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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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스 어셔
지난 수십 년 간 한국이 세계적으로 성장하면서 서양 문화에 대한 노출도 자연스럽게 확대됐다. 한국이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서양의 명절과 기념일도 한국 문화의 일부가 됐다. 이는 보면 볼수록 흥미로운 현상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은 먼저 어떤 기념일을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같은 경우 기독교 신자가 많은 한국에서 종교·문화 행사로 재빨리 자리잡았다. 북미·유럽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셈이다. 반면 '부활절'은 종교의 범위를 뛰어넘지 못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부활절은 상대적으로 작은 기념일이다. 토끼와 병아리가 등장하는 부활절 특유의 깜찍함이 한국에서 통할 법도 한데 말이다. 캐롤이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와 비교해볼 때 상업성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그대신 한국의 젊은이들은 귀여움과는 거리가 먼 '할로윈'을 택했다. 매년 홍대, 이태원 등에서 열리는 할로윈 퍼레이드 참가자 수가 점점 늘고 있다. 한편 미국·캐나다의 가을 명절인 '추수감사절'은 한국의 주요 명절인 추석이 있기 때문에 건너 뛰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국 추수감사절 다음날 열리는 '블랙 프라이데이' 문화를 한국에서 따라 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블랙 프라이데이' 전날 새벽부터 줄 서있던 사람들이 매장 문이 열리는 순간 서로를 짓밟는 광경은 보지 못했다. 어쩌면 한국처럼 문 앞까지 무엇이든 배달해주는 나라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살거나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밸런타인데이'도 나름 큰 행사라고 느꼈을 것이다. 편의점들은 각종 초콜릿과 사탕으로 매장을 꾸미고 레스토랑들은 밸런타인데이 기념 메뉴를 선보인다. 주로 남자들이 선물을 준비하는 서양과 달리 한국식 밸런타인데이는 여자가 남자친구에게 초콜릿을 사주는 날이다. 주변 한국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왜 이렇게 바뀌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것이 한국의 저조한 양성평등지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까? 과연 한국남자들은 마음 편히 받기만 해도 될까? 이것은 착각이다. 한국인들은 커플을 선호하고 커플 대상으로 하는 이벤트를 무척 즐긴다. 이들은 밸런타이데이를 들여왔을 때 본전을 뽑기로 마음 먹었을 것이다. 2월 14일이 남자들을 챙겨주는 날이라면 한달 뒤에는 역할이 바뀐다. 한국에서 3월 14일은 '화이트데이'다. 남자들이 여자들을 챙겨줄 차례다. 이날은 초콜릿 대신 사탕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츄파춥스 사탕이 특히 인기 있다. 10살 어린이도 아니고 초콜릿 주고 사탕을 받는 여자가 손해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경제포럼(WEF)이 한국의 '2016 남녀 성 평등' 수준을 144개 국가 중 116위로 평가했을 때 화이트데이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꽤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한국인들이 밸런타인데이 문화를 최대한 길게 뽑아 즐긴다고 한 말은 진심이다.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외에도 매달 14일마다 다양한 기념일이 기다리고 있다. 젊은 층은 5월 '로즈데이', 6월 '키스데이', 7월 '실버데이', 8월 '그린데이', 9월 '포토데이', 10월 '와인데이', 11월 '무비데이', 12월 '허그데이', 1월 '다이어리데이'를 기념한다. 이런 기념일이 왜 생기게 됐고 당일에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대충 이름만 봐도 감은 온다. 다만 ‘그린데이’는 무슨 날인지 확실치 않다. 지인들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달 14일마다 돌아오는 기념일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날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왜 4월만 기념일이 빠졌는지 궁금해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4월 14일은 싱글들을 위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 날은 '블랙데이'라고 불리며 혼자인 사람들이 짜장면을 먹는다는 날이다. 혼자라 외롭고 서러운 사람들이 검은 짜장 소스에 면을 비비면서 지난 일년 동안 연애에 실패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그런 씁쓸한 날이다.
이 글을 쓴 찰스 어셔는 여행 블로거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 이하나 코리아넷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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