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징로(远景路)에서 생활하는 한국인들은 경제적인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언어의 장벽, 생활터전 마련, 자녀교육 등의 난제를 극복해야 한다.

위안징로 상권에 있는 사람들의 활동 범위는 기본적으로 위안징로와 숙소로 국한돼 광저우의 다른 지역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아무래도 진정한 중국 문화를 체험하기를 꺼리는 것 같다. 또한 상권 지역 바깥의 사람을 만날 때도 경계심을 갖는다.







▲ [자료사진] 위안징로 한국거리
▲ [자료사진] 위안징로 한국거리

폐쇄의 성, 코리아타운
10년 전 중국에 온 홍(洪) 씨는 위안징로에서 한식당을 4년째 운영하고 있다. 오랜 기간 생활했지만 중국어 수준은 고객의 주문을 받을 수 있는 정도이다. 고객 옆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드셔도 됩니다(可以吃了)"라고 말하는 것이 전부다.

이처럼 중국 고객들과의 교류가 원활하지 않은데도 홍씨는 중국어를 배울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중국에 계속 머무를 생각이지만 고객과 식당 직원을 제외하고는 다른 중국인들과 만나려고 시도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에게 있어 식당은 외부와 단절된 하나의 '나라'인 셈이다.

다른 한국식당의 경우, 만면에 미소를 띤 한국인 사장이 간단한 중국어 몇마디로 반갑게 맞이했다. 그런데 내가 식당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기 위해 몇가지 질문을 하자, 사장의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지며 "팅부동(听不懂, 못알아 들어)"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거리를 뒀다.

위안징로를 취재하며 만난 한국인들은 모두 주변의 한국인들과는 교류를 나누고 있었지만 중국인 친구가 있는 사람은 매우 적었다. 언어가 통하지 하는 것도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마음만 있다면 중국어를 배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관건은 이 '폐쇄된' 상권에서 벗어나 시내 중심가로 나갈 의지만 있으면 된다.

이같은 폐쇄성은 바로 한국인의 민족적 기질에서 나온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국인의 민족적 기질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는 이화여대 최준식(崔俊植) 교수는 저서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에서 "한국인은 '우리'라는 단체의식이 지나치게 강하다."며 "한국인은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보호하려 하며, 외국인에 대한 배타성이 매우 강하다"고 설명했다.

민족적 단합력이 강한 한국인들이 이국 타향에서 만나니 민족 문화적 결집력이 더욱 강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본인 혹은 주변 친구들이 중국에서 겪은 좋지 않은 경험도 그들의 경계심을 높이는데 한몫 했다. 그래서인지 위안징로 상권 바깥의 사람들에게는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위안징로에서 명동안경점을 운영하고 있는 방씨는 위안징로 "이곳 관리 공안들은 관리비 명목으로 매년 650위안(11만6천원)을 받아가지만 실제 사건이 발생하면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며 치안에 대해 불만을 털어놨다.

방씨의 말에 따르면 최근 친구 가게에서 도둑이 물건을 훔쳐 달아나 신고했는데 경찰은 현장에 와서 몇마디 질문만 던지고는 가 버렸다. 현재까지도 도둑은 잡지 못했다.

실제 위안징로의 치안관리는 취약하다. 기자가 바이윈구(白云区) 탕징가가도판사처(棠景街街道办事处)에 위안징로의 한국인 인구 수를 물었는데, 담당 직원은 판사처의 소관이 아니라 탕징가(棠景街)의 부동산관리서비스센터(이하 센터) 소관이라고 했다.

부동산관리서비스센터의 정문에는 10개의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그 중에는 '탕징가외국인관리서비스센터'라는 간판이 있었다. 기자가 담당 직원에게 사실을 확인하자, 그 또한 "우리 소관이 아니다"며 "여기는 외국인 전용 관리 서비스센터가 없다"고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간판만 있고 담당 부서는 없다는 얘기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조선족과의 관계
위안징로의 한국인과 조선족은 공생 관계인 것처럼 보인다. 이는 광저우 뿐 아니라 베이징, 칭다오(青岛) 등에서도 마찬가지로 한국인 밀집지역에는 조선족들이 적지 않은 수가 살고 있다.

한국인과 조선족이 쓰는 한국어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조선족은 푸퉁화(普通话, 중국 표준어)를 쓰면서도 한국인들과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위안징로에서 한국인과 중국인들의 소통을 돕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위안징로를 방문하는 중국인들은 생김새가 비슷하고 피부색도 같은 한국인, 조선족을 구분할 수 없으며 굳이 구분할 필요성도 못 느낀다.

