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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비엔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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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ວຽງຈັນ
  • Vientiane
    분류
  • 여행/오락 > 여행지
    주소
  • 라오스 비엔티안 시 Chanthabuly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3,220.0km
위치 : 메콩강 곡류 지점총면적 : 3,920 ㎢인구 : 61만명9개 행정구역 : 찬타불리(Chanthabouly), 시코타봉(Sikhottabong), 싸이세타(Xaysettha), 시사따낙(Sisattanak), 나싸이통(Naxaithong), 싸이타니(Xaythany), 핫싸이퐁(Hadxaifong), 상통(Sangthong), 응움 공원(Park Ngum)

신화에 따르면 비안찬시는 나가 수반낙(Naga Souvannanak)이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비안찬은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양 기슭에 자리한 고대도시로, 원래 명칭은 ‘반 농 칸테 피세우아남(Ban Nong Khanthae Phiseuanam)’ 이었는데, 기원전 430~120년의 첫 지도자였던 바우리찬(Bourichan) 혹은 프라야 찬타불리 파싯티삭(Phraya Chanthabouly Pasitthisak)이 현재의 이름인 비안찬으로 변경했다.

1357년 파 응움(Fa Ngoum)왕은 라오스 전체를 통일하여 란 쌍(Lane Xang) 왕국과 이웃 왕국을 아우르는 힘과 권력을 갖게 된 위대한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거창한 축제를 열었다. 이 축제는 오늘날의 비안찬 지역인 팍 빠삭(Pak Pasak)에서 열렸다.

1560년 싸이세타(Saysettha) 왕은 란쌍 왕국의 수도를 루앙쁘라방에서 비안찬으로 옮기며 비안찬을 ‘나코른 찬타불리 시타 타낙하나후드 우따마 라자타니(Nakorn Chanthabouly Sitta tanakhanahood Outtama Rajathany)’라 불렀다.

17세기 솔리야봉사 타미카랏(Souliyavongsa Thamikarat) 왕 시절, 비안찬은 가장 진보적인 도시로 성장하여 정치 행정, 사회경제 및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왕은 용맹하고 명석하며 자애로웠고, 백성들은 행복했다. 메콩강 기슭을 따라 늘어선 황금빛 집들을 내려다보는 궁전은 매우 아름다웠다.

그러나, 1828년 비안찬은 샴 군대에 의해 불에 타고 두 개의 도시로 분열되었다. 메콩강 우측의 도시는 샴의 영토가 되었고, 좌측의 도시만이 라오스의 영토로 남았다. 오늘날의 비안찬은 본래의 크기에서 절반으로 줄어든 규모로 남았다.

2009~2010년 사이 비안찬에서 중요한 역사적 행사가 두 개 열렸다. 2009년에는 동남아시아 스포츠 제전인 제25회 동남아시아게임(SEA Games)이 열렸고, 2010년에는 라오스의 비안찬 천도 450주년 (1560~2010년)을 경축한 것이다. 이 두 기념비적인 행사를 준비한 뒤, 비안찬 시민들은 여전히 이 도시의 평화롭고 쾌적하며, 환경친화적이고 매력적이며 경쾌하고 진보적인 특성을 계속해서 발전시켜오고 있다.
‘비엥(Vieng)’은 라오스어로 ‘도시’라는 의미이다.
‘찬타’(Chantha, tiane)는 빨리어로 백단향 혹은 달이라는 뜻이다. 비안찬은 백단향의 도시이며, 백단향은 도시의 상징이다. 비안찬은 또한 달의 도시, 혹은 시민들이 달을 상징으로 섬기는 도시이기도 하다. 실제로 라오스 국민들은 자신들의 선조가 달에서 왔다고 믿고, 심지어는 국기의 한 가운데에서도 달을 본뜬 모양을 찾아볼 수 있다.

비안찬의 구시가지에는 메콩강을 따라 고대의 사원, 박물관, 기념물, 공원이 서로 가까운 위치에 자리하고 있어 그 매력과 흥미를 더한다.

라오스의 현대적인 도시 비안찬시에는 갤러리, 부티크, 극장, 나이트클럽과 인터넷 카페가 들어서 있어 전 세계로부터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도시의 규모는 작지만, 비안찬시에는 라오스 요리뿐만 아니라 외국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다양한 식당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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