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시장 공략 '현지화'



중국 진출 한국기업이 몇년전부터 추진해온 '현지화 전략'을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중국에 대한 시각이 제조업 기지에서 유통 시장으로 바뀌면서 추진해온 현지화 전략이 곳곳에서 문제가 노출되고 있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국내 제조업체들 뿐 아니라 대기업이 대거 중국에 진출해서 현지 공장에 세우고 제조기지를 구축했다. 한국은 산업화의 성공으로 2차산업 시대를 넘어 3차산업시대로 진입하면서 임금, 세금, 부동산, 규제 등의 제조환경이 열악해지자 중국 진출이 급속도로 진행됐었다.



중국은 당시 저임금, 저지가, 세금혜택과 함께 규제 관련 법률이 정비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중국에 공장을 세우고 제품을 생산해 국내 혹은 제3의 시장으로 유통했다. 중국 현지 생산체제를 갖춘 한국 기업들은 적지 않은 제조 이윤을 얻었다.



하지만 중국경제의 급속한 성장으로 제조환경이 열악해지고 시장이 성숙되면서 몇년전부터 중국 진출 한국기업들이 중국 내수시장 공략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내수시장 공략에 나선 한국기업들은 하나 같이 '현지화' 전략을 강조했다.



당시 나는 현지화 전략은 한국기업의 차별화를 실현하는 것과 동시에 고려하지 않으면 오히려 실패를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한국기업의 현지화는 구체적으로 주재원 감축과 동시에 현지인 대체, 그리고 재료의 현지 조달, 한인시장 외면 등으로 진행됐다.





현지화로 차별화 포기



2000년에 접어들면서 국내 대형유통기업이 중국시장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며 진출했다. 몇년전 베이징 왕징에도 점포를 내고 영업을 시작했다. 개업 초기에 매장내에서 현지 고객과 직원간에 다투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고객이 불만사항을 직원에게 말했는데 현지 직원이 불성실하게 답한 모양이었다. 현지 고객은 "'한국마트'라고 해서 왔는데 이런 식이면 다른 게 뭐냐?"라고 반문하고 화를 내며 사라졌다.



주요 도시에 공격적으로 점포를 늘린 이 업체는 서비스와 상품의 차별화에 실패해 왕징, 우중로 등의 한국식품가게보다 못한 수준이다. 현지 상품으로 가득 채우고 현지 직원 수준의 서비스로 운영하면서 브랜드만 한국인 셈이다. 현지 고객들은 한국 브랜드를 보고 한국 식품과 상품을 기대하고 갔다가 금방 발길을 돌린다.



왕징의 아파트촌 현지 아이들은 여름 되면 한국 아이스크림만 찾는다. 아이들은 경제적 개념은 없지만 입맛은 정직하다. 한국 아이스크림을 맛본 중국 아이들은 오직 "한국 것(韩国的)"만 찾는다. 현지 업체들이 앞다투어 만들어낸 비슷한 제품도 아이들의 입을 속이지는 못한다.



최근에 중국 CCTV에서 삼성 캘럭시 제품을 대상으로 '표적방송'을 하고 문제를 삼았다. 현지 삼성서비스센터에 찾아가서 추궁을 하듯이 준비된 질문을 해서, 현지 직원이 응겹결에 대답한 '멘트'를 따서 그대로 방송에 실어 내보냈다. 마치 삼성 대변인의 말인양 인용해서 보도했다.



모 전자회사의 경우, AS 시스템을 현지 가전제품 수리센터에 맡기면서 현지 고객의 불만과 항의가 잇따랐다. 제품에 문제가 있어서 AS를 신청하면 AS 대리점의 현지 직원은 수리는 안 하고 제품 구입 혹은 부품 유료교환을 권해 고객의 불만이 쌓이기도 했다. 이같은 서비스 시스템으로 현지에서 브랜드 신뢰도가 급속히 실추됐다. 



일부 기업은 현지화를 위해 한국과 벽을 쌓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모 식품회사는 브랜드가 외국의 유명도시를 연상케해 현지 고객들이 한국기업이라고 생각지 못하고 다른 나라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오히려 자랑스러워 하기도 했다.



