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남부에 있는 군. 서부는 운전군, 북부는 태천군ㆍ영변군, 동부는 영변군과 접해 있으며 남부는 안주시와 마주하고 있다. 서남(맹하리)~동북(상추리) 간의 길이는 25.2km이고, 서북(삼봉리)~동남(기송리) 간의 길이는 22.26km이며, 면적은 288.42㎢로서 도 전체면적의 2.27%를 차지한다. 도내에서 염주군 다음으로 작은 군이다. 현재 행정구역은 1읍 1구 20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 소재지는 박천읍이다.
고려시기 이름에 ‘주’자가 달린 일부 고을들을 ‘천’자 또는 ‘산’자로 바꿀 때 박주를 청천강과 대령강을 비롯한 강하천이 많은 지역특성에 따라 박천군이라 하였다. 박주는 고려 초기의 박릉군에서 비롯된 지명인데, 박릉군은 고을 전체가 넓은 둔덕에 위치해 있다 하여 유래되었다.
박천군 지역의 단산리에서 구석기시대로부터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에 이르는 유물유적이 대량으로 발굴된 것은 이곳에도 원시사회에 인류가 살았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고구려시기에 고구려의 영토로 되어 있었으며 발해시기에는 서경압록부(西京鴨綠府)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왕조가 건립된 이후 박릉군(博陵郡), 고덕창(古德昌)으로 불리다가, 995년에는 패서도(浿西道)에 소속되면서 박주(博州)로 되었고, 1018년에는 북계(北界) 박주로, 1261년에는 서북면(西北面) 박주로 되었다. 조선이 건립된 이후 1413년에는 평안도 박천군으로 개편되었다. 1460년에는 군이 폐지되면서 영변대도호부(寧邊大都護府)에 소속되었다가, 1465년에 다시 박천군으로 복귀되었다.
1895년에 부군제를 실시하면서 의주부(義州府) 박천군으로 되었고 그 이듬해인 1896년 13도제를 실시하면서 평안북도 박천군으로 되어 군내면(郡內面), 동면(東面), 서면(西面), 남면(南面), 덕안면(德安面) 등 5개 면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서면 일부와 군내면 일부를 병합하여 북면(北面)을 신설하고, 서면의 나머지 일부를 군내면에 편입하였으며 가산군이 박천군에 편입되면서 가산군의 군내면(郡內面)을 박천군 가산면(嘉山面)으로, 동면을 박천군 가동면(嘉東面)으로, 남면을 박천군 가남면(嘉南面)으로, 동북면(東北面)을 박천군 청룡면(靑龍面)으로, 서북면(西北面)을 박천군 용계면(龍溪面)으로, 서면을 박천군 서면(西面)으로 각각 개칭하였다.
1918년에 군내면을 박천면(博川面)으로 개칭하였고, 1939년에 동면과 남면을 병합하여 동남면(東南面)을, 가남면 일부와 가동면 일부를 병합하여 양가면(兩嘉面)을 각각 신설하였으며, 북면이 박천면과 청룡면에, 가남면 나머지 일부가 덕안면에, 가동면 나머지 일부가 박천면에 각각 편입되어 8개 면을 관할하였다.
1953년에 운전군 북일리(北一里)를 흡수하였고, 수룡리가 원남리에 편입되면서 폐지되었다. 1954년에 보석리·구련리·영미리·서삼리·봉덕리·동삼리·삼봉리·청룡리·대연리·삼화리·북일리가 운전군에 이관되고, 봉흥리·봉성리의 각 일부 지역이 박천읍에, 차장리가 남흥리에, 영변군 서위리 일부가 석계리에 각각 편입되었으며, 맹상리가 맹중리(孟中里)로 개칭되었다. 동시에 영변군 상추리(上秋里)가 흡수되었다. 1958년 6월에 운전군의 삼화리, 삼봉리, 청룡리가 귀속되었고, 1972년에 덕성리·남흥리·용흥리 일부가 병합하여 덕성노동자구(德星勞動者區)로 개편되었다.
1980년에 덕성노동자구, 용흥리, 송도리가 안주군에 편입되었으며, 1982년에 형팔리가 대령리(大寧里)로 개칭되었다. 1997년 5월 맹중리가 맹하리 일부를 흡수하고 맹중노동자구(孟中勞動者區)로 승격되었다. 2003년 현재 행정구역은 1읍(박천읍), 1구(맹중노동자구), 20리(기송리, 단산리, 대령리, 덕삼리, 율곡리, 맹하리, 봉성리, 봉흥리, 삼봉리, 삼화리, 상양리, 상추리, 석계리, 송석리, 신평리, 원남리, 중남리, 청룡리, 청산리, 학암리)로 구성되어 있다. 박천군 소재지는 박천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