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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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26일 홍콩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가 북한의 수학 영재 리정열군이 홍콩을 통해 한국으로 간 탈북과정을 소개했다.
[Korea.net] 1997년 홍콩 주권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홍콩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 탈북자는 없었다. 2016년 7월 17일 리정열군이 무모할 정도로 용감한 계획을 실천하기 전까지 말이다.

홍콩의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 이하 SCMP)는 지난 2월 26일 '수학 천재 탈북자가 홍콩을 통해 탈출한 방법(How North Korean maths-whizz defector escaped through Hong Kong)'이라는 제하 리군의 탈북기를 자세히 다뤘다.

SCMP에 의하면 리군은 북한 대표로 홍콩에서 열린 제57회 수학올림피아드 대회에 출전해 대회를 마친 7월 17일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홍콩과학기술대학교(Hong Kong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기숙사를 빠져 나와 택시를 타고 홍콩국제공항으로 향했다. 한국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공항에 도착한 그가 한국 항공사 카운터에 있던 직원에게 자신이 북한 사람이며 한국에 가고 싶다고 밝히자 직원은 홍콩의 한국 총영사관에 전화를 연결해주었다. 외교관이 직접 탈북에 개입할 수 없다는 원칙 때문에 그는 다시 한번 스스로 택시를 잡아타고 도심 쪽에 있는 총영사관으로 가야만 했다.

무사히 영사관에 도착한 그는 두 달간 중국 당국의 허가를 기다렸다. 게임기와 운동기구로 시간을 보내며 첫 한 달간 거의 입을 열지 않았던 그는 조금씩 영사관 직원들에게 마음을 열었다고 한다. 지난 9월 24일 리군은 비로소 새 여권과 비자를 받아 한국에 갈 수 있었다.

당시 18세였던 리군에게는 홍콩에서 열리는 수학올림피아드에 출전해 북한을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한 해가 더 지나면 더 이상 대회에 나갈 수 없는 나이가 되기 때문이다.

여권을 반납하고 스마트폰 사용은 금지 당한 채로 인솔 교사의 감시를 받아야만 했고 탈북을 하다 발각되면 그와 그의 가족이 위험에 처하게 되지만 그는 자유를 향한 마지막 가능성을 놓칠 수 없었다.

그의 계획은 대담하고 무모했지만 즉흥적인 것은 아니었다. SCMP지는 그가 이미 홍콩 대회에 참가하기 전부터 탈북을 결심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2014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2015년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린 수학올림피아드 대회에서도 북한을 대표로 은메달을 수상한 리군은 그곳에서 만난 한국 학생들을 통해 남북간의 차이를 느꼈다고 한다. 또한 북한 강원도의 그의 집에서는 한국 TV와 라디오 전파가 잡혀 한국 사람들의 생활을 접할 수 있었다.

SCMP에 의하면 그는 홍콩으로 떠나기 전 중학교 수학교사인 아버지에게 자신의 결심을 밝혔다. 그의 아버지는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걱정하지 말고 가라"며 200달러 상당의 돈을 리군의 손에 쥐여줬다고 한다.

SCMP는 리군이 한국에 도착해 한국어, 문화, 사회, 국제정세에 관련한 교육을 받았으며 이달 한국의 대학교에 입학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김영신 코리아넷 기자
사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
ysk1111@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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