한편, 위안징로에는 상점, 식당을 경영하는 조선족이 많아 한국인들과의 경쟁이 치열하다. 간판에는 한글이 쓰여져 있는데 일반 중국인들은 이를 구별해내지 못하며, 위안징로에 사는 중국인들만 그 '미세한 차이'를 구별해 낼 수 있다.

방씨는 "안경점 뒤쪽의 커우수이제(口水街)에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은 하나 뿐이며, 나머지는 조선족이 경영한다"고 설명했다.

방씨의 경우, 평소에 고향의 맛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한국음식점을 선호한다. 일부 한국인은 "음식맛만 괜찮으면 된다"며 한국인, 조선족 식당을 가리지 않는다.

조선족에 대한 한국인의 견해는 제각각이다. 광저우한인상회 송승열(宋承烈) 부회장은 "조선족은 한국인과 현지인 사이에서 소통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한국인이 있는 곳에는 조선족이 있으며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전적 이익이 걸리면 이러한 우호적 관계는 금새 사라진다. 한국인 식당 대장금을 운영하는 감(甘) 총경리는 "원래 대장금 맞은편에 한국식당이 1~2곳이 더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며 "사라진 한국 음식점의 대부분이 조선족들과 연관이 있으며, 심할 경우에는 서로간에 폭행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조선족들이 한국인 행세를 하며 이곳에 상점을 열지만 국적이나 문화 면에서 모두 중국인이다."고 말하고 "조선족은 한국인에 비해 여기에서 영업허가증(营业执照, 영업집조)을 내기도 수월하며, 임대료도 한국인에 비해 싸게 받는다"고 덧붙였다.







▲ [자료사진] 위안징로 한국거리의 유일한 노래방
▲ [자료사진] 위안징로 한국거리의 유일한 노래방 '스핑크스' 입구
 
위안징로의 유일한 노래방, 스핑크스
저녁이 되면 위안징로 뒷편의 커우수이제의 네온불빛이 밝아지고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일을 마치고 이곳에서 친구, 바이어들을 만나 식사를 한고 술을 마시기 때문이다.

위안징로에 하나 밖에 없는 가족노래방인 스핑크스(중국명 斯平克丝)가 커우수이제에 있다. 3년 전 개업한 이곳은 바이윈구(白云区) 최초의 노래방으로 대장금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이 설립했으며 직원의 70%가 한국인이다.

한국의 유흥문화가 발달하면서 노래방은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는 장소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수시로 나온다. 하지만 이곳의 노래방과 드라마에 나오는 호화로운 노래방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인테리어가 다소 낡았으며, 노래방 시스템도 최신 것과는 거리가 있다. 스크린과 음향 효과도 일반적이다. 다만 이점이 있다면 한국에 비해 가격이 싸다는 점이다.

그래도 한국인들은 노래방 시설에 불만을 가지진 않는다. 서울에서 온 한국인 유학생은 "노래방 시설이 빈약하긴 해도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 서울에서도 이같은 시설의 노래방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광저우 한국인의 숙원은 한국국제학교 건립
광저우에서 생활하는 한국인들의 공통된 근심은 '자녀교육'이다. 일본국제학교는 있지만 한국국제학교는 아직 없다. 

송승열 부회장은 "대기업에서 파견나온 주재원의 경우, 기업에서 학비를 부담해주기 때문에 일반 국제학교에 보내지만, 가정형편이 넉넉치 않은 일반인들은 자녀를 우선 현지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가 중학생이 되면 국제학교 또는 영어 교육을 중점적으로 시키는 현지 학교에 입학시킨다"고 말하고 "대부분의 경우는 후자에 속한다"고 덧붙였다.

자녀를 초등학교는 현지 학교에 입학시키고 중학교는 국제학교에 보내는 이유에 대해서 송 부회장은 자신의 두 아들을 예로 들며 "광저우에 와서 중국어 공부를 시작한 아이들이 교육과정을 소화하는데는 어려움이 많았으며 중국 학생들과 경쟁해 좋은 중학교에 들어가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현지 중학교에 입학하면 추가적으로 소요되는 비용이 적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돈을 조금 더 내고 국제학교에 보내는 게 낫다"고 설명했다.

광저우의 미국식 국제학교와 영국식 국제학교인 유탈로이(Utahloy, 중국명 裕达隆)국제학교는 한국 학생의 비중이 크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전통문화를 접하기 위해서는 한국국제학교가 빨리 설립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광저우총영사관 김장환(金长焕) 영사는 최근 신콰이바오(新快报)와의 인터뷰에서 "광저우한인국제학교의 건립은 광저우 교민들의 숙원으로 학교 부지 선정, 자금 융자 등 정식 건립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며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는 3월 광저우한인상회는 국제학교설립추진위원회를 정식으로 설립하고 교민들과의 좌담회, 세미나 등을 통해 기금 마련에 나설 계획이다. [번역 : 온바오 강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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