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양역
1km
3km
5km
10km
20km
30km
50km
100km
언어선택
푸양역
1km
3km
5km
10km
20km
30km
50km
100km
로그인
검색
쓰기
언어
씨티
뉴스
포토
커뮤니티
씨티몰
로그인
회사소개
마이페이지
TOP
칭다오
서울
시드니
부산
+
#이슈 도시
X 닫기
칭다오
서울
시드니
부산
다롄
베이징
호치민
울산
대전
연길
톈진
보스턴
선양
인천
제주도
대구
광주
오클랜드
LA
탬파
평양
라스베가스
파리
런던
홍콩
상하이
뉴욕
광저우
선전
방콕
날씨
허페이
[13/05]
19:12
오늘 날씨
℃~
℃
환율 계산
한국
중국
미국
일본
유럽
홍콩
대만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폴
호주
뉴질랜드
현지
환율 계산
New City Info
[여행지]
관포사(관중공원)
[역사유적]
한국광복군 제3지대 주둔지 유채
[역사유적]
한국광복군 제3지대 주둔지 구리구
[역사유적]
한국광복군 제3지대 주둔지 삼탑집
시간
거리
랭킹
검색
씨티
뉴스
포토
커뮤니티
씨티몰
소개
베이징-홍콩 7시간만에 잇는 고속철 건설방안 확정
A
푸양역
~0.0km
뉴스
2015.10.11
베이징과 홍콩을 7시간만에 잇는 고속철의 기본 건설방안이 확정돼 공사에 들어간다. 중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교통체계 종합설계 기관인 철도제3탐사설계원(铁三院)은 최근 베이징과 홍콩 주룽(九龙)을 잇는 고속철 '징주(京九)고속철'의 건설 방안을 최종 확정했
X 닫기
0
0
4778
상세정보
한국광복군 제3지대 주둔지 유채
E
~7.6km
씨티
안후이 푸양 푸양시
■ 한국광복군 제3지대 주둔지 유채劉寨 ◎ 옛주소 : 안휘성 安徽省 부양시 阜陽市 유채 劉寨 ◎ 현주소 : 안휘성 安徽省 부양시 阜陽市 경제기술개발구 經濟技術開發區 유채 劉寨 ◎ 사적지 : 한국광복군 제3지대가 구리구 九里溝 에서 이동하여 주둔하였던 곳 ◆ 제3지대는 구리구에 주둔하고 있다가 대원들이 증가하자 더 넓은 곳을 찾아 유채로 이동하였다. 당시 대원이었던 김문택은 그의 수기에서 유채라는 곳을 “광망한 대평원 지평선 끝까지 푸른 파도를 일으키는 밀은 자랄대로 다 자라 목에 찬다. 코를 찌르는 흙냄새를 맡으며 내리쬐는 햇빛 아래 밀밭 사이를 꿰뚫고 있는 비좁은 시골길을 걸어 … 몇 시간을 헤매어 찾아온 이 ‘류짜이’라는 고장, 푸른 대평원 한복판 넓은 황포색의 뜰에 자리잡고 있는 중국군 주둔지, 이 근처 먼 곳 좌우에는 작은 부락이 두세 군데나 있어 촌락과 마찬가지로 푸른 나무에 감싸여 있다. 둘레 5리 가량이나 되는 땅에 주둔하고 있는 중국군 부대, 역시 이 둘레에는 크리크壕가 있고, 호에 둘러싸인 중앙의 정문 안쪽에는 넓은 훈련장이 있다. 그 바른 편 옆에는 우리가 기거할 큰 흙집 병사가 7~8채가 있다”고 하였다. ◆ 현재 이 지역은 부양시 경제기술개발구로 재개발되어 공업단지를 조성하고 있어, 당시 제3지대가 주둔했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X 닫기
0
0
1199
상세정보
관포사(관중공원)
B
~48.0km
씨티
안후이 푸양 잉상현
관이오(管夷吾, 기원전 725년? ~ 기원전 645년)는 중국 춘추 시대 초기 제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로, 자는 중(仲)이며 영상(潁上) 사람이다. 보통 성씨와 자를 합쳐 관중(管仲)으로 불리며, 제환공을 춘추오패의 첫번째 패자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의 사상은 한서 예문지에서는 도가로, 수서 경적지에서는 법가로 분류되나, 이는 직하하파에 의해 편집된 관자를 후대의 관점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중의 사상이 후대의 제자백가에 영향을 준 것만은 확실하다. 그의 저서로는 관자가 있으나, 후학에 의해 가필된 것으로 보인다.
