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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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기다림의 미학, 가덕도 숭어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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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 숭어들이
‘가덕도 숭어들이’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항동 외양포 마을에서 행하는 160년 전통 방식의 숭어 잡이다. 가덕도 앞바다는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으로 플랑크톤이 풍부하여, 예로부터 ‘가덕 수로’라 하여 이곳에서 잡은 고기를 최상품으로 쳐 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가덕도 숭어는 봄이 제철인데, 육질이 부드럽고 향긋한 단맛이 일품이어서 임금님 수라상에도 진상되었다고 한다.

겨울 동안 바다에서 태어나 자란 어린 숭어는 무리를 지어 연안으로 몰려와 플랑크톤을 먹으며 점점 커 간다. 특히 한국해양대학교 앞바다에서 다대포 몰운대로 몰려온 숭어가 민물 냄새를 맡고 먹이를 찾아 큰 떼를 이루어 가덕도 등대가 있는 동두말에서 포구나무개→ 큰내끝→ 내동섬으로 이동한다. 예전에는 가덕도 내 이들 숭어들의 이동 경로마다 모두 숭어 어장이 있었으나, 근래에는 다 없어지고 내동섬 어장에서만 현재 유일하게 숭어들이를 하고 있다.

숭어들이에 동원되는 배는 목선 6척이다. 밖목선·안목선·밖잔등·안잔등·밖귀잡이·안귀잡이 등 어장에 배치되는 배의 위치에 따라 그 이름도 서로 다르다. 밖목선과 안목선이 각각 6명, 4명으로 가장 많은 인원이 승선하고, 나머지는 모두 3명 이하다. 총 선원 19명에, 숭어의 이동을 지켜보는 원망(元望)[어로장(漁撈長)]과 부망(副望)[차석 어로장]을 합하여 총 21명이 한 팀이 되어 숭어들이를 한다.

큰 발동선 두 척이 내동섬 어장 근처까지만 끌고 가면 거기서부터 목선들이 노를 저어 어장까지 간다. 소리와 냄새에 예민한 숭어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발동선 기계 소리와 기름 냄새를 내지 않으려는 조처다. 어장에 이르면 원망[원망수]과 부망[부망수]이 자리한 망대에서 내려다보아 안목선부터 시계 방향으로 밖목선→ 밖잔등→ 밖귀잡이→ 안귀잡이→ 안잔등 순으로 어선들을 배치하고 그물을 물에 드리운다. 그리고 숭어가 들기를 기다린다.

언제 올지 모르는 숭어를 기다리는 것은 큰 고통이다. 어쩌면 숭어들이 전체 과정 중 가장 괴로운 시간일지도 모른다. 새벽 같이 출어한 선원들은 모자라는 잠을 자거나 낚시 등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건너편 벼랑 위의 망대에서 내릴 어로장의 지시를 기다린다. 식사 시간에는 그대로 배 위에서 밥을 먹는다. 어로장들의 식사는 안목선에서 망대까지 밧줄로 연결한 도르래로 실어 나른다.

“[어구]봐라!”

망대에서 메가폰으로 전해 오는 어로장의 우렁찬 고함 소리가 긴 기다림의 정적을 깬다. 숭어 떼가 밖목선과 안목선 사이로 들어오고 있으니 선원들에게 그물 당길 준비를 하라는 신호다.

“밖목선 해라.”

“안목선 해라.”

숭어 떼가 그물 속으로 완전히 들어오면 먼저 밖목선과 안목선의 그물을 들어 올려 달아나지 못하도록 뒤를 차단한다. 이어서 옆을 차단하도록 나머지 배들에게도 명령을 내린다.

“안잔등 나온나.”

“뒷배 다 나온나.”

