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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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랙터를 타고 한국, 중국, 터키, 미얀마의 농촌을 여행한 강기태씨는 서울에 “여행대학”을 열어 여행자들을 위한 강연을 하고 있다.
[Korea.net] 세계가 나의 집. 그것도 트랙터로 온 세계를 누비는 사나이가 있다. 강기태씨(34). 경남 하동에서 자라 고교를 진주에서 나와 청주 교원대에서 체육교육학을 전공했다.

국내 최초의 트랙터 여행가로, 2008년 9월부터 6개월간 트랙터를 타고 전국 무전여행을 시작했고, 2012년에는 터키일주, 2013년에는 중국을 4달 동안 트랙터로, 그리고 미얀마를 여행했다. 그는 여행으로 쌓은 노하우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2014년에 여행대학이라는 스타트업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역 뒤편의 만리시장 안, 세계지도와 여행을 부추기는 문구로 꾸며진 입구를 들어서자 “여행대학”의 교실이 나타났다. 이곳에서는 “여행사진 실전편,” “책으로 만드는 여행,” “자전거 세계일주”등 18가지의 여행 관련 수업이 진행된다.

지난 22일 서울 만리시장의 여행대학에서 강씨를 만나 그의 여행이야기를 더 들어봤다.
▲ 강기태씨는 서울 만리동의 여행대학에서 ‘트랙터타고 세계일주’라는 강연으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해오고 있다.
-교원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왜 안정적인 교사 생활을 포기하고 트랙터 여행가의 길을 택했는가?

원래 트랙터를 타려고 한 것은 아니다. 공부를 잘 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갖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해 공부를 잘 했고 학생회장도 했다. 대학에 들어갔지만 나와 맞지 않았다. 그래서 여행을 떠났다. 자전거여행, 동남아와 중앙아메리카 배낭여행 등을 했다. 여행을 하고 보니 “세상을 더 봐야겠다,” “더 넓은 곳으로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 여행가들이 도보, 자동차, 오토바이 여행을 한 것처럼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는데 나는 하동 농부의 아들이니 트랙터를 타보자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는가?

주위에서 전부 반대했다. 부모님께 앞으로 10년간의 계획을 말씀 드렸다. 손 하나도 벌리지 않고 여행을 다녀올 것이며 여행 다녀온 후 책을 내고 강연을 하겠다, 유학도 다녀오겠다고 말씀 드렸다. 처음에는 전혀 받아들이시지 못하셨지만 말씀 드린 것들을 하나하나 이뤄가자. “알아서 해라, 네 인생은 네꺼다”라며 인정해 주셨다. 교수님도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하셨지만 지금은 동문 모임에 나가면 알아봐주시고 반가워하신다.

-두렵지는 않았는가?

나는 삶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빨리 인정했다. 실패할 것 같으면 빨리 포기한다. 그리고 다른 방향으로 시도를 해보거나 나중으로 미뤄두고 다른 목표에 먼저 도전한다.
▲ 강기태씨가 2012년 터키 농촌 여행 중 트랙터 위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트랙터는 불편하지 않은가?

아니다. 은근히 편하다. 최대 시속 30km인 속도가 처음에는 속이 터질 것 같이 답답하지만 사람은 금방 적응한다. 트랙터 뒤에 짐칸을 달아서 쌀, 취사도구, 캔 통조림, 옷, 팸플릿, 깃발, 배낭, 신발도 다 넣고 다닐 수 있다. 트랙터 운전도 정말 쉽다. 5분만 배우면 바로 몰 수 있다. 느려서 사고 날 걱정도 없다.

-트랙터를 협찬 받았다. 프레젠테이션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던데.

난 프레젠테이션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스티브 잡스가 프레젠테이션을 잘한다고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서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이라는 책을 읽었다. 잡스가 목이 긴 검은색 상의와 청바지를 입고 검은색 배경에 흰색 제품을 두니 집중이 되었다. 나도 따라서 검은색 배경에 트랙터를 놓았다. 잡스의 발표문도 그대로 활용해 아이팟을 트랙터로 바꾸었다. “나는 세계 최고의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다”라는 생각으로 발표를 했고 질문에도 답을 잘 할 수 있었다.

-전국의 마을을 몇 군데나 돌아다녔는가?

몇 군데만 갔으면 세어봤을 텐데 너무나 많은 곳을 가서 세어보지 않았다. 도시만 따져도 50개 정도 될 텐데 아마 마을은 적어도 250군데는 갔을 것이다. 국내 여행을 할 때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경남 하동에서 부산까지 간다’ 정도만 정해놓고 그 중간의 모든 길은 궁금한 방향으로 정하는 것이다. 일직선으로 움직인 게 아니라 지그재그로 갔다. 여행이라는 게 그렇다. 어디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예측 불가능한 일이 생기지 않는가?

