았었다고 한다. 응원단장을 왜 바꿨는지부터 시작해서 서울에서 온 사람을 왜 쓰느냐 등 정말 갖가지 많은 욕을 먹었던 해였다.

게다가 사투리를 전혀 쓰지 못해서 팬들에게 미움을 더 받기도 했다. 지금도 사투리는 잘 쓰지 못하지만 가끔 흉내는 내는 정도다. 아직도 여전히 어색하고 이상해서 생각만큼 잘 배워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롯데 팬들은 사투리를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예쁘게 봐주는 것 같다.

팬들한테도 혼나고, 응원단 식구들한테도 혼나는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당시 구단 담당자가 그에게 많은 힘이 되어주었다. “괜찮다, 잘하고 있다, 열심히 하는데 팬들도 언젠가는 인정을 다 해 주실 거다, 지금 성적이 좋지 않아서 그렇지 계속 바닥만 치지는 않을 것이다”라며 그에게 힘을 많이 실어 주었다. 사람이 칭찬을 받으면 자기 능력 이상을 발휘할 때가 있다고 하는데, 아마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그에게 원동력이 된 것이 아닐까. 그는 스스로 칭찬을 받으면 쑥쑥 크는 타입이라고 말한다.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
롯데 야구하면 빼 놓을 수 없는 응원! 그 중심에 그가 있다. 열정의 아이콘 조지훈! 팬들을 향해 넙죽 절을 하는 그의 모습에서부터 찐한 감동이. 그가 없는 롯데 자이언츠의 응원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롯데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우리의 단장님, 그의 몸짓, 말 한마디에 수많은 롯데 팬들은 하나가 된다. 지는 날의 경기마저도 그와 함께라면 즐겁고 행복하고 감동. 그 파이팅 넘치는 에너지로 롯데 야구와 오래오래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네이버 블로그, 햇살을 닮은 아이-

롯데 팬들이 사랑하는 응원단장 조지훈. 매년 다른 팀으로 떠나지 않을까 선수만큼이나 다른 구단에 뺏기고 싶지 않은 존재. 야구장에 놀러올 수 있게 하는 사람, 아무리 경기가 짜증이 나도 덜 짜증나게 해주는 사람. 아무리 응원이 즐거워도 야구장을 찾는 본질인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응원이고 뭐고 욕만 나올 때, 그런 상황에서도 응원을 주도해야 하는 사람. 자신도 맥 빠질 텐데 그래도 관중들을 움직여야 하는 사람. 팬들에게, 선수들에게 힘이 되려고 하는 사람. 가끔 지친 모습이 안쓰러워 지는 사람. 목소리로 몇 만 명을 움직이는 사람. 우리 조지훈 단장님이시다. 단상 밑 단장님은 항상 수줍어하시지만 단상 위 단장님은 열정의 아이콘이다. 경기가 이기던 지던 항상 팬들을 위해 선수를 위해 응원을 하는 조 단장님. 그대가 있어 경기에 지더라도 덜 화가 납니다! 남을 응원하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네이버 블로그, 시골누렁이-

우리는 롯데의 응원단장을 응원의 화려한 꽃, 꽃지훈이라고 한다. 롯데 자이언츠 응원의 열기는 다른 구장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멋지고 화려하다. 롯데 야구팬들이 한마음으로 응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가 있었기 때문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응원하는 그의 모습에 모두가 박수를 보낸다. 롯데의 멋진 경기를 재미나게 보러 오는 사람도 있지만, 조지훈 응원단장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이끌려서 경기장을 찾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는 오늘도 야구장에서 멋진 모습으로 응원의 꽃을 피운다.

-피오나의 아름다운 이야기 모음(www.zoommastory.com)-

지금은 어느 응원단장보다 팬들로부터 열렬한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는 조지훈 단장, 경기 중간 쉬는 시간마다 팬들이 찾아와 인사하고 음료수를 건네기도 한다. 조지훈 단장의 응원을 보러 야구장에 가는 사람들도 여럿 생겨났을 정도. 그는 이제 롯데 자이언츠 응원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경기에서 지더라도 맘껏 소리 지르며 아쉬움 없이 응원을 했기에 기분이 좋았다고 말하는 팬들도 많다.

