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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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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尹东柱公墓
  • 윤동주 묘소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지린 옌볜 조선족자치주 룽징시 光新镇 合成理 东山 公墓 內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615.6km
윤동주가 일본에서 항일운동하다가 옥중에서 순국한 후 그의 유해를 안장한 묘소

윤동주(尹東柱)는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자기의 시와 삶을 바친 저항시인이다. 아명은 해환(海煥)이며, 지린성 허룽현 명동촌(吉林省 和龍縣 明東村, 현재 룽징시 광신진 명동촌)에서 출생하였다. 1931년 3월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1932년 룽징 은진중학교(恩眞中學校)에 입학하였다. 1935년 9월 4학년 첫 학기를 마친 후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평양 숭실중학교(崇實中學校)에 진학하였다가 학교가 폐교되자 다시 룽정에 돌아와 광명중학교(光明中學校) 4학년에 편입하였다. 1938년 2월에 광명중학교 졸업 후 서울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다.

1941년 12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이듬해 4월 일본에 건너가 도쿄(東京)의 릿쿄대학(立教大学)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 10월에 교토(京都)의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学) 영문과로 전학하였다. 재학 중 유학생들과 회합의 기회에 민족독립사상을 선양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노력하던 중 1943년 7월 19일에 일본경찰에게 붙잡혔다. 그 이듬해 3월 31일 ‘독립운동’의 죄목으로 2년형의 선고를 받고 후쿠오카 (福岡) 형무소에 이감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2월 16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윤동주는 유작인 《하늘과 바람과 시》에서 일제 식민통치를 저주하고 수난에 허덕이는 민족의 비참한 조우를 통탄하면서 민족에 대한 자아적 반성과 참회의식, 민족의 지조와 순절정신, 미래에 대한 열렬한 동경 등을 다루었다.

매년 청명(淸明) 때 윤동주의 묘소에는 그를 기리려는 많은 사람이 참배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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