X 닫기
0
0
965
[중국 고전 인물전] 관중 "풍족해야 명예와 치욕을 안다"
F
관포사(관중공원)
~48.0km
뉴스
2011.02.22
제(齊)나라 환공(桓公)을 돕는 재상이 되어 그를 춘추오패로 만든 관중(管仲:?~BC 645)만큼 운도 따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X 닫기
0
0
5644
상세정보
한국광복군 제3지대 주둔지 삼탑집
C
~23.0km
씨티
안후이 푸양 푸난현
■ 한국광복군 제3지대 주둔지 삼탑집三塔集 ◎ 옛주소 : 안휘성 安徽省 부양시 阜陽市 삼탑집 三塔集 ◎ 현주소 : 안휘성 安徽省 부양시 阜陽市 부남현 阜南縣 삼탑집 三塔集 후조붕장 後趙棚庄 58호 일대 ◎ 사적지 : 한국광복군 제3지대가 주둔하던 곳.한국광복군 제3지대는 징모제6분처가 발전하여 성립된 지대이다. ◆ 임시정부에서는 1942년 2월 김학규金學奎를 주임으로 한 징모제6분처를 안휘성 부양으로 파견하였다. 이들은 부양시내에 사무소를 설치하고 초모활동에 들어갔다. 이후 대원이 증가하면서 주둔지를 여러 곳으로 옮겼다. 첫 번째 옮겨 주둔한 곳이 삼탑집이었다. ◆ 제3지대 출신 김우전은 이곳을 방문하고 “이곳은 한광반 졸업 후 김학규 지대장이 대원을 인솔하고 임천에서 부양으로 복귀한 제3지대 본부이다. 약 한 시간만에 찾았는데, 여기는 시골이라서 옛 모습 그대로이고 작은 연못까지 그대로 남아 있어 이곳에 오랫동안 체류하였던 전이호 동지는 환호를 하면서 조태태와 연정을 품었던 장소까지 지적하였다”라고 하였다. ◆ 삼탑집 일대는 약 90여 가구의 주민들이 거주하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광복군이 사용한 건물이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X 닫기
0
0
885
상세정보
한국광복군 제3지대 주둔지 구리구
D
~6.0km
씨티
안후이 푸양 푸양시
■ 한국광복군 제3지대 주둔지 구리구九里溝 ◎ 옛주소 : 안휘성 安徽省 부양시 阜陽市 구리구 九里溝 ◎ 현주소 : 안휘성 安徽省 부양시 阜陽市 경제기술개발구 經濟技術開發區 구리구 九里溝 ◎ 사적지 : 한국광복군 제3지대가 1945년 4월 하순부터 주둔하였던 곳 ◆ 제3지대는 1945년 3월 삼탑집三塔集에서 부양현성내로 이동하였다가, 한 달여만에 다시 구리구로 이동하여 주둔하였다. 구리구는 부양성에서 동남쪽으로 약 9리쯤 떨어진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대원들의 숫자가 증가하면서 넓은 곳을 찾아 이동한 것이다. ◆ 이곳에서 활동한 김문택金文澤의 회고에 의하면, 구리구에서 집 세 채를 사용하였다. 세 채의 집은 디귿자(ㄷ)형이었고, 가운데 집을 강당 겸 식당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채의 집은 내무반 숙소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건물 둘레에는 약 1천평 정도되는 뜰과 그 옆에는 폭 5m, 깊이 2m가 넘는 해자垓字가 있었고, 수 십 그루의 해묵은 대추나무가 있었다. 2006년도 구리구에 대한 현지 조사 결과 김문택의 수기에 나타나 있는 지명과 지형이 거의 일치함을 확인하였다. ◆ 제3지대가 주둔하였던 곳에는 현재 20여 가구의 주민들이 거주하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이들이 사용하던 집은 남아 있지 않지만, 마을에는 지금도 오래되고 매우 큰 대추나무들이 많다.