그는 인터넷 카페, 롯데 자이언츠 홈페이지의 갈매기 마당, 트위터를 통해 팬들과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새로운 응원 문화를 창출하고, 경기가 끝난 후에는 롯데 팬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끔 뒤풀이 장소까지 방문하면서 같이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이런 그이기에 롯데의 팬들은 응원단장의 팬이 되는 것은 아닐까.

“지금은 저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계신데요, 저를 하나의 롯데 구성원으로 인정을 많이 해주시는 것 같아요. 롯데 가족, 식구로 보시는 거죠. 이 사람은 야구장에 가면 항상 응원을 하고 있는 사람이고, 예전부터 꽤 오랫동안 해왔고 앞으로도 열심히 응원할 사람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생각을 많이 해주시는 것 같아요.”

항상 노력하고 있다고, 잘하고 있다고 칭찬과 격려를 해주는 롯데 팬들에게 그는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런 팬들의 한마디에 그는 다시 한 번 더 겸손해지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는다.

한번은 그가 응원을 하다가 목을 약간 다친 적이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몇몇 롯데 팬들이 조지훈 단장에게 몰려와 ‘앞으로 응원할 날이 많이 남았는데 단장님이 아프면 안 되신다’며 수액도 준비하고 간호사까지 섭외해서 응원단장에게 링거를 맞추었다.

또 2009년 최고의 사랑을 받고 있었을 때, 쉬는 날 지인들과 야구를 하다가 부상을 당해 응원단장 자리를 3주간 비운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조바심이 많이 났다고 한다. 1년간 등록금을 벌 생각으로 부산에 내려왔는데 어느새 정이 많이 들었던 것이다.

“돌아왔을 때 내 자리가 없어지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그런데 어떤 팬들은 병원까지 오셔서 힘내라고 응원을 해주시더라고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한 분 한 분 성함과 얼굴을 다 기억하지 못해서 죄송하고 또 계속해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조지훈 단장, 그런 그의 모습에서 왜 그가 롯데 팬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지 잘 알 수 있었다.

3만이 넘는 관중 앞에서 떨리지는 않을까. 행여나 응원을 하다가 실수하는 일이 있지 않을까. 그러나 조지훈 단장은 스스로 무대 체질이라고 말한다. 무대 밑에서는 조용한 남자지만 무대에 서면 언제나 가슴이 두근대고 설렌다고. “제가 언제 다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설 기회가 있겠습니까. 관중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힘이 나요”라며 그는 환하게 웃는다. 오히려 경기가 끝난 뒤 관중들이 빠져나간 사직 구장을 보면 왠지 허전하고 쓸쓸한 느낌이 들곤 하는데, 그럴 때일수록 다음날 경기 준비에 더욱 몰두하게 된다고 말하는 그, 그는 천성 롯데의 응원단장인 것이다.
8년간 지켜온 롯데 응원단장의 길
롯데 응원단장으로 조지훈 단장만큼 오랫동안 충실히 임무를 수행했던 사람은 없다. 별나다면 별난 팬들 때문이었을까. 롯데는 응원의 보람은 있지만 유독 응원단장들이 견뎌내기 힘들어 하는 팀이기도 했다. 그런 롯데에서 8년을 한결같은 열정으로 응원을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2006년 8월 말쯤 이었어요. 시즌이 거의 끝나갈 때 즈음. 거의 가을 야구로 가는 팀은 정해졌고, 꼴지를 하느냐 마느냐 할 때였어요. 그때도 팬 분들은 야구를 보러 오시잖아요. 그날도 초반부터 계속 지고 있었어요. 초반부터 점수 차는 많이 벌어져 있고. 그런데 후반에 우리 수비 때, 상대방의 병살 플레이를 하나 잡았어요. 그런 상황에서는 그걸 처리한다고 해서 승부에 큰 변화는 없거든요. 잘 처리해도 지는 거고 안 해도 지는 그저 평범한 병살 플레이었는데, 수비 외야수들이 그걸 처리했어요. 그러니까 팬들이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그 순간에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야 정말 팬들이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평범한 플레이도 좋아하는데 선수들이 조금 더 열심히 하고 전력이 더 보강되어서 성적도 좋아지고 그러면 더 많은 팬들이 와서 응원도 해 주지 않을까’ 거기서부터 그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여기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또 어떤 응원을 팬들에게 선보이고 어떻게 좀 더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그때부터 많은 생각을 했다.