뒷배는 밖잔등과 안귀잡이, 밖귀잡이를 한꺼번에 일컫는 말이다. 이제 모든 배가 있는 힘을 다해 그물을 순식간에 들어 올려 숭어 떼를 그물 속에 가두어 버린다. 어로장의 지시가 떨어지고 불과 20초 만이다. ‘봐라’, ‘해라’, ‘나온나’라는 간결한 가덕도 뱃사람 말이 이렇게 속도를 요하는 일에는 제격이다. 그물이 당겨지면서 팔뚝만한 숭어가 키 높이만큼 펄떡거리며 뛰어오른다. 여섯 척의 배들이 거리를 좁히면서 그물 속의 숭어를 배 위로 건져 내면 숭어들이의 모든 과정이 끝난다.
달라진 숭어들이
아직 바람 끝이 차가운 2013년 4월 어느 날 연초록의 숲길을 헤치고 숭어들이 현장을 찾아 나섰다. 가덕도 최남단인 대항동 외양포 마을은 지금은 차로 갈 수 있지만 교통이 편한 곳은 아니다. 거가 대로를 타다 천성동에 내려 대항 마을까지 가는 길도 꼬불꼬불 고갯길인데, 외양포는 겨우 비포장만 면한 외길로 한참을 오르내려야 닿는 마을이다. 게다가 내동섬 어장은 아예 차를 세워 두고 다시 산길을 30분은 걸어야 할 만큼 외진 곳이다. 우여곡절 끝에 물어물어 찾아간 숭어들이 현장은 의외로 조촐하고 한가하다. 숲 내음과 새소리가 어우러진 봄 숲 사이로 라디오 소리가 울려 펴지고, 중년 이상의 남성 세 분이 바다를 내려다보고 앉아 있다.

차례로 인사를 나눈다. 어로장 김관일, 뒷배 선장 김민효, 그리고 본인을 ‘하자’라는 뱃사람 용어로 소개하다 ‘요리사’로 정정하는 서승학, 알고 보니 그의 정식 직책은 부망이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했더니 한창 바다에서 숭어 떼를 기다리고 있어야 할 목선과 선원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바다에서 망대까지 몇 가닥의 케이블로 연결된 뗏목 세 척뿐이다. 듣자 하니 작년까지 목선 6척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숭어들이를 했는데, 올해부터는 기계식으로 바꿔 숭어가 오면 망대에서 조종하여 자동으로 그물을 들어 올린다고 한다. 뗏목은 바다에 고정되어 있어 중심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할 뿐 특별한 기능을 가진 장치는 아니다. 말하자면 이제 목선과 같은 인력을 요하지 않는 자동화 시스템인 것이다. 가덕도 숭어들이의 특별함은 기계의 도움 없이 목선과 인력으로만 하는 160년 전통 방식에 있었는데, 숭어를 잡는 데는 문제없을지 모르지만, 이제 ‘숭어들이’라고 내세울 수 있을까?

그러나 전통 방식의 숭어들이가 영원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필자를 안심시켜 주었다. 목선을 비롯한 용품이 다 보관되어 있어 당장이라도 해달라고 하면 시연해 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시연과 실제 숭어들이는 다르다. 어로장 어른을 비롯한 숭어들이에 종사하는 어부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적어도 19명은 있어야 되는 선원의 인건비가 너무 높아 늘어나는 경비를 감당할 수 없다. 그나마 19명도 최소한으로, 그 전에는 28명으로 하던 것이 차차 줄어들어, 이제는 부망과 뒷배 선장이라는 직책은 있지만 사실상 원망인 어로장에만 의존하는 3인 체제가 되었다. 말하자면, 현재의 숭어들이에 남아 있는 전통 방식은 어로장 한 사람의 ‘눈’뿐이다.

경비뿐만 아니라, 배에 타려는 선원들이 없는 것도 문제다. 예전에 배 타시던 분들은 모두 고령이라 배를 탈 형편이 못되는 분들이 많고, 거동이 가능하신 분들은 5~6명 정도에 불과하다.

“옛날에는 장인 정신으로 했는데, 시나 구에서 지원이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현재는 힘들어서 옛날의 방식을 고수할 수 없어요. 이제 연세들이 다 많아가지고 ……. 젊은 인부들은 아예 인력 시장에서 사오기도 하고.”

그러나 선원들의 높은 인건비와 인원 부족도 역시 부차적인 문제일 뿐, 본질적인 원인은 숭어 자체가 줄어들어 수익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가덕도 신항이 있다.

“조류가 바뀌면 고기가 안 옵니다. 해류성 고기는 조류를 타고 오는 건데, 흐름 자체가 바뀌어 버리니까 고기가 옛날만큼 안 오는 기라. 신항만이 딱 막고 있어 물 흐름이 안 좋으니까.”

