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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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신이 입궁하던 문, 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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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紫禁城 午门
  • zǐ jìn chéng wǔ mén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베이징 베이징 둥청구 天安门广场对面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953.3km
◆ 베이징 전문에서 북쪽으로 계속 걸으면 현대 중국을 상징하는 천안문을 지나 고궁박물원(자금성)의 남쪽 입구인 오문(午門)에 도착한다. 필자가 지나온 길이 예전에 조선 사신들이 자금성에 들어가기 위해 왔던 바로 그 길이다.(천안문 안쪽의 문) 지금은 이곳에 매표소가 있어 입장권만 구입하면 누구나 고궁박물관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조선 사신들은 그렇지 못했다.

◆ 1624년 10월 13일부터 1625년 2월 27일까지 북경에 머물렀던 조선 사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국문 사행록인 '죽천행록'을 보면 원래 조선의 사신들은 다른 나라의 사신들처럼 오문 밖에서 조회하였다고 한다. 이때 정사(正使) 죽천(竹泉) 이덕형(李德泂, 1566~1645)이 "소신의 나라가 본디 예의지방으로 천하에 유명하오니 오랑캐와 한 반열에 서기는 부끄럽사오니 청컨대 오문 안에서 조회하여지이다"라고 주청하여 겨우 황제의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 반정(反正)으로 권좌에 오른 인조의 즉위를 승인받기 위해 간 이덕형 일행은 중국 관리들의 횡포에 온갖 수모를 다 겪는다. 이덕형이 차가운 길바닥에 엎드려 중국 고관들에게 만나기를 청하는 장면은 이렇게 묘사돼 있다. "공이 또 길가에 엎드려 손을 묶어 부비니 모두 불쌍히 여겨 칭찬하기를 '조선에 충신이 있도다' 하고 '내일 도찰원으로 오라' 하거늘, 공이 무수히 사례하고 관에 돌아와 앉아 파루를 기다려 마을 밖에 가 대령하니 춥기가 우리나라에 비하면 더한지라. 사람이 다 떨고 섰더니…."

◆ 우여곡절 끝에 고관들을 만나게 되었으나 다시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죽천은 섬돌을 붙들고 내쫓기지 않으려 애원하는 장면을 이렇게 기록한다. "한 대신이 갑자기 소리질러 꾸짖되 '변방 적은 나라 신하가 우리 존위를 범하랴. 들어내치고 문 닫으라.' 공이 울며 빌어가로되 '대저 모든 대인들께선 적선하소서.' 섬돌 붙들고 나오지 않으니…." 오문에서 이 장면을 떠올리자 약소국의 비애가 밀려온다. [글 : 고유민·중국여행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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