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동부 동해안에 위치한 군. 남부는 고성군ㆍ금강군, 서남부는 창도군, 서부는 안변군ㆍ회양군과 접해 있으며 북부와 동부는 동해에 면해 있다. 북서(장진리)~남동(신림리) 간의 길이는 47km이고, 남서(대곡리)~북동(구읍리) 간의 너비는 17km이며, 군 면적은 594.78㎢로서 도 전체면적의 5.36%를 차지한다. 현재 행정구역은 1읍 30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 소재지는 통천읍이다.
1413년 통주의 ‘통’자와 주자가 달린 고을이름을 산이나 천으로 고치는 규례에 따라 ‘천’자를 붙여 ‘통천군’이라고 하였다. 고려 때에 통주라고 불렀는데, 이 일대가 교통의 중심지로 사방으로 통하는 길목에 있는 고을이라 하여 비롯된 지명이다.
통천군 지역에서 청동기시대의 유물들이 다량 발굴된 사실은 적어도 이 시기부터 통천군 지역에 사람이 정착해 살았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역으로 되어 이 일대가 각기 휴양군(休壤郡)과 습비곡현(習比谷縣)으로 불렸다. 신라 진흥왕시기에 신라의 판도에 편입되었으며 경덕왕시기에 휴양군은 금양군(金壤郡)으로, 습비곡현은 습계현(習谿縣)으로 개칭하게 되었다. 신문왕 5년에는 명주(溟州)에 소속되었다. 고려 940년(태조 23년)에 습계현을 흡곡현(歙谷縣)으로 개칭하였다. 995년(성종 14년)에 삭방도(朔方道)에 편입되었고, 금양군에 현령을 파견하였다. 그 후 1248년(고종 35년)에 흡곡현에도 현령을 파견하였다. 그러다가 1285년(충렬왕 11년)에 금양군에서 현령을 폐지하고 통주(通州)로 개칭하여 방어사를 설치하였다.
1314년(충숙왕 1년)에 교주도(交州道)에 속하였고, 1388년(우왕 14년)에 교주강릉도(交州江陵道)에 속하였다. 조선왕조가 들어선 이후 1395년에 교주강릉도가 강원도로 개칭되면서 통천군 지역은 강원도 관찰사의 관할아래에 속하였다. 1413년(태종 13년)에 통주를 통천군으로 개편하고 군수가 부임되었다.
1895년 지방 행정구역 개편 때 23부제를 실시하며 통천군 지역은 강릉부 통천군과 흡곡군으로 되었으며, 1896년 전국을 13도로 개편하면서 강원도 통천군과 흡곡군으로 되었다. 이때 통천군 관하에 영외면(嶺外面), 순달면(順達面), 양원면(養元面), 용수면(龍守面), 군내면(郡內面), 벽산면(碧山面), 답전면(踏錢面), 임도면(臨道面), 산남면(山南面) 등 9개 면이 있었고 흡곡군 산하에 학일면(鶴一面), 학이면(鶴二面), 학삼면(鶴三面) 등 3개 면이 있었다. 1910년에 흡곡군 전체가 통천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순달면·영외면 일부·용수면 일부를 병합하여 순령면(順嶺面)을, 벽산면 일부·양원면 일부·용수면 일부를 병합하여 벽양면(碧養面)을, 임도면과 산남면을 병합하여 임남면(臨南面)을 각각 신설하였고, 영외면 나머지 일부를 답전면에, 양원면 나머지 일부와 용수면 나머지 일부·벽산면 나머지 일부를 군내면에 각각 편입하여 7개 면을 개편 관할하였다.
1917년에 군내면이 통천면(通川面)으로 개칭되었고, 1923년에 통천면이 다시 군내면으로 개칭되었다. 1929년에는 학이면과 학삼면을 병합하여 흡곡면(歙谷面)을 신설하였으며, 1931년에 군내면이 또다시 통천면으로 개칭되었다. 1936년에는 순령면을 고저읍(庫底邑)으로 승격하였고, 광복 전에 답전면을 송전면(松田面)으로 개칭하였다. 1943년에 흡곡면이 학이면과 학삼면으로 분리되었고, 1949년 행정구역 개편 시에 학이면과 학삼면이 병합하여 다시 흡곡면으로 개편되었다.
1954년 10월 용천리 일부와 화통리 일부를 분리 병합하여 명고리(鳴皐里)로 개편하고 마전리를 이목리에 편입하였다. 1967년 10월 풍산리 일부가 분리되어 이목리에 편입되었다. 2003년 현재 행정구역은 1읍(통천읍), 30리(가흥리, 강동리, 거성리, 구읍리, 군산리, 금란리, 대곡리, 노상리, 용수리, 용천리, 이목리, 명고리, 미평리, 방포리, 벽암리, 보탄리, 보호리, 봉호리, 송전리, 신대리, 신림리, 신흥리, 자산리, 장대리, 장진리, 중천리, 패천리, 풍산리, 하수리, 화통리)로 구성되어 있다. 통천군 소재지는 통천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