사직에서 야구 사랑 외길을 걸어온 부산 사람들을 본 그는 이곳에서 응원과 관련해서 뭔가 꼭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렇게 열정적인 팬이라면, 팬들이 좀 따라주고 내 스스로가 좀 열심히 하면 뭔가 잘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고 그 기대를 실현시키기 위해 지금까지 사직 구장을 지키고 있다.

결국 열성적인 팬들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응원이 오랫동안 그를 사직에 붙잡아 둘 수 있었다. 부산 사람들은 한번 마음에 든 사람은 끝까지 믿는, 의리가 있는 시민들이 아니었던가. 비록 처음에는 많은 욕을 들었지만 성실하고 진지하게 응원을 준비하는 자세, 그리고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한 성격, 항상 겸손하려고 하는 마음가짐 등이 부산 갈매기들의 신뢰를 이끌어내는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잊지 못할 2008년
2008년은 그의 롯데 생활 가운데 가장 잊을 수 없는 한 해로 기억되고 있다. 롯데가 드디어 8년 만에 꿈에도 그리던 가을 야구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당시 응원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가을 야구 진출을 코앞에 두고 연패의 늪에 빠져있어요. 그날도 경기 후반 패색이 짙어져서 응원단장으로서 마음이 무거웠는데, 고맙게도 팬들의 응원이 더욱 커졌던 거죠.”

원래 롯데 팬들은 지고 있다고 해서 경기장을 바로 떠나는 사람들이 아니다. 끝까지 남아서 경기를 관전하고 힘들어 하는 선수들에게 격려를 해 줄줄 하는 진정한 야구인들이 많다. 당시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팬들은 승리를 포기하지 않고 응원을 계속했다. 그 순간이었다. 기적과도 같이 경기가 연장까지 계속되었고 결국 롯데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런 팬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2008년 롯데는 가을 야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때가 가장 기분이 좋았던 때가 아니었을까 하고 그는 회상한다.

“단상에 서는 매 순간이 뿌듯하지만 2008년 가을 야구에 진출했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았습니다. 거의 꼴지를 도맡다시피 하다가 8년 만에 가을 야구를 하게 됐거든요. 야구 구단 중에 팬들의 열정과 응원이 가장 큰 롯데 자이언츠의 응원단장을 맡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이기도 해요.”
선수 개인 응원가의 탄생
‘롯데의 강민호, 롯데의 강민호 오오오오~~ 오오오오~~’

‘롯!데!조!성!환!~ 오오오오오오~ 롯!데!조!성!환!~ 오오오오오오~’

‘자이언츠~ 손아섭~ 승리를 위해 오오~ 자이언츠~ 손아섭~ 승리를 위해 오오’

‘안타 안타 쌔리라 쌔리라 롯데 전준우~ 안타 안타 쌔리라 쌔리라 롯데 전준우~’

‘롯데 황재균~ 롯데 황재균 워어어~ 워어어’

롯데 자이언츠 응원의 진수라고 하면 역시 선수 개개인의 응원가이다. 롯데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선수 응원가는 지금 9개 구단에서 모두 가지고 있을 정도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응원가를 만든 장본인이 조지훈 단장이다.

롯데에서 열정을 한번 불태워 보자 다짐을 한 조지훈 단장은 과연 팬들이 야구장에서 무엇을 좋아하는지부터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관찰을 시작한 결과, 롯데의 응원은 다른 구단과는 좀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직에서는 막대풍선으로 응원을 하지 않고, 맨손을 흔들거나 또는 신문지를 잘게 찢어서 흔들었다. 그리고 박수도 그다지 치지 않고 무조건 큰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 롯데 응원의 특징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산 사람들은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부산갈매기」, 「뱃노래」 등 야구장에는 노래가 끊이지 않았다.