신항 건설 때문에 조류가 바뀌어 숭어가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섬세하게는 숭어가 워낙 예민한 놈이니까 거가 대교 불빛과 차량 소음 등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작년에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적자를 맞았고, 매년 봄마다 하던 숭어들이 축제를 생략한 건 경제적 어려움도 한 원인이 되었다. 이렇게 되자 예전에는 어촌계에서 운영하던 숭어들이도 수지가 맞지 않아 개인에게 어장을 세놓게 되었다. 과거에는 마을 주민들의 협업으로 하고 그 수익도 일정 비율로 나누었지만, 이제 어장주가 어로장 등을 고용하여 숭어들이를 하고, 잡힌 숭어는 모두 어장주가 판매한다.

그렇다면 시스템을 바꾸어 경비를 줄인 올해는 적자를 면할 수 있을까? 아직 숭어들이 초반이라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예년의 패턴에 비할 때 신항이 생기기 전의 절반 이상으로 숭어가 줄어들었으므로 수익성 여부는 아직 불확실하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왠지 위로라도 건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한마디 하는 필자, 그러나 그 대답은 뱃사람답게 무심한 듯이 심플하다.

“그래도 세 분이 앉아서 얘기도 하시면서 라디오 듣고 계시면 심심하지는 않으시겠습니다.”

“고기가 오면 즐겁고, 안 오면 스트레스 받고, 그런 거지.”
어로장이 되기까지
어로장 김관일은 1944년생으로, 고향은 가덕도 대항동 대항 마을이다. 대항에서 태어나 다섯 살에 외양포로 와 40년 넘게 살다가, 다시 대항으로 넘어간 지가 이십 몇 년 전이다. 바다 마을에서 태어난 어부의 자식인 만큼 가난을 이기기 위해 어릴 적부터 배를 탔다. 그 배가 숭어들이 배였고, 지금까지 50년 넘게 바다, 그리고 숭어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옛날에는 다 어렵다 아입니꺼? 겨우 국민[초등]학교만 나와 가지고 배타는 거밖에 더 하겠습니꺼, 못 먹고 살 때니까. 저도 국민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문턱은 갔습니더. 부모가 워낙 재산이 없으니까 중퇴 안했십니꺼. 학비를 내야 다닐낀데, 학비가 없으니까. 그라고 나서 나도 숭어들이 배 탔습니더. 타다가 동네 어촌계에서 망보는 사람들이 은퇴하면 볼 사람이 없으니까 젊은 사람들 중에 연수생을 키우자, 그래가 저도 연수생으로 올라왔거든 예. 연수생을 7년 정도 봤습니더.”

앞서 보았듯, 어로장은 망대 위에서 육안으로 바닷속 숭어 떼의 움직임을 간파하는 직업이다. 그리고 숭어가 완전히 그물 내에 들어왔을 때 메가폰으로 선원들에게 지시를 내려 재빨리 그물로 숭어를 들어 올리는 일을 진두지휘한다. 그래서 ‘숭어들이’이고, ‘어로장’이다. 숭어 떼가 몰려올 때는 바닷물 색깔이 벌겋게 갈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물론 우리 같은 일반인의 눈에도 그것이 간파된다면, 어로장 같은 특이한 직업은 애초에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어로장이 되기 위한 연수 과정 역시 남다를 수밖에 없다.

“저 밑에까지 가서 고기 올라오는가 보고 그러지, 여기 앉아서 배우는 게 아닙니더. 고기 마중 가는 거지, 쉽게 말해서. 원망은 여기 앉아있고 저 짝까지 마중 가서 올라오는가 안 오는가 보고, 고기 따라 올라오고 그런 일이나 하는 거지.”

어로장이 연수생 시절 고기 마중 나갔다던 ‘저 밑’은 숭어 떼의 이동 경로인 ‘포구나무개’와 ‘큰내끝’이다. 그곳에서 숭어가 노는 것을 관찰하다가 숭어가 이동하면 내동섬까지 산비탈 길을 뛰어서 원망에게 알려 준다. 일종의 척후병 역할이다. 이 과정을 통해 물속의 숭어 움직임을 보는 법을 익혔다.

“원망수하고 부망수하고 있고, 저는 연수생으로 들어왔으니까. 그래가 본래[원망] 하시던 분이 나이가 들어서 그만두고 나서, 내가 원망은 못되고 부망으로 들어갔다 아입니꺼. 부망 거쳐서 원망되는 거니까. 그래 있다가 허창호가 부망으로 되고, 내가 원망이 되어가 한 동안 둘이서 봤습니더.”

