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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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예술영화촬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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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朝鲜艺术电影撮影所
  • cháo xiǎn yì shù diàn yǐng cuō yǐng suǒ
    분류
  • 여행/오락 > 여행지
    주소
  • 북한 평양직할시 형제산구역 상당동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201.2km
1947년 2월 6일 「국립영화촬영소」라는 이름으로 창립된 북한최대의 영화제작소로 창립 초기에는 극영화보다 주로 기록영화 제작에 치중했으며 기록영화촬영소가 분리된 1957년경부터 극영화 제작에만 전담하게 됐다. 6·25전쟁으로 1947년 설립된 건물과 촬영시설들이 파괴됐던 것은 1955년 복구했는데 이 복구 공사를 통해 촬영용 스테이지의 확장과 스크린 프로세스 신축공사에 착수, 1957년 근대적 기술설비와 일부 제작시설 및 관리시설을 확장했으며 「예술영화촬영소」와 「기록영화촬영소」를 분리시켰다. 총부지면적 1백만㎡, 연건축면적 10만㎡ 규모로 평양시 형제산구역 중당동에 위치하고 있는데 시설로는 실내촬영장을 비롯해 편집실·음악실·연습실·야외촬영소 등과 배우양성소가 있다. 야외촬영소에는 반영구적인 조선거리·일본거리·중국거리·서양거리·농촌마을 및 남한의 서울·광주거리 세트가 설치돼 있는데 특히 실내·외 촬영장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관광코스로도 이용되고 있다. 배우양성소는 1966년 4월 1일부터 1년 과정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교육내용은 당의 문예정책, 마르크스-레닌주의 미학이론, 실기 등이다. 산하에는 백두산·보천보·삼지연·왕재산·대홍단창작단 등 주로 김일성의 혁명전적지 이름을 딴 10여개의 창작단을 두고 있는데 각 창작단에는 10여명의 연출가와 시나리오 작가들이 소속돼 있으며 이들이 연간 20여편의 극영화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또 배우들은 매주 목요일 오전에 열리는 「기량발표회」 등을 통해 대사 소화능력 및 연기력 향상을 꾀하고 있다. 초기부터 김일성 우상물 제작의 총본산 역할을 해오고 있는데 최초의 극영화 <내 고향>(1949년)을 비롯해 <정방공>·<누리에 붙는 불>·<분계선 마을에서>·<조선의 별>·<민족의 태양>·<유격대의 5형제> 등과 1991년부터 시리즈물로 제작하고 있는 <민족과 운명> 등이 이 곳에서 제작된 대표작들이다. 1972년 2월 「국기훈장 제1급」을 받았고 촬영소 설립40주인 1987년 2월에는 「김일성 훈장」을 수상한 바 있으며 최고책임자인 총장직은 1996년 1월 현재 백민이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