“‘여기는 박수도 아니고, 내 목소리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노래를 불러야 겠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롯데 팬 분들은 야구장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니까. 그래서 선수 개인 응원가를 만들자고 생각했던 거죠. 2006년 시즌 끝나고부터 하나하나씩 시도했습니다.”

다른 구단들도 그 전부터 응원가가 있긴 했지만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 2007년 시즌 이후, 즉 롯데에서 선수 개인 응원가를 만들어 부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렇게 선수 응원가는 시작이 되었다. 그러나 전문적인 음악 지식이 없던 조지훈 단장에게 응원가 제작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음악에 센스가 있거나 최소한 노래를 잘 불렀다면 좋겠으나, 아쉽게도 평소 유행가조차 즐겨 듣지 않았던 그였다.

그래서 일단 무식하게 인터넷을 뒤지면서 음악 듣기부터 시작했다. 맨 처음에는 콘셉트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신 가요 같은 것은 그 당시 생각으로는 왠지 좀 촌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1년 전 최신 가요를 지금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또 나이 드신 분들은 최신 가요를 잘 못 따라 간다는 점도 고려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고 동요를 할 수도 없었다. 전 연령대가 알 수 있는 음악, 우리들 귀에 익숙한 음악이 필요했다.

그렇게 선택한 것이 올드 팝.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친숙하고, 젊은 분들에게는 광고나 예능에서 배경 음악으로 많이 나와서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음악으로는 올드 팝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런 콘셉트로 선수들 하나하나 응원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도 맨 처음에는 팬들에게 혼났다. ‘롯데가 언제부터 선수 개인 응원가를 했었느냐, 선수들한테 그렇게 해주면 건방져져서 안 된다 등등’ 응원가는 만드는 일도 순탄한 여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응원가에 대한 반응이 대부분 좋았고 2008년에는 성적도 올랐기 때문에 이슈가 많이 되었다. 또 때맞춰 롯데에 8구단 처음으로 외국인 감독이 왔기 때문에 그야말로 2008년은 롯데의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음악은 그가 직접 만들지 않는다. 콘셉트 잡는 것, 선곡과 개사는 조 단장의 몫이지만 만드는 것은 음악 감독에게 일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적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응원가의 느낌, 분위기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데 힘이 들었다.

“제가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하니까 음악 감독님으로서는 기도 안찼겠죠. 그렇게 시작을 했는데 지금은 그 감독님하고 일한지도 거의 7년이 되어가네요. 이제는 제가 뭐라고 해도 알아서 잘 만들어 주십니다. 고마우신 분이시죠.”

보통 음악 작업은 야구 시즌이 끝나고 한두 달 지나서부터 시작한다. 12월부터 야구 관련한 응원 준비를 하는 것이다. 4월에 시즌이 시작되기 때문에 12월부터 준비를 해야 여유 있게 새 시즌을 맞이할 수 있다. 1월에는 선곡과 개사를 하고 2~3월에 음악을 의뢰해서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다 끝내 놓는다.

그렇다면 가장 애착이 가는 응원 곡이 있을까. 물론 모든 응원 곡이 다 애착이 간다.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에 더 그러하다. 처음 강민호(姜珉鎬) 선수 응원 곡을 만들었고 2008년 조성환(曺成煥) 선수, 2009년 홍성흔(洪性炘) 선수, 박기혁 선수 등의 응원가를 만들었는데 어느 것 하나 애착이 가지 않는 것이 없다.

선수들 또한 개인 응원가를 상당히 좋아한다. 선수들은 3만 관중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줄 때 큰 힘을 얻는다고 한다. 특히 다른 구단의 선수들이 롯데 선수들에게 부러움을 자주 표현하는데, 그럴 때 마다 선수들이 조 단장에게 고맙다고 말을 한다. 이런 말들이 조지훈 단장에게는 큰 힘이 된다.

