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추석 풍경①]

"주민들, 체제에 억눌려 있던 부분 벗고 순수 명절 즐겨"




[데일리 엔케이ㅣ이상용 기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추석(한가위)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추석은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계절인 만큼 모든 것이 풍성해 우리 민족은 풍작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조상들께 정성껏 음식을 마련해 차례를 지낸다.  



그러나 북한에서 설, 추석 등과 같은 민속 명절 보다 김일성 생일(4월 15일), 김정일 생일(2월 16일) 등 '국가 명절'을 더 중시한다. 북한은 추석을 봉건적 잔재,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배격해왔다. 그러다가 1988년이 돼서야 북한에서 추석은 공식 명절로 지정됐다.



북한 당국의 민족 명절 '경시' 경향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조상의 묘를 반드시 찾아 차례를 지낸다. 또한 이웃들과 민속놀이를 즐기고, 저녁이 되면 보름달을 보며 안녕(安寧)을 비는 등 명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을 맞아 데일리NK는 올해 초 탈북한 김 옥(56·가명) 씨를 만나 북한의 추석 풍경과 주민들이 생각하는 추석의 의미 등을 10문 10답으로 풀어봤다.



-추석 아침에 북한 주민들은 무엇을 하나.



"추석날 아침 차례를 지낸 뒤 성묘를 나서는 한국과는 달리, 북한에서는 일부 주민들을 제외하면 집에서 차례를 지내지 않고 곧바로 조상의 묘를 찾아 차례를 지낸다. 성묘를 하기 전 음식에 손을 대면 '부정 탄다'는 인식 때문이다. 하지만 당국에서 주민들의 의식을 신경 쓰지 않아 각자 알아서 하는 집들이 많이 생겨, 최근에는 밤 12시에 차례를 지내는 집들도 있다.



북한의 대부분 주민들은 자가용 차량이 없기 때문에 성묘를 갈 때 자전거 대부대가 이동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여자들은 무조건 자전거를 타고, 남자들은 지나가는 자동차를 잡아타고 갈 때도 있다. 하지만 차를 타고 가는 경우가 혹시 있다면 이는 간부들이라고 보면 된다. 써비차(벌이차)는 이날만은 영업하지 않는다. 조상의 묘 위치가 제각각이고, 시간대가 맞지 않아 벌이가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성묘를 갈 때 무엇을 준비해 가나.



"예전에 추석을 맞아 특별 배급이 있을 때는 당국에서 제공하는 술을 반드시 가져갔지만, 지금은 배급이 나오는 것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준비한 반찬 몇 가지를 가지고 가는 경우가 많다. 일부 주민들은 고인이 평소에 즐겨먹던 음식을 특별히 만들어 간다고 들었다."



-노동신문을 보면 주민들은 국가명절인 김일성, 김정일 생일에 동상에 헌화하던데, 추석은 어떤가.



"일반적으로 추석에 주민들은 동상 헌화에 동원되지 않는다. 이건 여맹(조선민주주의여성동맹)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북한의 당과 국가기관에서 일하는 간부들은 주작봉(평양 대성산에 위치)에 있는 혁명열사릉과 애국열사릉을 찾아 화환과 꽃다발을 바쳐야 한다.



특히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김영남)과 내각 총리(박봉주) 등은 매년 추석 당일 아침 김정일의 증조부모인 김보현, 이보익의 묘와 조부모인 김형직, 강반석의 묘를 찾아 참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절이라고 하면 친척들과의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며 덕담을 주고받는데, 북한은 어떤가.



"북한은 여행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친척들이 모이기가 쉽지 않다. 다만 당국이 추석에 한해  통행증 없이도 지방에 갈 수 있도록 조치함에 따라, 추석 성묘는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생활에 여유가 있는 주민들이 성묘를 할 때 친척들을 만날 수 있다."



-주민들은 어떤 놀이를 하면서 추석을 보내나.



"북한에는 한국만큼 즐길 문화가 많지 않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끼리 윷놀이나 제기차기 등 전통놀이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또한 최근에는 당구장을 가는 젊은이들도 많아지고 있고, 집에서 '주패(카드)' 놀이를 하는 집들도 있다."



-한국에서는 추석을 맞아 여러 영화를 방영하는데, 북한은 어떤가.

 

"한국에서 연휴 때마다 특선 영화를 방영하듯이, 북한에서도 추석이 되면 중국이나 러시아 영화를 방영한다.



최근에는 알판(CD)이나 DVD가 널리 유통이 되고 한국 드라마도 몰래몰래 시청을 하는 주민들도 있지만, 평소에는 영화관에서든 집에서든 한국 영화를 보기 힘든 것이 북한의 현실이기에, 북한에서 추석은 모처럼 한국 영화를 밤새워 볼 수 있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추석에 송편을 만드는데, 북한 주민들은 어떤 음식을 만드나.



"여기(한국) 사람들이 송편을 사서 먹는 모습을 조금 놀랐다. 북한에서도 송편을 만들어 먹는 경우도 있지만, 먹을 게 부족한 주민들 같은 경우에는 이날만큼은 고기를 풍족하게 해서 먹으려고 한다.



한국처럼 '송편을 예쁘게 만들어야 예쁜 딸을 낳는다'는 속설도 있지만, 최근에는 반드시 송편을 해먹어야 된다는 것에 의미를 두지는 않고 있다."



-당국에서 진행하는 특별 배급이 있나.



"예전만 하더라도 추석에는 평상시보다 더 좋은 특식을 제공했었다. 하지만, 식량난이 가속화되던 90년대 이후로는 특별 배급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



이런 상황이니 주민들이 스스로 차례상을 신경써왔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평안남도 같은 경우에는 차례상에 돼지고기, 떡, 산적, 나물, 물고기, 마른낙지, 햅쌀밥, 생채, 사과 등을 올린다."



-추석 때만 하는 특별한 의식이 있는 것인가.



"조상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차례, 성묘가 북한 추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한국에서는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강강술래, 씨름, 소싸움 같은 놀이를 한다고 하는데, 북한은 단오에 이런 놀이를 즐긴다."



-주민들에게 추석은 어떤 의미가 있나.



"주민들에게 추석은 수령, 충성, 강연회 등 북한 체제에 억눌려 있던 것에서 벗어난 순수한 명절이라는 의미가 있다. 북한에서도 한국에서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설레임과 기쁨 속에서 추석을 맞이하는 것이다. 추석날 밤 주민들은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데, 이처럼 추석은  모처럼 온 가족이 모여 가정의 평안과 행복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본 기사는 데일리NK와 온바오닷컴의 상호 콘텐츠 제휴협약에 의거해 보도된 뉴스입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데일리NK에 있으며 재배포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관련뉴스/포토 (7)
#태그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