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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호동 아바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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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청호동 아바이마을
  • Cheonghodong Abai Village
    분류
  • 여행/오락 > 여행지
    주소
  • 강원 속초시 청호동 청호로 122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159.4km
본래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던 곳이었으나, 수복 이후 피난민들의 거주로 마을이 형성되어 속초리(束草里) 5구가 되었다가, 청호동(靑湖洞)으로 바뀜. 청호(靑湖)라는 이름은 청초호(靑草湖)에서 온 것이 틀림 없다. 청호동(靑湖洞)에는 함경도(咸鏡道)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까닭으로, 함경도(咸鏡道) 사투리 '아바이'를 사용하여 '아바이 마을'이라고도 한다.

아바이마을의 정확한 행정구역 주소는 "대한민국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이다. 청호동은 동쪽으로 바다, 서쪽으로 청초호를 사이에 두고 형성된 마을이다. 본래는 사람이 살지 않던 백사장으로 실향민들이 차츰 이곳에 몰려 들면서 1954년 11월 17일 법률 제350호인 '수복지구 임시 행정조치법'에 의거하여 수복 이후 북쪽에서 월남한 피난민들이 거주하면서 "속초리 5구"가 아바이마을의 시작이다.

이후 1966년 1월 1일 동제 실시에 따라 청호동이라 했는데 청초호와 인접했기 때문이다. 함경도 피난민들이 많음에 따라 함경도 사투리인 '아바이 마을'이라고 전체를 별칭하기도 하며 1통은 심포마을, 3통을 여흥마을이라고도 부른다.

처음 이곳에 정착한 주민들은 사람 허리 정도의 깊이로 땅을 파고 창문과 출입구만 지상으로 내놓은 토굴같은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해일이 일면 마을이 휩쓸려 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피난민의 생활과 같은 어려움 속에서 7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부분적으로 주택을 개축할 수 있었고, 나름대로 마을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청호동은 면적 0.30㎢에 1.149세대, 3.653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10개 통, 52개 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항만에 접한 작은 반도이므로 주민의 6할이상이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또한 북쪽에 고향을 두고 자유를 찾아 월남한 실향민의 70%정도가 집단 정착하고 있다.

이곳은 조양동으로 진입하는 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중앙동에서 대부분 무동력 운반선인 갯배를 이용하여 왕래했으므로 자연히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청호동의 상징물인 이른바 '5구 도선장'은 실향민들의 아픔을 실어 날랐다. 아직도 함남 북청군 신창읍 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갯배 입구에는 '북청상회'와 같이 함경도 지명을 딴 가게를 찾을 수 있다.

속초어업의 전진기지인 청호동에는 어촌계와 종성협회에 가입된 어선은 현재 163척. 어민은 370여명인데 무동력선이 1척, 15톤 미만이 149척, 15톤 이상이 13척, 연승이 54척, 유자망 13척, 머구리배 4톤급 1척이 있고, 해녀는 15명 정도이다.
수협 주관하에 풍어제를 매년 지내고 있으며 어촌계 주관으로 성황제도 매년 지내는데 선주들이 반드시 참가하여 풍어와 안전을 기원한다. 마을의 성황제의는 어촌계에서 제물을 장만하여 봄과 가을에 택일하여 지내고 있다.

청호동은 소야팔경중 청호마경(靑湖磨鏡)과 관련된 지역으로 청초호가 맑아서 마치 거울을 닦아 놓은 것과 같다는 뜻이다.

속초라는 지명과 금호동, 청학동 그리고 청호동은 모두 청초호와 연관이 있다 그만큼 청초호는 영랑호와 더불어 속초의 호수문화를 잉태시켰다고 볼 수 있는데 『택리지』에는 관동팔경에서 양양 낙산사 대신 청초호를 8경으로 꼽았을 정도다.

청초호는 『신증 동국여지승람』에 언급하기를 쌍성호라 하였다, "부의 북쪽 40리 간성군과의 경계에 있으며 둘레가 수십리다. 호수 경치가 영랑호보다 훌륭하고 예전에는 만호영(萬戶營)을 설치하여 병선들이 정박하였으나 지금은 폐하였다"고 하였다.

청초호는 쌍성호(雙成湖)외에도 진성호(震成湖) 또는 논뫼호라고 부르고 있으며 겨울에는 얼음이 얼어서 갈라진 것으로 한 해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던 용경(龍耕) 점세풍속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