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30일, 남도 여행에 나섰다.
화려했던 10월이 이런저런 사연을 안고 저물어 가고 있다. 가을은 만추로 깊숙이 들어가는 셈이다. 이런 계절에 어디로 떠나 볼 것인가? 중국의 지도를 펴고 이곳 저곳을 눈요기했지만, 막상 마음에 와 닿는 곳이 없다. 그렇다면 내 고향 근처는 어떤가? 불현듯 홍도, 흑산도가 섬광처럼 머리 속을 스친다.
그렇다... 그곳으로 떠나 보자. 가는 김에 지리산 피아골 단풍도 오지게 들여다 보고, 순천 습지라는 곳에 가서 갈대의 순정도 마음으로 느껴 보고, 유달산에서 목포의 눈물도 흥얼거려 보고, 그리고 배를 타고 홍도, 흑산도를 다녀 오면, 결코 손해 보지 않을 만큼의 여행이지 않겠는가?
10월 29일, 베이징을 출발하여 김포에 도착하고, 둘째 아들과 함께 익산으로 향했다. 일요일 오후라 KTX 좌석 사정이 여의치 않아, 먼저 익산까지, 그리고 익산에서 구례 구로 가는 여정이다. 오랜만에 아들과 기차를 타고 차창에 스치는 가을 풍경을 즐기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은 꽤 괜찮은 여행의 조각이다.
둘째 놈은 대화하기에 꽤 괜찮은 놈이다. 그 놈이 학창 시절, " 너도 장학금 받으면 좋지 않니?" 라고 말했더니 그 놈 왈, "왜, 난들 장학금을 받고 싶지 않겠습니까? 안되니까, 그러는 거죠. 그런데 아버지도 학창 시절에 받지 못했다면서요? "라고 반발하면서 "나도 아버지처럼 아르바이트 해서 용돈 벌께요."라고 너스레를 떨던 놈이다. 이제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서 인생의 이런저런 뒷얘기를 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 익산까지만 동행이다.
익산에서 구례 구 행 기차를 바꿔 타고 본격적인 혼자 여행을 떠났다. 뭐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가장 자연스러운 여행의 과정이다. 언제부터인가 혼자 여행을 떠나고, 혼자 즐긴다는 것이 가장 편안하고 쏠쏠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득하게 되었다. 그럼 가족은? 집 사람은? 다 각자 즐기는 방법이 있다. 집사람은 일년에 한 두 번씩 본인의 취향에 맞는 고상한 여행을 희망하고, 훌륭하게 동행 해 주면 최고다. 자식들이야 각자 좋을 대로 살아가면 되지 않겠는가?
구례 구 역전은 구례군이 아니다. 그냥 구례군의 입구라는 뜻의 이름이다.
행정구역상 순천시 끝 단 이라고 한다. 구례 구에서 택시를 타고 약 10분, 6킬로를 가다 보면 구례군 읍소재지가 나온다. 정다운 도시 구례군... 지리산과 섬진강을 끼고 있어서 학창 시절, 광양에서 직장 시절,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걸쳐 얼마나 자주 출몰하였던가? 그런데 중국으로 떠난 지 23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방문한 셈이다. 반갑고도 반갑다. 10월 마지막 밤 하늘엔 하얀 보름달이 휘영청 밝게 빛나고, 살가운 가을 기운은 나그네의 심사를 숙연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