요즘엔 선수들이 직접 자신의 응원가를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 손아섭(孫兒葉) 선수의 경우 등장 음악과 응원 곡에 대한 관심이 크고 아이디어도 많이 내주는 편이다. 실제로 2012년 가을부터 손아섭 선수의 등장 음악은 요청에 의해 ‘손아섭~강남스타일~’로 제작해서 틀고 있고, 강민호 선수의 또 다른 응원가 ‘넌 내게 반했어~강!민!호! 뜨거운 조명 속에 빛나고 있는, 넌 내게 반했어, 강!민!호!’도 선수가 직접 제안을 해서 만든 곡이다. 강민호 선수 응원가는 한국 프로 야구 선수 응원가 중에서 가장 중독성 있는 응원가라는 말도 있다.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등장
원정 경기 응원을 다 갔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무리, 서울 잠실 경기만 응원을 간다. 롯데 응원단이 출동하는 날은 상대팀 응원단들이 긴장을 많이 하는 날. 평소보다 신경을 더 쓰는 것 같다. 상대팀 응원단장과는 동료 의식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경쟁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지만 원정 경기에서 마주치는엘지나 두산 팀과는 경쟁 아닌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롯데에는 롯데만의 장점이 있다.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응원이 오히려 더 큰 반응을 이끌어 낸다. 신문지와 주홍색 비닐 ‘봉다리’ 응원이 그 대표적인 것이 아닐까. 적극적인 팬들의 응원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원정 경기에서도 조지훈 단장의 인기는 시들 줄 모른다. 오히려 그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서울의 팬들에게도 그는 이미 인기 스타이다. 왕의 망토를 입고 비장한 각오로 등장한 그가 망토를 벗어 던지는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응원이 시작된다. 멋진 율동과 카리스마 넘치는 멘트로, 원정 경기지만 오히려 롯데 쪽의 응원 열기가 더 뜨거울 정도이다.

2007년 문학 경기장에서는 공식적인 일정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야구를 보러 갔다가 경기 후반부터 롯데 팬들의 응원을 이끌기도 했다. 비록 롯데가 경기를 지고 있었지만 팬들의 응원 열기가 뜨거웠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응원 반주도 치어리더들의 도움도 없이 목소리 하나만으로 롯데를 위해 팬들을 리드한 조지훈 응원단장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이 있었다. 당시 집이 서울이라서 가끔 그렇게 야구장을 찾곤 했지만 지금은 아예 부산으로 이사를 했기 때문에 거의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선수들과의 소통
응원을 하면서 팬들과 많은 소통을 하려고 하는 그는 선수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응원단장으로서 필수적인 요소라고 말한다. 그래서 홈경기 때는 웬만하면 선수들과 많은 대화를 시도하는 편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캡틴’ 조성환 선수를 응원하고 있다고 했다. 유독 롯데는 힘든 순간이 많았는데, 그런 가운데서도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선수이며, 주장으로서 격려의 메시지들을 선수들에게 전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강민호 선수의 경우에는 응원단장으로 롯데 자이언츠에 첫발을 내딛던 당시 갓 신인 티를 벗은 선수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성장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애착이 많이 간다고 한다. 두 선수 말고도 롯데 응원단장으로서 또 롯데 팬의 한사람으로서 모든 선수들에게 애착이 가고, 자신이 그 선수들에게 또는 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부산 사람들은 왜 야구에 그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그는 부산에 내려오기 전부터 부산 사람들의 야구에 대한 열정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고 한다. 부산 사람들이 왜 야구를 그토록 좋아하는지, 조지훈 단장이 생각하는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 롯데 자이언츠에는 팬이 많은 만큼 안티도 많이 있다. 롯데 구단에 대한 불만도 많고 롯데에 대한 반감 또한 만만치 않게 많다. 그렇다고 해서 야구장에 안 오는 것도 아니다. 항상 9개 구단 중에서 예매율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야구 관련 상품이 제일 많이 팔리는 곳 또한 롯데다. 야구 박물관이 서울을 제쳐두고 부산에 건립되는 것도 다 열성적인 팬들 덕분이다. 이런 모든 것들은 야구에 굉장히 관심이 많음을 증명한다.

