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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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태양의 후예’ 재방송을 발견했다. 올 봄에 이 드라마가 TV에서 상영되었을 때 안 보고 있었지만 워낙 유명해진 드라마라 말은 많이 들어 봤다. 송중기와 송혜교가 나오는 것을 알면서, ‘풀하우스’ 때부터 송혜교의 팬이었음에도 난 바빠서 보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평일 밤이기도 하고 집에서 별로 할 게 없어서 더 이상 채널을 돌리지 않고 그냥 놔두기로 했다. 첫 회 재방송이었다. 앞부분 몇 장면만 보고 집안일을 하려다가 결국 그날 저녁 4회분을 단숨에 봐버렸다. 1회 차는 1시간 분량이니 다른 일도 못하고 4시간을 TV앞에서 보낸 거였다.

사실 한국 드라마를 본 지 오래 됐다.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 한국말도 공부할 겸 문화에 좀 더 적응하기 위해 친구들과 자주 즐겨 봤는데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이니 뭐니 쉴 새 없이 바빠져서 TV를 많이 안 틀게 되었다. 재미있는 드라마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없는 시간을 내서 볼 만큼 재미있는 드라마가 없었던 것 같다. 직장생활을 했을 때 본 드라마가 딱 하나, ‘드림하이’였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도 몇 명이 나오고 드라마 줄거리 자체가 재미있어서 봤다. 그 다음으로 정말 마음에 든 드라마는 같은 직장인으로서 정말 공감이 갔던 ‘미생’밖에 없었다. 요새는 정말 재미있고 잘 만든 미드가 워낙 많이 나와서 한국 드라마에 아예 등을 돌렸다. ‘태양의 후예’는 뜻밖의 예외가 됐다.

‘태양의 후예’ 단점부터 말하자면 어쩔 때는 억지로 꾸민 상황이나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운 대화, 유치한 엔딩 등이 다른 한국 드라마와 비슷한 면이 많다. 의사와 군인이라는 직업을 억지로 띄워주는 장면도 번번이 나오고 불법 운송을 위해 다이아몬드를 삼키는 장면처럼 다른 영화에서 백 번 넘게 사용해 온 상투적인 스토리 포인트들도 헛웃음을 불러일으킨다. 최종회 마지막 장면은 유치하기 짝이 없고 삼성이 큰 돈 들여서 자기 핸드폰과 결제방식을 광고 하는 것도 뻔히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엄청나게 유명해졌다. 과연 그 비결이 뭘까.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동남아, 심지어 러시아까지 알려졌다. 2016년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지만 벌써 ‘2016년 최고의 드라마’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우선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다. 재벌2세와 가난한 서민 여자처럼 현실에서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오랜만에 일반인 두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사랑의 이야기니 시원하기도 하다. 물론 설정 자체가 판타지이지만 말이다. 여자 주인공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자라면서 어느 날 돈의 가치도 모르는 재벌 2세 아들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진다는 스토리는 현실에서 만나 보기 어려운 상황이니만큼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이미 이 주제로 찍은 한국 드라마가 아마 1천 개는 넘었을 거다. 그래서 돈이나 사회 신분으로 인한 사회 문제와 관련된 내용이 전혀 없는 ‘태양의 후예’는 수많은 비슷해 보이는 패턴 중에서 속이 시원하게 보인다.

현실을 보여 주는데도 현실을 피하는 독특한 줄거리도 재미를 더해 준다. 대부분 사람들이 전혀 낭만적인 면이 없다고 생각하는 군인과 의사의 직업을 멋있게 보여 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식상하고 누가 봐도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 뚜렷하지만 왠지 멋있게 보이게 하는 것도 작가들과 연출팀의 능력이다. 실제로 군대에서 절대 안 쓰는 주인공의 특이한 말투도 빨리 유행어가 된 것도 그 이유다.

그리고 캐스팅이 잘 된 것도 유명해짐의 이유가 된 건 당연하다. 만약에 유시진역과 강모연역에 송중기와 송혜교가 아닌 덜 유명한 배우들이 섭외됐다면 어떻게 됐을지 의문이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영화나 TV 작품 인기의 절반은 잘 된 캐스팅이다. 스토리와 특수효과나 아무리 좋아도 거기에 주인공 역할을 유명한 배우가 맡으면 성공할 확률이 배로 올라간다. ‘태양의 후예’가 40% 넘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시청률에 도달한 것도 송중기와 송혜교의 몫이 크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요새 한국 드라마를 잘 안 보는 나에게도 ‘태양의 후예’가 본 것 중에 진주 같은 작품이 됐다. 검색창에서 드라마 정보를 찾아 보니 ‘드림하이’를 만든 같은 연출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역시 내가 이 감독관의 작품이 마음에 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앞으로 어떤 작품으로 돌아올지 기대된다.
이 글을 쓴 일리야 벨랴코프씨는 러시아 출신으로 현재 방송인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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