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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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왼쪽부터),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24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제4회 박태준 미래전략연구포럼’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ㅣ 황정환/구은서 기자] ‘시대의 지성’으로 불리는 4명의 학자가 24일 ‘더 나은 한국 사회로 가기 위한 길’에 대한 고민을 한자리에서 풀어놨다. 탄핵 정국 막바지를 맞아 혼돈이 더욱 커지는 상황에서 나온 한국 사회에 대한 외침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광장은 넉 달 동안 촛불과 태극기로 갈려 있다. 이런 식이면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과를 내놔도 적지 않은 후유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80),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80), 송호근(61)·장덕진(51)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박태준미래전략연구포럼’에서 시민들의 의식 변화를 통해 이번 사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질주의에 갇힌 유일한 나라
장 교수는 ‘데이터로 본 한국인의 가치관 변동’을 주제로 발표했다. 주요 국가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추이에 따른 가치관 변화를 비교·분석한 통계적 연구다.

이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국가는 경제성장과 가치관 변화 간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명목 GDP가 낮을수록 경제성장, 권위주의적 정부 등 ‘생존’에 필요한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보였다. 명목 GDP가 높아지면 성적 소수자, 환경 보호, 양성 평등 등 다양한 가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은 1981년부터 1996년까지 명목 GDP상으로 무려 7배 정도의 경제성장을 이뤘음에도 가치관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연구는 1981년부터 공통의 질문지로 100여개 국가의 가치관을 비교한 로널드 잉글하트의 ‘세계가치관조사’를 참고했다. 장 교수는 “해외 사례를 보면 경제성장에 따라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강화되다가 일정 시점이 지나면 민주의식이 발전한다”며 “한국 사회는 이런 보편적 패턴을 따르지 않은 유일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라고 분석했다.

송호근 교수는 이런 현상의 원인을 “한국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신뢰와 관용에 기반한 ‘공민(公民)’이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한국 사회는 시민운동으로 민주화를 이뤘지만 이후 각계각층에서 쏟아진 다양한 요구를 정치권이 제도화하고 조정하는 데는 미숙했다”며 “노동과 복지가 선순환하는 제도가 갖춰져야 시민들이 공동체에 대한 연대감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송복 명예교수 역시 “한국 사회는 효율성 위주의 산업화시대 성공모델의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사회 불평등의 해소를 위해선 기득권의 양보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복지 정치는 고소득층의 임금 양보에서 시작한다”며 “귀족노조 등의 임금 양보는 기업의 지불능력을 키워주고 이는 곧 고용 증대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는 “고용증대는 세수를 늘리고 이는 복지 혜택으로 변해 사회 구성원에게 혜택으로 돌아간다”고 덧붙였다.
◆“분열 조장해선 안 돼”
석학들은 포럼에 앞서 탄핵정국에 대한 견해도 내놨다. 보수 원로인 송 명예교수는 “박 대통령이 자진 하야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는 “헌재가 탄핵을 기각한다 해도 원로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설득해 명예로운 하야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질서 있는 퇴진이나 이원집정제 등 여러 가능성이 있었다”며 “자진사퇴의 적기를 놓쳐 통합의 기회까지 잃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집회를 통한 정치 참여를 긍정하면서도 분열에서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명예교수는 “광장의 분열은 법과 제도의 미비가 낳은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는 “새로운 지도자는 국가의 분열을 줄일 법제 개편에 나서야 한다”며 “더 나은 사회란 더 인간적인 사회로 인간성의 회복, 포용, 분열로 인한 혐오의 극복이 필요하다”고 했다.

송 교수는 “광장에서 시민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건 자연스럽고 정당한 일”이라면서도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인들이 광장 정치로 분열을 조장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 명예교수는 “광장의 민주주의는 결과적으로 한국 정치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더 나은 한국 사회를 위해 다 같이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지도자에겐 분열상을 수습할 ‘시대정신’을 요구했다. 송 교수는 “탄핵의 결과가 어떻든 촛불과 태극기로 나뉘어진 광장에선 전쟁에 가까운 폭력이 예상된다”며 “배제의 정치, 보복의 정치라는 한국 지도자의 특질에서 탈피한 포용의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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