-낯선 고장의 이장 집에 찾아가서 하루 머물 수 있냐고 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

우리 아버지가 하동에서 이장을 27년째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안내방송도 맡아서 했고 우리집을 오가는 동네 분들을 접대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안 계시면 내가 “할머니, 고모는 시집 갔어요? 삼촌은 잘 지내고요?” 하며 말동무도 해드렸다.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낯선 곳에서 부탁의 말을 하는 것이 어렵지가 않았다.

-여행 중 친구를 많이 사귀었을 것 같다.

지방에 친구들이 많이 있다. 여행을 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이전에 인연을 맺은 사람들 집에 찾아가기도 한다. 지금껏 지방에 연락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많다. 예를 들어 나는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의 명예주민이다. 진보면 형들이 결혼을 하면 결혼식장에 꼭 가고 동네 장례식도 간다. 진보면의 목욕탕 주인, 당구장, 떡볶이 집, 커피 집 주인들이 전부 친한 형님들이다.

-결혼은 했는가?

아직 못 했지만 꼭 하고 싶다. 소개팅을 원한다고 꼭 얘기해달라.
▲ 강기태씨가 미얀마 여행 중 트랙터를 멈추고 소쟁기를 사용하는 농부의 일을 돕고 있다.
▲ 강기태씨는 트랙터로 터키 농촌을 여행하며 현지 농민들의 생활을 체험해보고 직접 대화를 나눴다.
-중국, 터키, 미얀마를 다녀왔다. 이방인으로서 위협을 느끼는 상황은 없었는가?

오히려 그쪽 주민들이 나를 무서워했다. 농사를 짓고 있는데 지저분하고 수염 난 사람이 깃발을 꽂은 트랙터를 몰고 나타나면 “대체 저 사람은 누군가?”하고 쳐다봤다. 나는 오히려 편했다. 그리고 나도 농사를 짓는 농부의 아들이자 청년 농부라고 밝히면 굉장히 호의적으로 대해줬다. 아직 소쟁기를 많이 사용하는 미얀마의 경우 트랙터를 몰고 나타나면 엄청 부러워했다.

-농민의 자식으로서 타국의 농민들과 대화를 나눠보고 느낀 점은?

터키나 중국을 가보니 농민들이 확실히 한국과는 달랐다. 땅이 크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다 보니 농사가 천대받는 일이 아니다. 도심지 이외는 거의 밭인 것 같았다. 자부심이 강한 것이 느껴졌다. 또, 연령대도 낮았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안 가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많았다. 인식 자체가 달랐다.

-농촌의 고령화로 구조적인 일손부족에 시달린다. 반면 도시의 청년실업률은 10%이상이다. 해결책은 없겠는가?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농협의 거대한 조직을 활용해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보는 거다. 농가에서는 부족한 인력과 업종, 일당, 노동시간을 올리면 청년들은 이를 선택해서 일하면 된다. 노동해서 받은 일당으로 또 다른 농가를 찾아가면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고 이것이 활성화되면 농촌공동화현상이 상당히 해소될 것이다.

-여행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터키의 카파도키아(Cappadocia)라는 도시가 정말 아름다웠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자연경관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높은 곳에서 맥주를 마시며 자연 환경을 감상하기만 했다. 신혼여행을 간다고 하면 다시 그 곳에 가고 싶다. 아름다운 인연을 맺기도 했다. 현지 식당에서 한 한국인 부부를 만났는데 지금도 절친하게 지낸다 .
▲ 강기태씨는 한국 이외에도 터키, 중국, 미얀마의 농촌을 누비며 농부들과 직접 만나는 여행을 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 트랙터 여행은 계속 할 것이다. 올 겨울에는 남미 국가들을 여행하는 것이 목표다. 미국 알라스카부터 LA까지 횡단하는 것도 해보고 싶다. 또, 한 달에 한 도시 살기도 해보고 싶다. 덴마크 코펜하겐, 아일랜드 더블린, 미국 알래스카, 케나다 벤쿠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다른 여행가들이 가본 곳 중 가장 좋은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

또, 농업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나라가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고향인 하동은 변화시키고 싶다. 일단 시골 아이들이 잘 놀면서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 것이다.


위택환, 김영신 코리아넷 기자
사진 김영신, 강기태
ysk1111@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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