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북도 중부에 있는 군. 북부는 연탄군ㆍ수안군, 동부는 신계군, 남부는 평산군ㆍ인산군, 서부는 봉산군과 잇닿아 있다. 동서(대평리~백암리) 간의 길이는 21km이고, 북남(운천리~양암리) 간의 길이는 34km이며, 면적은 566.14㎢로서 도 전체면적의 5.98%를 차지한다. 현재 행정구역은 1읍 20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 소재지는 서흥읍이다.
고려 초에 평주(平州)의 속현(屬縣)으로 편입되어 있었는데, 1270년(원종 11년) 고려왕의 태를 이곳에 묻어 상서롭고 흥할 징조로 하여 서흥현(瑞興縣)으로 승격되었다.
서흥군 지역의 남한리에서 청동기시대의 유적유물들이 발굴된 것은 적어도 이 시기부터 서흥군 지역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다. 삼국시대에 서흥군 지역은 고구려의 영역에 속해 있으면서 우차탄홀(于次呑忽), 오곡성(五谷城)이라 불리웠으며 통일신라 때에는 오관(五關)이라 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동주(洞州)라 개칭하였다. 1270년 (원종 11년)에 왕실의 태를 이곳에 묻었다 하여 서흥현(瑞興縣)으로 승격되었다. 조선왕조가 들어선 후 1413년에 서흥군으로 되었고 1424년(세종 6년)에 서흥도호부(瑞興都護府)로 승격되었다.
1896년에 황해도 서흥군으로 개편되면서 중부방(中部坊), 동부방(東部坊), 매양방(梅陽坊), 화회방(禾回坊), 전막방(田莫坊), 소기방(蘇己坊), 평리방(坪里坊), 소사방(所沙坊), 세평방(細坪坊), 도의방(道義坊), 구정방(九井坊), 목감방(木甘坊), 율리방(栗里坊) 등을 구정면(九井面), 현포면(峴圃面), 도하면(道下面), 도상면(道上面), 용연면(龍淵面), 평리면(坪里面), 내기면(內己面), 상덕면(象德面), 동부면(東部面), 목감면(木甘面), 매양면(梅陽面), 중부면(中部面), 화회면(禾回面), 율리면(栗里面), 세평면(細坪面), 소사면(所沙面) 등 16개 면으로 개편하여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구정면과 현포면을 병합하여 구포면(九圃面)으로, 도상면과 도하면을 병합하여 도면(道面)으로, 평리면과 용연면을 병합하여 용평면(龍坪面)으로, 상덕면과 내기면을 병합하여 내덕면(內德面)으로 각각 개편하였다. 1929년에 중부면을 서흥면(瑞興面)으로 개칭하였고, 광복 직후 동부면과 화회면을 병합하여 신막면(新幕面)으로 개편하였다.
1953년에 백암리의 일부가 범안리에 편입되었고, 1954년에 황해북도 서흥군으로 되면서 청포리의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양사리(陽射里)를 신설하였다. 1956년에 대성리가 신막리와 거문리에 분리 편입되면서 폐지되었다. 1958년에 서흥읍을 화곡리로 강등하고, 신막리와 평산군의 물개리 일부를 병합하여 서흥읍으로 개편하였다. 동시에 평산군의 양암리를 흡수하였다. 1963년에 화봉리의 일부가 대평리에 편입되었고, 1967년에 신당리의 일부가 운천리에 흡수되었으며, 1974년에 천곡리가 남한리와 청포리에 분리 편입되면서 폐지되었다.
1981년에 당현리를 은정리(恩情里)로 개칭하였으며, 1989년에 삼천리가 일부 지역을 문무리에, 수곡리가 일부 지역을 범안리에 각각 편입하고 은정리와 함께 봉산군에 이관되었다. 2002년 10월 현재 행정구역은 1읍(서흥읍), 20리(가창리, 거문리, 고성리, 금릉리, 남한리, 대평리, 낙촌리, 문무리, 백암리, 범안리, 봉하리, 송월리, 신당리, 양사리, 양암리, 운천리, 자작리, 청포리, 화곡리, 화봉리)로 구성되어 있다. 서흥군 소재지는 서흥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