X 닫기
0
0
978
베이징-홍콩 7시간만에 잇는 고속철 건설방안 확정
A
푸양역
~0.0km
뉴스
2015.10.11
베이징과 홍콩을 7시간만에 잇는 고속철의 기본 건설방안이 확정돼 공사에 들어간다. 중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교통체계 종합설계 기관인 철도제3탐사설계원(铁三院)은 최근 베이징과 홍콩 주룽(九龙)을 잇는 고속철 '징주(京九)고속철'의 건설 방안을 최종 확정했
X 닫기
0
0
4778
상세정보
한국광복군 제3지대 주둔지 구리구
D
~6.0km
씨티
안후이 푸양 푸양시
■ 한국광복군 제3지대 주둔지 구리구九里溝 ◎ 옛주소 : 안휘성 安徽省 부양시 阜陽市 구리구 九里溝 ◎ 현주소 : 안휘성 安徽省 부양시 阜陽市 경제기술개발구 經濟技術開發區 구리구 九里溝 ◎ 사적지 : 한국광복군 제3지대가 1945년 4월 하순부터 주둔하였던 곳 ◆ 제3지대는 1945년 3월 삼탑집三塔集에서 부양현성내로 이동하였다가, 한 달여만에 다시 구리구로 이동하여 주둔하였다. 구리구는 부양성에서 동남쪽으로 약 9리쯤 떨어진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대원들의 숫자가 증가하면서 넓은 곳을 찾아 이동한 것이다. ◆ 이곳에서 활동한 김문택金文澤의 회고에 의하면, 구리구에서 집 세 채를 사용하였다. 세 채의 집은 디귿자(ㄷ)형이었고, 가운데 집을 강당 겸 식당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채의 집은 내무반 숙소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건물 둘레에는 약 1천평 정도되는 뜰과 그 옆에는 폭 5m, 깊이 2m가 넘는 해자垓字가 있었고, 수 십 그루의 해묵은 대추나무가 있었다. 2006년도 구리구에 대한 현지 조사 결과 김문택의 수기에 나타나 있는 지명과 지형이 거의 일치함을 확인하였다. ◆ 제3지대가 주둔하였던 곳에는 현재 20여 가구의 주민들이 거주하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이들이 사용하던 집은 남아 있지 않지만, 마을에는 지금도 오래되고 매우 큰 대추나무들이 많다.
X 닫기
0
0
978
상세정보
관포사(관중공원)
B
~48.0km
씨티
안후이 푸양 잉상현
관이오(管夷吾, 기원전 725년? ~ 기원전 645년)는 중국 춘추 시대 초기 제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로, 자는 중(仲)이며 영상(潁上) 사람이다. 보통 성씨와 자를 합쳐 관중(管仲)으로 불리며, 제환공을 춘추오패의 첫번째 패자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의 사상은 한서 예문지에서는 도가로, 수서 경적지에서는 법가로 분류되나, 이는 직하하파에 의해 편집된 관자를 후대의 관점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중의 사상이 후대의 제자백가에 영향을 준 것만은 확실하다. 그의 저서로는 관자가 있으나, 후학에 의해 가필된 것으로 보인다.
X 닫기
0
0
965
상세정보
한국광복군 제3지대 주둔지 유채
E
~7.6km
씨티
안후이 푸양 푸양시
■ 한국광복군 제3지대 주둔지 유채劉寨 ◎ 옛주소 : 안휘성 安徽省 부양시 阜陽市 유채 劉寨 ◎ 현주소 : 안휘성 安徽省 부양시 阜陽市 경제기술개발구 經濟技術開發區 유채 劉寨 ◎ 사적지 : 한국광복군 제3지대가 구리구 九里溝 에서 이동하여 주둔하였던 곳 ◆ 제3지대는 구리구에 주둔하고 있다가 대원들이 증가하자 더 넓은 곳을 찾아 유채로 이동하였다. 당시 대원이었던 김문택은 그의 수기에서 유채라는 곳을 “광망한 대평원 지평선 끝까지 푸른 파도를 일으키는 밀은 자랄대로 다 자라 목에 찬다. 코를 찌르는 흙냄새를 맡으며 내리쬐는 햇빛 아래 밀밭 사이를 꿰뚫고 있는 비좁은 시골길을 걸어 … 몇 시간을 헤매어 찾아온 이 ‘류짜이’라는 고장, 푸른 대평원 한복판 넓은 황포색의 뜰에 자리잡고 있는 중국군 주둔지, 이 근처 먼 곳 좌우에는 작은 부락이 두세 군데나 있어 촌락과 마찬가지로 푸른 나무에 감싸여 있다. 둘레 5리 가량이나 되는 땅에 주둔하고 있는 중국군 부대, 역시 이 둘레에는 크리크壕가 있고, 호에 둘러싸인 중앙의 정문 안쪽에는 넓은 훈련장이 있다. 그 바른 편 옆에는 우리가 기거할 큰 흙집 병사가 7~8채가 있다”고 하였다. ◆ 현재 이 지역은 부양시 경제기술개발구로 재개발되어 공업단지를 조성하고 있어, 당시 제3지대가 주둔했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X 닫기
