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성의 별별이야기 | 여름 별미, 매콤 새콤 고소 시원한 '량피'
량피 凉皮[liángpí]는 입맛이 없을 때도 무난히 당기는 중국 음식이다. 주로 중국 북방지역에서 즐겨먹던 요리로 쌀가루나 밀가루 반죽을 쪄서 만든 것을 국수 썰듯이 썰어 양념과 채소를 넣어 비벼 먹는 음식의 통칭이다. 쉽게 말하면 비빔국수나 묵채 비슷한 음식이다.

량피의 유래
진시황 때 한 해는 중국 산시성 일대 친쩐(秦镇)이라는 마을에 흉년이 들었다. 당시 농민들은 매년 조정에 쌀을 공납해야 했는데 흉년 탓에 그해 조정에 공납을 바칠 쌀 품질이 너무 떨어졌다. 하늘 탓만 할 수 없는 노릇.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차에 '리스얼'(李十二)이라는 마을 사람이 쌀을 가루를 낸 다음 쪄서 미피*라는 것을 만들어 진시황에게 진상했다. 이 미피를 맛본 진시황은 그 맛에 반해 친쩐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이후부터 이 미피만을 진상하게 했다고 한다. 이것이 량피의 원조인 친전다미몐피쯔(秦镇大米面皮子) 약칭: 친전미피(秦镇米皮)라고 한다.



*미피: 米皮. 쌀가루로 쪄서 만든 넓적한 형태의 얇은 전병 같은 것.
매끄럽고 부드럽게 씹히며 술술 넘어가는 식감
중국 생활 중 종종 사무실 근처에서 파는 량피를 사가지고 와 직원들과 시원한 에어컨 앞에 앉아 먹곤 했다. 여름철 출출하긴 한데 입맛이 없는 난감한 상황이 오면 특히 딱이었다. 예전에 량피는 한겨울을 제외하고 중국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요즘은 노점상에 대한 규제가 심해져서 많은 길거리 음식들이 거리보다는 식당이나 혹은 마트, 슈퍼, 시장 등을 찾아가야 맛볼 수 있다.

'량피'는 '냥피'酿皮[niàngpí]*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그냥 '량피'로 부른다. 새콤 고소하면서도 매콤하게도 먹을 수 있다. 침샘도 자극하고, 매끄럽고 부드럽게 씹히며 술술 넘어가는 식감이 무기력해진 입과 혀가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먹을 수 있게 해준다.


*중국에서는 냥피와 량피는 구분 지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량피를 주문하면 몐피와 몐진에 식초, 마늘물, 소금물, 땅콩소스에 고추기름, 고춧가루, 오이 등을 넣어 비벼준다. 그 조리 과정을 보다 보면 너무나 간단해서 량피라는 요리를 얕잡아 보거나 무시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량피의 주재료를 만드는 과정을 알게 되면 생각이 달라지게 된다. 량피의 메인 재료는 곡물 반죽으로 만든다. 쌀 또는 밀가루 등을 여러 작업을 거쳐 량피의 주재료 몐피(面皮)와 몐진(面筋)을 만들어 내는데 그 과정은 잠시 후 설명하기로 한다.
량피를 만들 때 넣는 양념은 기본적으로 비슷하지만 채소는 제각각이다. TV 프로그램에서 백종원씨가 량피를 사 먹으면서도 얘기했지만 중국인들은 매운 것을 잘 안 먹는 사람도 꽤 있다. 그래서 주문을 받을 때 손님에게 양념은 "매워도 되냐"고 물어본다. 채소의 경우는 집집마다 자기 방식대로 넣는다. 오이, 샹차이2는 보통 기본적으로 들어가고, 숙주나물을 넣어주는 곳, 당근이나 샐러리 등을 넣어 주는 곳 등 조금씩 차이가 있다.


1 매운 것을 못 먹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매운 것을 많이 먹으면 샹후어(上火) 하거나 이미 샹후어한 사람들은 매운 것을 피하는 문제 때문인 경우도 있다. 샹후어(샹후오, 상후오, 샹훠)란 중의학에서 대변이 건조해지거나 구강 혹은 비강, 점막 등에 염증이 생기는 증상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몸에 열이 오른 증상을 말한다.

* 출처 : 교학사 중한사전 (박영종 저) 네이버 어학사전 재인용


2 고수. 독특한 향이 강해서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은 못 먹는 사람들이 많다. 익숙지 않으면 "부야오 샹차이"라고 말할 것.
량피를 좋아하다 보니 사진이 있는 메뉴판이라면 매번 반드시 량피를 시키지 않더라도 유심히 들여다보곤 한다. 보통 가격이 얼마 하지 않아서 사진을 들여다보다 결국은 주문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메뉴판에 사진이 없는 경우엔 충동 오더가 좀 덜한 편이다.


* 사진 설명 : ▲ 1. 량피와 스즈터우 2. 량피
량피 주재료 만드는 법
몐진(面筋) 만드는 법
우선 쌀가루 또는 밀가루(혹은 섞어서) 반죽을 만든 다음 그 반죽을 맑은 물에 넣어 치대 씻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을 통해 곡물에 포함된 식물성 단백질을 제외한 전분 등의 다른 성분들이 물속으로 빠져나와 물이 우유처럼 하얗게 변한다. 씻어도 맑은 물이 유지되는 단계까지 가면 식물성 단백질로 이뤄진 반죽이 완성된다. 몐진은 마무리 방법에 따라 세 가지 형태로 만들 수 있다.

찜 적당히 널찍하게 깔아 쪄내거나,

튀김 새알처럼 만들어 기름에 튀겨내거나(油面筋; 요우몐진)

삶기 물에 80분가량 푹 삶아낸다.(水面筋; 수이몐진)

이 세 가지 중 선택해 익힌 다음 식혔다가 요리에 사용한다. 당연히 각 조리법에 따라 맛과 식감이 달라진다.

참. 반죽 씻은 물들은 버리면 큰일 난다. 몐피의 재료니까.
▲씻어낸 몐진. 여러 차례 씻어주면 흰 물이 나오지 않고 맑은 물이 남는다. 반죽 덩어리는 글루텐 함량이 높아져 쫀득쫀득해진다.
▲몐진
▲요우몐진
面筋[miàn jīn] gluten
완성된 몐진은 얼핏 보면 유부와 비슷하다. 기포들이 있어서 사이사이로 양념이 배어들면 씹을 때 마치 육즙이 배어 나오는듯한 식감이 든다.
몐피(面皮) 만드는 법
반죽 씻은 물을 모아 한동안 가만 놔두면 전분 등이 포함된 하얀 내용물이 바닥에 가라앉는다. 다 가라앉으면 침전물을 남기고 윗부분의 맑은 물은 버린다. 침전물들은 몐진과 마찬가지로 널찍하고 얇게 부어 찐다. 한판에 안되면 여러 판에다 부어 층층이 쪄낸다. 그럼 얇고 보들보들한 반투명의 몐피가 완성된다. 쪄낸 몐피는 식혀두었다가 국수처럼 써는데 잘 부서지니 조금 널찍하게 썰고 몐진은 깍둑 썰어서 량피를 만드는데 섞어 넣는다.
중국 식품을 취급하는 곳에서 말린 몐피나 몐진을 구할 수 있다. 주재료를 구할 수 있으니 직접 만들어 먹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경험에 비춰볼 때 아무래도 현지에서 먹는 것만 하진 못하더란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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