‘조망(助望)’이라고도 하는 연수 과정을 거쳐 부망이 되고, 다시 세월이 가면 원망이 된다. 앞서는 편의상 ‘어로장’과 ‘차석 어로장’이라 하였는데, 일종의 명예의 차이일 뿐 대우나 급여는 똑같았다고 한다. 김관일 어로장은 함께 연수생을 지낸 허창호 어로장과 나란히 원망과 부망을 하다가, 몇 해 전 몸이 불편하여 2~3년 쉬었다. 그 공백 기간에는 허 어로장이 맡아 했고, 작년부터는 원망으로 다시 돌아온 셈이다.

김관일 어로장은 누구에게 어로장 일을 사사 받았을까. 망대 뒤편에는 역대 어로장 13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다. 역대 어로장의 수를 통해 대략 숭어들이의 역사를 짐작하는데, 어떤 이는 160년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170년이라고 하여 사람들은 흔히 ‘200년 전통’이라고 한다.

“300년은 안됐을 겁니더. 옛날 왜놈들 오기 전에 했다고 하거든. 왜놈들 와서는 여기서 못보고, 저 밑에서 세워 놓고 봤다고 하거든. 왜놈들이 이 산에 한국 사람들 출입을 못하게 했다 안 합니꺼. 그렇게 계산하니까 한 200년이라는 계산이 나오지예.”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이니 대략 2백 년이나 된다. 열세 분의 역대 어로장 중 11대 김성관, 12대 주평원, 13대 구삼석 어로장은 김관일 어로장도 아시는 분들이라 한다. 특히 구삼석 어로장은 현 어로장과 원망-부망의 관계로 직접적인 스승이다.

숭어들이 철이면 이들 역대 어로장 제사도 지내고, 배에서 풍어제도 지낸다. 고사 날짜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선원들이 임의로 좋은 날을 받는다. 그러나 규모가 대단하거나 절차가 엄격한 건 아니고, 오늘 모인 3명의 어부들 말로는 ‘그냥 술이나 한잔 올리는 것’이란다.

“그냥 저녁 먹을라고 하는 거지 뭐.”

“본래는 선원들 먹일라고 하는 거지. 옛날에 먹을 거 없고 할 때 돼지나 한 마리 잡고 하면 큰 거 아이요? 선주하고 선원들 회식으로.”

농담처럼 툭툭 내뱉는 뱃사람들의 말투에 한바탕 크게 웃는다. 그러나 알려진 바에 의하면 산신과 여서낭, 그리고 역대 어로장에게 지내는 나름의 의미를 가진 어촌계 주관의 고사가 있었다. 백설기와 흰밥[메], 과일, 마른 명태와 나무새, 그리고 술뿐인 간단한 고사상이지만 음복에는 돼지까지 잡았다. 여서낭 제단에는 따로 가위, 칼, 화장품, 실패 따위의 여성 용품이 든 플라스틱 바구니와 흰 여자 고무신 한 켤레를 오색 깃발의 서낭기와 함께 진설하였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부들의 이러한 시큰둥한 농담에는 세상의 지나친 관심에 따른 피곤함도 한몫 하였다. 예전처럼 연일 만선이면 없는 얘기라도 지어내어 해주련만, 가뜩이나 맨날 빈손이라 울상인데, 이방인들의 호기심이 마치 동물원 원숭이 취급하듯 김치 한 사발 두고 먹는 밥그릇까지 찍어 가고 있다. 움칫하는 필자를 보고는 오늘은 어차피 글렀으니 괜찮다며 또 한바탕 웃었지만, 경황없이 산길을 올라오느라 알사탕 하나 못 사들고 온 빈손이 자꾸만 오그라든다.

지금이야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예전 숭어들이 재미가 좋을 때는 어로장의 지위가 꽤 높았다.

“숭어들이 배 탈라 카믄 이런 어르신들 집에 가서 똥·오줌 안 퍼주면 안 돼. 지금은 그런 것도 없다.”

요즘 같으면 ‘촌지’의 의미가 ‘똥·오줌’이라니, 청탁치고는 정감 있다.