그는 부산 사람들의 유별난 야구 사랑의 뿌리를 고교 야구에서 찾고 있다. 잘 알고 있듯이 부산고와 경남고는 오랫동안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 두 학교에 더하여 경남공고, 개성고도 야구단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는 동래고에도 야구단이 있었다. 그래서 야구가 부산 사람들에게 친숙한 스포츠가 아닐까. 이것이 부산 사람들이 야구에 열광하는 첫 번째 이유라고 그는 말한다.

한편 롯데는 스타 선수들을 많이 배출한 구단이기도 했다. 한국 야구의 전설, 최동원(崔東原) 투수를 비롯하여 현재 일본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이대호(李大浩) 선수까지 그야말로 한국 야구계의 역사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구단이 바로 롯데 자이언츠이다. 또한 롯데 자이언츠는 삼성 라이온즈와 함께 1982년 프로 야구가 정식 출범한 이후 연고지와 팀명이 바뀌지 않은 유이한 구단이기도 하다.

“롯데는 안티가 그렇게 많은데도 불구하고 팀명이 바뀌지 않았잖아요. 그런 롯데 자이언츠는 부산 사람들의 애증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닐까 해요. 30여 년의 프로 야구 역사 동안 롯데는 정규 시즌 우승을 못했거든요. 그리고 두 번의 한국 시리즈 우승 또한 정말 리그를 좌지우지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을 때 한 것도 아니고, 거의 언저리로 포스트 시즌에 올라가서 선수들의 투혼으로 우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런 드라마틱한 연출들이 팬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것 같아요.”

롯데는 다른 팀들이 다들 한 번씩 해본 정규 시즌 1등을 단 한 번도 한 적 없다. 그런 안타까움, 애증, 기대 이러한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부산 사람들은 야구에 열광하는 것이 아닐까.
한국 시리즈 응원을 해봤으면
한 팀의 응원단장으로서 당연한 것이겠지만, 팀 성적이 좋았으면 하는 것이 첫 번째 바람이다.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열심히 응원할 테니 롯데가 좀 잘했으면 하는 마음이 제일 크다.

“저는 이제 완전히 롯데 팬이 됐어요. 저는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훨씬 적을 거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거든요. 지금 그렇게 느끼고 있는데, 만약 제가 없더라도 팬들이 선수들을 많이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응원 열심히 해달라는 얘기밖에 없죠. 변함없이 야구 사랑해 주시고, 더불어서 경기장에 오셔서 응원도 열심히 해 주시고, 그거면 되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그것만 잘해 주시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죠.”

롯데에 온지 어언 8년이 지났다. 더군다나 타 지역 사람이 응원단장으로 온 것도 처음이고 이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 적도 처음이다. 이제 그는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몇 년 정도 더 여기서 할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올 시즌을 제외하고 2년 정도는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요즘에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딱 10년이라는 타이틀을 채우고 나가자고. 그런데 그 전에 우승이라는 것을 한 번 해봤으면 좋겠어요. 저는 여태까지 8년 동안 있으면서 한국 시리즈 응원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거든요. 이것이 제 소원 중의 하나에요. 한국 시리즈 응원을 한 번 꼭 해보는 거. 우승까지 하면 좋겠는데…”

2013년 올 시즌도 거의 다 끝나간다. 지금 현재 롯데는 9개 구단 중 5위를 달리고 있다. 4위까지 할 수 있는 가을 야구에 롯데도 초청을 받을 수 있을 지 없을 지는 몇 번 남지 않은 경기에 달렸다. 조지훈 단장과 마찬가지로 팬들도 올 시즌에 대한 기대를 아직까지 버리지 않고 있다.

“끝까지 열심히 하는 거죠. 잘 해낼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올해는 힘들게 해서라도 올라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롯데가 가을 야구를 할 수 있도록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다른 팀의 팬들이 가장 뺏고 싶어 하는 응원단장 조지훈, 그는 끝까지 롯데 자이언츠 야구단을 위해 열심히 달릴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관련뉴스/포토 (1)
#태그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