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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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LP판 껍데기를 굳이 들추지 않아도 난 양희은의 옛 모습을 비교적 정확히 그려낼 수 있다. 통기타와 낡은 청바지, 혹은 깃넓은 남방셔츠나 흰 운동화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지금도 선명히 각인되어 있는 그의 옛 인상은 무표정한 얼굴과 냉소적인 눈빛이다.


그랬다. 이십여년 전 그 가수는 내게 그런 이미지로 다가왔다. 실제로 그가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는 내가 알 바 아니다. 어차피 나는 나의 심상에 각인된 양희은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기에 이 사실은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타당성을 갖는다.


70년대 중반, 그때 우리는 너나없이 좀 답답했고 우울했다. 하고 싶은 말들을 제대로 못하던 시절이었다. 날이 새면 또 몇 사람이 사라지고 없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나타난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죽음같은 침묵과 표정없는 얼굴, 그리고 냉소적인 눈빛이었다.


내가 양희은에게서 읽었던 눈빛이 우울과 좌절의 시대를 공유했던 우리들의 눈빛과 동종의 것일 수 있다고 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어쨌든 난 양희은의 표정과 눈빛에서 나와 우리의 모습을 보았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그리고 세상을 쳐다보고 있었다. 또 그런 표정으로 양희은은 노래를 불렀다.


당시 나의 시각 이미지를 지배한 것이 그의 표정과 눈빛이었다면, 요즘 나의 청각 이미지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독특한 음색을 가진 그의 목소리다.


‘아침 이슬'을 보자. 당시 양희은은 이 노래를 몹시도 정직하게 불렀다. 꾸미지도 꺾지도 않았고, 곱거나 예쁘게, 아니면 특별히 더 비장하게 부르려 하지도 않았다. 어떠한 작위적인 노력도 가하지 않고 그냥 나오는 대로, 자기의 내면이 명하는 그대로 불렀다.


그리하여 ' 태양은 묘지 위에'서부터 '나의 시련일지라'와 '저 거친 광야에'를 거쳐 '나 이제 가노라'에 이르는 동안 노랫말이 뜻하는 바와 그의 올곧은 금속성 음색은 절묘하게 일치되고 있었다.


우리 가슴의 답답함을 양희은의 꾸밈없는 금속성 고음은 그렇게 뚫어 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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