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4-26
  • 언어선택
[데일리 엔케이 ㅣ 김가영 기자] 북한 김정남 피살 사건의 배후로 ‘정찰총국’이 지목되는 가운데, 범행 뒤처리가 소위 정찰총국 ‘작품’ 치고는 상당히 허술해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곳곳에 감시카메라(CCTV)가 설치된 공항을 범행 장소로 택한 것부터, 용의자들이 범행 장소 근처에 있다가 체포된 것 모두 치밀하기로 유명한 정찰총국식(式) 공작 수법에서 크게 벗어난다. 범행 ‘흔적’을 완벽하게 지우지 못한 건 북한의 실수였을까, 아니면 계획된 전략이었을까.
◆ 여성 용의자 둘, 순순히 잡힌 이유?
김정남에 직접 독극물 공격을 한 베트남 국적 도안 티 흐엉과 인도네시아 국적 시티 아이샤는 각각 사건 이틀과 사흘 뒤 범행 장소였던 공항에 다시 나타났다. 이들은 현장을 수색 중이던 현지 경찰에 즉시 체포됐다. 공항에 나타나기 전에는 인근 호텔에 투숙 중이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용의자들의 어설픈 대처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실수’냐, ‘고의’냐로 분석이 나뉜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22일 데일리NK에 “보통 북한은 타깃을 암살한 후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암살자 역시 죽인다”면서 “해외 여성들을 고용해 김정남을 순식간에 암살하는 건 성공했지만, 용의자들을 신속히 대피시키지 못한 건 뒤처리 실수”라고 평가했다.

북한 대남 공작 문제를 추적해온 바 있는 한 대북전문가도 “제3국 사람을 고용해 암살한 건 그만큼 북한 소행임을 감추고자 한 것일 텐데, 용의자들을 도주시키거나 은폐시키지 못한 한계를 드러냈다”면서 “테러(암살) 방식을 청부로 새롭게 바꾼 것 같은데 이후의 수습 과정을 보면 치밀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북한 소행이란 의혹을 없애기 위해 고의로 외국인 용의자들을 노출시켰다는 관측도 있다. 유 원장은 “북한이 여성 공작원을 현지화시키는 대신 아예 외국인 여성을 포섭한 걸 보면 이번 사건을 북한과 연계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은 한 것 같다”면서 “여성 용의자들을 숨길 수 있었음에도 굳이 노출시킨 건 ‘북한 공작원’ 소행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일각에선 여성 용의자들이 해당 범행이 ‘살인’인지 몰라 신속히 도주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 이들은 수사 과정에서 ‘장난인 줄 알았다’ ‘예능 방송 촬영으로 알았다’고 진술한 상태. 하지만 현지 경찰은 여성들이 범행 전 머리를 자르는 등 변장을 한 것과 독극물 공격 직후 화장실로 달려가 손을 씻은 정황 등으로 볼 때 ‘철저히 계획된 범죄’라고 보고 있다.
◆ 北국적 리정철, 왜 남겨뒀나
북한 국적 용의자 4명이 사건 직후 평양으로 도주한 가운데, 또 한 명의 북한 국적 용의자 리정철만 현지에 남겨둔 이유에도 관심이 쏠린다. 리정철은 지난 17일 밤 공항 근처 아파트에 아내와 두 자녀를 데리고 은신해 있다가 체포됐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리정철을 남겨둠으로써 오히려 ‘우리는 결백하다’는 주장을 하려는 의도라 분석했다. 대북 전문가는 “리정철까지 도주한다든가 혹은 자결을 하면 명백히 북한 소행이라는 게 증명되니 차라리 끝까지 시치미를 떼는 전략을 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특히 “이렇게 리정철에게 ‘모르쇠’로 일관토록 한 건 그에게서 ‘공작원’ 흔적을 발견할 만한 게 없다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리정철은 전문 공작원 훈련을 받지 않고 의학 전문가로서 작전에 참여한 것으로 본다”고 관측했다.

유 원장도 “리정철은 외국인 노동자 신분으로 와 있는데 이 사람까지 도주하면 ‘북한 배후설’이 더 부각되지 않겠나”라면서 “암살 총책들은 모두 평양으로 돌아갔으니, 리정철에겐 현지에서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수습하는 역할을 맡겼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유 원장은 “(북한 국적) 용의자들이 (공항까지) 탔던 차가 리정철 명의로 돼 있었다는 게 파악되면서 결국 꼬리를 잡힌 셈”이라면서 “이건 뒤처리를 잘못했다고 봐야 한다”고 부연했다. 그는 또 “리정철은 현지 상주 공작원으로, 신분을 위장한 채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범행 장소로 공항 택한 의도?
북한이 굳이 수십 대의 CCTV가 설치된 공항을 범행 장소로 택한 이유는 뭘까. 쿠알라룸프르 공항 CCTV에는 김정남이 피살되는 장면은 물론 평양으로 돌아간 북한 국적 용의자들 얼굴까지 고스란히 담겼다.

정찰총국서 25년간 근무한 경력의 한 고위 탈북민은 “보안이 잘 돼 있고 언제든 무장경찰이 달려올 수 있는 곳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건 상당히 이례적”이라면서도 “타깃이 김정남이었기에 이런 전략을 썼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설령 아무도 모르게 암살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사망자가 김정남이라는 게 밝혀지면 전 세계가 북한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면서 “일부러 암살도 청부 방식을 택하고 뒷수습도 허술하게 해 ‘설마 북한일리 없다’는 인상을 심으려 했던 것 같다. 용의자 도주도 신경 못쓸 정찰총국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관련뉴스/포토 (12)
#태그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