0
0
1199
상세정보
한국광복군 제3지대 주둔지 삼탑집
C
~23.0km
씨티
안후이 푸양 푸난현
■ 한국광복군 제3지대 주둔지 삼탑집三塔集 ◎ 옛주소 : 안휘성 安徽省 부양시 阜陽市 삼탑집 三塔集 ◎ 현주소 : 안휘성 安徽省 부양시 阜陽市 부남현 阜南縣 삼탑집 三塔集 후조붕장 後趙棚庄 58호 일대 ◎ 사적지 : 한국광복군 제3지대가 주둔하던 곳.한국광복군 제3지대는 징모제6분처가 발전하여 성립된 지대이다. ◆ 임시정부에서는 1942년 2월 김학규金學奎를 주임으로 한 징모제6분처를 안휘성 부양으로 파견하였다. 이들은 부양시내에 사무소를 설치하고 초모활동에 들어갔다. 이후 대원이 증가하면서 주둔지를 여러 곳으로 옮겼다. 첫 번째 옮겨 주둔한 곳이 삼탑집이었다. ◆ 제3지대 출신 김우전은 이곳을 방문하고 “이곳은 한광반 졸업 후 김학규 지대장이 대원을 인솔하고 임천에서 부양으로 복귀한 제3지대 본부이다. 약 한 시간만에 찾았는데, 여기는 시골이라서 옛 모습 그대로이고 작은 연못까지 그대로 남아 있어 이곳에 오랫동안 체류하였던 전이호 동지는 환호를 하면서 조태태와 연정을 품었던 장소까지 지적하였다”라고 하였다. ◆ 삼탑집 일대는 약 90여 가구의 주민들이 거주하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광복군이 사용한 건물이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X 닫기
0
0
885
[중국 고전 인물전] 관중 "풍족해야 명예와 치욕을 안다"
F
관포사(관중공원)
~48.0km
뉴스
2011.02.22
제(齊)나라 환공(桓公)을 돕는 재상이 되어 그를 춘추오패로 만든 관중(管仲:?~BC 645)만큼 운도 따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X 닫기
0
0
5644
베이징-홍콩 7시간만에 잇는 고속철 건설방안 확정
A
푸양역
~0.0km
뉴스
2015.10.11
베이징과 홍콩을 7시간만에 잇는 고속철의 기본 건설방안이 확정돼 공사에 들어간다. 중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교통체계 종합설계 기관인 철도제3탐사설계원(铁三院)은 최근 베이징과 홍콩 주룽(九龙)을 잇는 고속철 '징주(京九)고속철'의 건설 방안을 최종 확정했
X 닫기
0
0
4778
상세정보
한국광복군 제3지대 주둔지 삼탑집
C
~23.0km
씨티
안후이 푸양 푸난현
■ 한국광복군 제3지대 주둔지 삼탑집三塔集 ◎ 옛주소 : 안휘성 安徽省 부양시 阜陽市 삼탑집 三塔集 ◎ 현주소 : 안휘성 安徽省 부양시 阜陽市 부남현 阜南縣 삼탑집 三塔集 후조붕장 後趙棚庄 58호 일대 ◎ 사적지 : 한국광복군 제3지대가 주둔하던 곳.한국광복군 제3지대는 징모제6분처가 발전하여 성립된 지대이다. ◆ 임시정부에서는 1942년 2월 김학규金學奎를 주임으로 한 징모제6분처를 안휘성 부양으로 파견하였다. 이들은 부양시내에 사무소를 설치하고 초모활동에 들어갔다. 이후 대원이 증가하면서 주둔지를 여러 곳으로 옮겼다. 첫 번째 옮겨 주둔한 곳이 삼탑집이었다. ◆ 제3지대 출신 김우전은 이곳을 방문하고 “이곳은 한광반 졸업 후 김학규 지대장이 대원을 인솔하고 임천에서 부양으로 복귀한 제3지대 본부이다. 약 한 시간만에 찾았는데, 여기는 시골이라서 옛 모습 그대로이고 작은 연못까지 그대로 남아 있어 이곳에 오랫동안 체류하였던 전이호 동지는 환호를 하면서 조태태와 연정을 품었던 장소까지 지적하였다”라고 하였다. ◆ 삼탑집 일대는 약 90여 가구의 주민들이 거주하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광복군이 사용한 건물이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X 닫기
0
0
885
상세정보
한국광복군 제3지대 주둔지 유채
E
~7.6km
씨티
안후이 푸양 푸양시
