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연변 용정에 위치한 윤동주 시인의 생가
▲ [자료사진] 연변 용정에 위치한 윤동주 시인의 생가
 
오랫동안 객지생활을 하다가 고향에 돌아오니 아는 사람을 만나기 무섭다. 과거 서로 어울려 추억을 만들고 이상을 담론하고 세상을 걱정하던 배운 사람들이건만 마주 앉으면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 보면 먹을거리가 넉넉하고 입을 거리도 푼푼하건만 무슨 욕심이 그리도 많은지 온통 돈 얘기들뿐이다. 돈에 환장하다 보니 덕담은 고사하고 다른 사람의 얘기를 찬찬히 들어주는 자세도 아량도 없다.

객지에서 보고들은 얘기를 해주면 별로 내키지도 않아한다. 한국도 일본도 미국도 더는 그들의 귀맛을 돋우지 못한다. 하기야 문화대혁명시기에 벌써 ‘논두렁에 서서 세계를 내다 본’ 사람들이고 미국을 ‘종이범’으로 안 사람들이고 이제는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니 세상에 더 이상 무섭고 두려울 것이 어디 있으랴. 그러다 보니 자기방식이 아니면 듣지도 용납하지도 않는다. 당나귀가 돼 버린 것이다.

돌이켜보면 조선족의 역사는 혁명의 역사이고 투쟁의 역사였다. 새 중국이 성립된 뒤에도 각종 계급투쟁과 노선투쟁으로 투쟁의 역사를 거듭했고 소학교시절부터 중앙과 상급에서 지정한 특정인물에 대한 비판과 자아비판, 같은 반 학생에 대한 ‘방조(비판)’로 뼈가 굳은 사람들이다. 개혁개방 이후 시장경제의 결실로 사회생활이 변화를 일으켰지만 그들의 머리는 여전히 드팀없다. 누구를 혹독하게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고 남한테 지고는 못 살며 남을 인정하면 죽는 줄로 안다.

게다가 지난시기 70년대 성인 공자마저 임표와 함께 한방에 날려버리고 개혁개방을 맞으며 모택동사상도 송두리째 뽑아버렸으니 머리에 남은 것은 먹고살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고 긁어모으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고 도덕적 규제를 받지 않는 무정부, 무절제, 무차원의 자유주의에 빠져있다. 당연 예의를 말하는 사람도 윤리를 강조하는 사람도 없다. 예의와 윤리도 이미 문화대혁명시기에 ‘낡은 사회의 멍에’로 규정짓고 무시해 버린 지 오래다.

설상가상으로 시장경제가 몰고 온 부에 대한 탐욕으로 가정과 사회전반이 돈으로 사람을 저울질하고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강아지로 되어버렸다. 자연 부의 다소에 따라 열이 지어지고 힘의 다소에 따라 선후가 가려지고 눈만 뜨면 돈 생각을 하고 돈만 보면 게 눈 감추듯 삼켜버리고 돈만 던져주면 지아비노릇도 부모자식노릇도 다 한 것으로 안다.

그렇다고 그들끼리도 화목하지 않다. 일도 아닌 걸 가지고 신경전을 벌리고 ‘잘못했다’고 한마디로 끝낼 일도 지고는 못사는 성미 때문에 두고두고 신갱이질을 한다. 앞에서는 그럭저럭 체면치레를 하다가도 그늘진 곳만 보이면 상대를 어느 집 손자쯤으로 알고 씹는다. 한심한 것은 중국사회와 민족사회에서 알아주는 사람들도 그들의 입에 들어가면 조금도 질겨하지 않고 씹어 삼키는 것이다.

이럴 때 한국인들이 부러울 수밖에 없다. 그들은 서로 씹다가도 외부에서 돌멩이가 하나 날아오면 언제 그랬냐 싶게 똘똘 뭉친다. 그러나 조선족들은 돌멩이가 날아오면 뿔뿔이 흩어지고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면 동료를 팔아먹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그랬다. 조선족임을 서로 모를 때에는 서로 깍듯이 예를 갖추다가도 조선족임을 알면 금방 함부로 대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상대가 조선족이기 때문이다.

어른이 어른답지 못하니 아이들이 무얼 보고 철이 들겠는가. 길거리에서 아들 같은 아이들에게 반말을 하면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고 입으로 뭐라고 씨부렁거린다. 그리고 아이들이 위아래가 없고 어른을 보면 인사하는 법이 없고 그나마 우물쭈물하는 정도면 봐줄만한 편이다. 서로 얕잡아보고 함부로 대하는 것은 기본이고 좀 세월을 먹었다는 연장자들도 돌아서면 상대를 ‘애(갸,개,쟤)’로 칭한다. 애아비가 된지 오랜 사람들이 다른 집 애아비를 애로 칭하는 것이다.

천안문에 걸려있는 모택동초상과 역사박물관 앞에 세워진 공자의 동상이 서로 불편하게 마주보았다는 기사를 보니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온 사회가 돈밖에 모르고 특히 동방예의지국의 후손들인 조선족의 예의와 윤리가 바닥나 있다. 늦었지만 다시 ‘공맹지도’를 논하고 삼강오륜으로 부자유친하고 장유유서하고 붕우유신 하는 것부터 배워 서로 겸손하고 신의를 지키고 덕을 쌓아 화목한 조선족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mora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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