“옛날에는 어로장의 후보가 몇 있어서 연습생으로 있으면서 어로장이 되고자 노력했지만, 현재는 연습생이 없지.”

가덕도 숭어들이, 이방인인 필자가 보기에는 당장 내년을 보장 못할 것 같은데, 웬일인지 정작 이들 어부들은 느긋하다.

서낭기 휘날리던 시절도 옛말
가덕도 숭어들이는 3월에서부터 6월까지 봄철에만 행한다. 어부들은 토·일요일 없이, 새벽 3시에 집에서 일어나 이곳 내동섬 어장으로 출근하고, 저녁 5시에 퇴근한다. 숭어들이철 중 한창 많이 잡히는 시기는 하루에 4~5번씩 그물을 들어올리고, 비수기라도 2~3번은 들어올린다.

“만 마리면 우리가 하는 말로 10접이라 카거든? 백 마리가 1동, 천 마리가 1접, 만 마리는 10접 아입니꺼? 10접은 옛날에 서낭기를 달았습니더.”

예전 많이 잡을 때는 한번에 2만 마리도 잡았다. 2만 마리를 잡으면, 당시는 판로가 널리 확보되어 있지 않아 1만 마리만 판매처에 넘기고, 나머지는 다시 살려 주기도 했다. 제한된 판로와 구매력으로 인해 1만 마리 정도를 넘어서면 그만큼 숭어 값이 내리막을 치기 때문이다. 어부들의 입장에서는 이럴 바에는 1만 마리를 초과한 경우는 그만큼은 살려 주고 내일 다시 잡는 게 낫다. 또 만약 한 번 그물질에 1만 마리를 잡으면, 그 날은 그물을 두 번, 세 번 들어 올릴 필요 없이 그걸로 당일 숭어들이는 끝낸다.

“당시에는 여기까지 직접[상인들의] 차가 와서 받아 갔던 것도 아니고, 우리가 배로 부산까지 싣고 가서 팔고 그랬거든요. 그러다보니까 배로 싣고 가는 데도 한계가 있고, 차가 올만한 데도 못되고 하니까, 더 이상 잡아 봤자 소용이 없는기라."

일부 상인이 숭어를 받으러 가덕도에 오기도 했지만, 대개는 배로 부산 자갈치까지 직접 실어 날랐다. 어촌계에 발동선이 3대 있어, 1대에 1,500~2,000마리씩 실으면 당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양이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상인들이 가덕도까지 직접 온다. 가덕 대교와 거가 대교가 가설되고 난 후로는 고기 잡았다는 연락만 하면 전국에서 차들이 대항에 집결한다. 과거처럼 횟집에서 알음알음 오는 것이 아니라, 도매상에서 오기 때문에 너무 많이 잡았다고 버릴 필요가 이제는 없다. 물론, 과거처럼 만선을 하기 힘들지만.

“고기 잡으면 한 시간 반, 두 시간 만에 여기[상인들] 차가 다 도착한다. 우리가 고기 잡으면 대항까지 나와 가지고 배에서 퍼다 싣고 하는 시간이 한 시간 정도 걸리거든. 좀 마이 잡으면 여기서 두 시간 소비되고, 차가 오는 시간이 한 시간 반, 그러면 얼추 시간이 맞아지지.”

과거에는 선원들과 마을 어촌계가 경비를 제하고 5:5로 수익을 나누었다. 그 후 선원들의 수익이 너무 적다는 불만이 있어 8:2로 조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선할 사람이 별로 없어, 어촌계가 개인에게 어장을 넘겼다.

신항 건설 전 한창 때는 한 해 어획고가 6억 원에 달한 적도 있었다. 그 시절에는 어촌계에 수익 50%를 넘겨주고도 선원들이 다른 일보다 훨씬 수입이 많았기 때문에 다들 숭어들이 배에 타는 것을 선호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옛날 일일 뿐이다.

“옛날에는 숭어만 잡아가지고도 자식들 교육시키고 다 했겠습니다? 그런데 1년에 3~4개월 일하면 나머지 8개월은 뭐합니까? 다들 모여서 노름도 하고 그랬습니까?”

“그때는 노름도 많이 했십니더.”

“하또[화투]? 하또 말도 하지 마이소. 이 갈립니더.”