■ 한국광복군 제3지대 주둔지 유채劉寨 ◎ 옛주소 : 안휘성 安徽省 부양시 阜陽市 유채 劉寨 ◎ 현주소 : 안휘성 安徽省 부양시 阜陽市 경제기술개발구 經濟技術開發區 유채 劉寨 ◎ 사적지 : 한국광복군 제3지대가 구리구 九里溝 에서 이동하여 주둔하였던 곳 ◆ 제3지대는 구리구에 주둔하고 있다가 대원들이 증가하자 더 넓은 곳을 찾아 유채로 이동하였다. 당시 대원이었던 김문택은 그의 수기에서 유채라는 곳을 “광망한 대평원 지평선 끝까지 푸른 파도를 일으키는 밀은 자랄대로 다 자라 목에 찬다. 코를 찌르는 흙냄새를 맡으며 내리쬐는 햇빛 아래 밀밭 사이를 꿰뚫고 있는 비좁은 시골길을 걸어 … 몇 시간을 헤매어 찾아온 이 ‘류짜이’라는 고장, 푸른 대평원 한복판 넓은 황포색의 뜰에 자리잡고 있는 중국군 주둔지, 이 근처 먼 곳 좌우에는 작은 부락이 두세 군데나 있어 촌락과 마찬가지로 푸른 나무에 감싸여 있다. 둘레 5리 가량이나 되는 땅에 주둔하고 있는 중국군 부대, 역시 이 둘레에는 크리크壕가 있고, 호에 둘러싸인 중앙의 정문 안쪽에는 넓은 훈련장이 있다. 그 바른 편 옆에는 우리가 기거할 큰 흙집 병사가 7~8채가 있다”고 하였다. ◆ 현재 이 지역은 부양시 경제기술개발구로 재개발되어 공업단지를 조성하고 있어, 당시 제3지대가 주둔했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X 닫기
0
0
1199
상세정보
관포사(관중공원)
B
~48.0km
씨티
안후이 푸양 잉상현
관이오(管夷吾, 기원전 725년? ~ 기원전 645년)는 중국 춘추 시대 초기 제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로, 자는 중(仲)이며 영상(潁上) 사람이다. 보통 성씨와 자를 합쳐 관중(管仲)으로 불리며, 제환공을 춘추오패의 첫번째 패자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의 사상은 한서 예문지에서는 도가로, 수서 경적지에서는 법가로 분류되나, 이는 직하하파에 의해 편집된 관자를 후대의 관점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중의 사상이 후대의 제자백가에 영향을 준 것만은 확실하다. 그의 저서로는 관자가 있으나, 후학에 의해 가필된 것으로 보인다.
X 닫기
0
0
965
상세정보
한국광복군 제3지대 주둔지 구리구
D
~6.0km
씨티
안후이 푸양 푸양시
■ 한국광복군 제3지대 주둔지 구리구九里溝 ◎ 옛주소 : 안휘성 安徽省 부양시 阜陽市 구리구 九里溝 ◎ 현주소 : 안휘성 安徽省 부양시 阜陽市 경제기술개발구 經濟技術開發區 구리구 九里溝 ◎ 사적지 : 한국광복군 제3지대가 1945년 4월 하순부터 주둔하였던 곳 ◆ 제3지대는 1945년 3월 삼탑집三塔集에서 부양현성내로 이동하였다가, 한 달여만에 다시 구리구로 이동하여 주둔하였다. 구리구는 부양성에서 동남쪽으로 약 9리쯤 떨어진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대원들의 숫자가 증가하면서 넓은 곳을 찾아 이동한 것이다. ◆ 이곳에서 활동한 김문택金文澤의 회고에 의하면, 구리구에서 집 세 채를 사용하였다. 세 채의 집은 디귿자(ㄷ)형이었고, 가운데 집을 강당 겸 식당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채의 집은 내무반 숙소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건물 둘레에는 약 1천평 정도되는 뜰과 그 옆에는 폭 5m, 깊이 2m가 넘는 해자垓字가 있었고, 수 십 그루의 해묵은 대추나무가 있었다. 2006년도 구리구에 대한 현지 조사 결과 김문택의 수기에 나타나 있는 지명과 지형이 거의 일치함을 확인하였다. ◆ 제3지대가 주둔하였던 곳에는 현재 20여 가구의 주민들이 거주하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이들이 사용하던 집은 남아 있지 않지만, 마을에는 지금도 오래되고 매우 큰 대추나무들이 많다.
X 닫기
0
0
978
[중국 고전 인물전] 관중 "풍족해야 명예와 치욕을 안다"
F
관포사(관중공원)
~48.0km
뉴스
2011.02.22
제(齊)나라 환공(桓公)을 돕는 재상이 되어 그를 춘추오패로 만든 관중(管仲:?~BC 645)만큼 운도 따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X 닫기
0
0
5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