현지화의 전략을 잘못 인식한 중소기업들은 무턱대고 중국시장을 말하기도 한다. 최근에 진출한 한국 의류업체는 중국시장을 공략한다며 현지 한인고객은 관심이 없다며 자신 있게 말했다. 자본금 규모는 베이징 왕징 정도도 벅차보이는 중소기업이 13억 중국시장을 공략한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었다. 중국 현지 기업 중에서도 전국 규모의 판매망을 갖춘 국가급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우리 기업들이 상대하는 중국 현지의 잠재고객층은 한국 브랜드라고 하면 주변의 한인들에게 확인하게 된다. 비싼 가격의 제품일수록 구입에 신중하기 마련이다. 하루가 멀다가하고 새로운 브랜드와 제품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당연히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한 지인의 말 한마디가 제품 구입에 결정적 근거를 제공하기도 한다.  



근년들어 중국 관광객이 한국으로 몰려가고 있다. 한국 관광을 갔던 중국인은 베이징 왕징, 상하이 우중로 등 코리아타운을 찾으면서 코리아타운 경기 회복의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 중국 진출 한국기업들은 현지화 과정에서 한국기업의 특성과 장점을 잃어버리고 현지 기업과 비교해 차별화하는데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Korean is something different"



한류문화는 이미 중국 대중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이같은 문화적 현상이 한국 제품과 음식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경제적 가치 창출에 활력소가 되고 있다.



중국 현지기업들은 맞춤법도 틀린 한글로 포장을 해서 한국 상품인양 시장에 내놓는데, 한국기업은 오히려 '한국'을 감추고 현지 기업이고 싶어한다.



근년들어 중국 민항에서도 한국인 스튜어디스를 채용하기 시작했다. 한국인 승객이 있는 노선에만 배치하는 것이 아니다.중국 국내선 항공기에도 한국인 스튜어디스를 배치한다. 서비스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대한항공 혹은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한다. 중국민항 국제선을 탑승했을 때, 스튜어디스가 뒤에 서서 어깨를 툭 치며 "핸드폰 꺼!(关机)"라며 퉁명스럽게 말하는 '황당한 서비스'를 받은 적이 있다. 이같은 황당한 서비스를 종종 경험한 이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한국민항만 이용하게 됐다.



차별화는 인재와 혁신적 철학에 의해 가능하다. 현지 직원으로 대체하면 인건비를 줄이고 내수시장 공략에 유리할 것 같지만 차별화에 실패할 수 있는 함정도 있다. 외국기업이 차별화에 실패하고 현지 기업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는 비법은 없다.



한국 국내 수준의 서비스 예절, 인재 경쟁력은 단기 교육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성장 환경과 사회문화, 장기간의 교육을 통해서 가능하다. 공장은 매뉴얼대로 반복하면 돌아가지만 시장에서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업무는 매뉴얼대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중국 현지에서 유학한 한국유학생들은 현지 한국기업에 취업하려 하지 않는다. 국내에서 취업할 경우와 비교해 현지 취업을 할 경우에는 조건이 현지인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은 정식직원 채융으로 유혹해서 인턴 사원으로 채용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정리하는 사례도 있었다.



삼성과 현대자동차는 중국시장에서 대단한 실적을 올리고 있다. 비결은 차별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며 한류문화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지화 전략이 틀린 것은 아니다. '업그레이드'는 못해도 최소 '다운 그레이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외국계 기업으로서 갖추어야 할 차별화를 포기하는 현지화는 '자살행위'일 수도 있다. 현지화 전략이 현지 시장에 비굴한 자세를 취하고 한국과 한국인을 외면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한국인인 것이 부끄러운가? 중국인은 한국에 호감을 갖는데, 왜 한국이 아닌 것처럼 행세하려는가? 겸손과 비굴은 전혀 다른 뜻이다. 중국인이 최고로 치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 있다. "你有思想的" 이는 "당신은 철학이 있는 사람이다"라는 뜻이다. 중국에서도 생각이 깊고 혁신적 사고를 하는 사람과 기업을 존중한다. 



중국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들은 13억의 중국시장을 거론한다. 과연 13억 인구 전체가 잠재적 고객일까? 실제 우리의 잠재적 고객은 상위 10%의 인구이다. 그리고 상위 10%의 인구를 공략해야 그 다음의 계층도 호감을 갖는다. 중국의 소비시장 구조는 계란의 노란자와 흰자와 같이 구분돼 있다. 현지 시장과 사회,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마케팅 전략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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