농촌이나 어촌이나 비수기의 모습은 다들 비슷한 모양이다. 한때는 이 갈릴 만큼 심각했을지도 모르겠으나, 지금은 한바탕 웃음거리일 뿐이다.

“비수기 때는 농사짓습니까?”

“여기는 농사도 짜다라 없습니다. 배도 타고……, 농사짓는 사람도 일부 있겠지.”

“그럼 숭어들이가 전업이었습니까?”

“옛날에는 그랬지. 그런데 인제는 끝났지, 숭어들이도. 요새는 다 자기들 잔 어업하지. 이거 해가지고는 생활이 안 되는데 뭐.”

여기나 저기나 이래저래 씁쓸한 가덕도 개발의 잔상이다.
변해 가는 가덕도, 숭어들이의 미래는 …….
요즘 가덕도에서는 언제나 신공항 문제가 뜨거운 화제다. 숭어들이 얘기를 하다 보니 신항 얘기가 나왔고, 이어서 신공항 얘기가 나오는 건 마치 예정된 수순이다. 역시 예상대로 의견이 분분하다. 망대에 모인 세 사람의 어부에게 듣기로는 가덕도 주민들은 대체로 신공항을 환영하는 분위기란다.

“어차피 변하기 시작한 동네, 인자 바다가 오염되어가 돈도 안 되고 …….”

기대 반 체념 반이라지만, 체념 쪽이 더 크다. 그러나 분명히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신공항 유치 찬성·반대의 의견을 각각 내었는데, 어로장 어른은 좀체 말씀이 없으시다. 따라서 중립까지 각 1표로, 이 소집단에서도 의견이 팽팽하다. 반대 쪽 얘기를 들어보자.

“그래도 나이 묵어가 여 있는 게 제일 좋소. 고향이 좋고, 옆에 아는 사람 있는 기 좋지. 혼자 도시 생활 한 번 해봐라. 아파트에 갇혀 갖고……, 나는 반댑니다. 내가 앞으로 얼마나 어업을 하고 살지 모르겠지만, 학꽁치라든지 숭어·전어 이런 거 주로 잡는데, 신공항 들어섰다 하믄 또 줄어들어서 망하는 기라.”

가덕도 개발의 가속화에 따라 어획량이 줄어, 어업은 결국 고사되고 말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다. 신항의 학습 효과다. 열변이 이어진다.

“그러면 폐업을 받아 줘야 되거든요. 더 이상 몬하겠다 하면, 그 사람은 폐업을 받아 줘야 되는데, 몇 년간 보상을 해줘야 돼서[해당 관청에서] 그걸[폐업 신청을] 안 받아 준다고. 이럴 때는 교수들이 역할을 해줘야 되는데 ……. 예를 들어서, 여기는 진짜 채산성이 없다, 이렇게 되면 안에 있는 어업들은 다 죽는다, 뭐 이런[예상] 평가가 나와야 되는데, 괜찮다는데 뭐. [고기가] 온다는데 뭐. 오기야 오지, 수가 적어서 그렇지.”

누군가에게는 설렘이요, 또 누군가에게는 불안일 뿐인 가덕도 개발, 그 속에서 160년 전통의 숭어들이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가? 끝으로, 어로장 어른께 여쭙는다.

“내년에도 숭어들이 하실 거죠?”

“계속 하게 할 겁니더. 저는 은자 나이가 많으니까 나는 물러나는 기고, 이 마을에서는 이거 안 하믄 할 기 없다 아입니꺼.”

시간이 많이 지났다. 연초록의 나뭇잎이 어느덧 짙푸른 녹음으로 변한 지도 한참이다. 불볕더위를 피해 저녁을 드실 즈음 어로장 어른께 전화를 드린다. 작년에 적자를 보았다는 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숭어들이가 올해는 어땠는지 몹시 궁금했다.

“마이는[많이는] 못 잡아도 조금 잡았습니더. 숭어들이 끝나고 그냥 집에 놀고 있다 아입니까."

언제나 별 말씀이 없으신 어로장 어른, 최소한 적자는 면했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좋을까? 그렇다면, 전통 방식이 아닌 것은 애석하지만, 적어도 어른이 계시는 한 숭어들이는 계속될 것이고, 비록 재연이나마 원형 그대로를 볼 수 있겠구나! 나도 모르게 그만 한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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