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공식별구역 일방적 선포…미국과 새 판 짜자는 속내
“중국 외교가 세계 규칙의 추종자(追從者)에서 세계 규칙의 제정자(制定者)로 변하고 있다” 참 대단한 발언이다. 중국다운 발상이다. 2012년 12월 중국 공산당 정치국 제3차 전체학습회의에서 총서기 시진핑이 한 말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났을 때 시진핑은 미국, 중국 관계를 마천루(摩天樓)에 빗댔다. 두 나라만이 하늘 꼭대기에 올라있다는 말이다. 자기들끼리 바둑판을 새로 짜자는 얘기다.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교시가 엊그제 같은데 30년 사이 중국은 엄청 변했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중국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장쩌민의 ‘유소작위(有所作爲)’, 후진타오의 ‘화평굴기(和平崛起)’도 알고 보면 시진핑의 ‘주동작위(主動作爲)’로 가는 프로세스일 따름. 속마음을 감추고 시간을 벌기 위한 중국 특유의 내숭이자 역(逆)모션이었다.
덩샤오핑은 ‘도광양회’를 내세우며 앞으로 100년 간은 미국과 다투지 말라는 말도 했다. 이 말에도 배경과 내력이 있을 것이다. 죽음을 여섯 달 앞두고 저우언라이(周恩來)는 다음과 같은 제사(題詞)를 썼다. 마지막 제사이니만큼 유언이나 다름없다.
심알동(深挖洞) 굴을 깊이 파고
광적량(廣積糧) 먹을거리를 비축하며
불칭패(不稱覇) 패왕을 자처하지 말라
1975년 여름 병상에서 쓴 글이다. 저우언라이는 암에 시달리며 장칭(江靑) 등 사인방(四人幇)과 절체절명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10년을 끈 문화혁명은 저우언라이에게 지옥이자 고해(苦海)였다. 그러나 그는 이 지옥과 고해 속에서 공산 중국 현대사에 하나의 큰 획을 긋는 외교적 성과를 일궈냈다. 중미(中美) 수교의 물꼬를 튼 것이다.
그는 병상(病床)에서 아내 덩잉차오(鄧潁超)에게 격정을 토하기도 했다.
“어찌해 나라가 이 지경까지 온 건가? 건국 26년인데 6억 인구가 아직도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공산당 노래만 하고 지도자 찬양만 하고 있으니, 이건 분명 공산당 실패의 한 장(章)이다.”
“정치투쟁은 끝도 안 보인다. 이렇게 나간다면 나라는 재난에 빠질 것이다. 이것도 사회주의라 할 수 있나? 인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주의라 할 수 있나? 나의 일생은 아직도 서생(書生)의 티를 벗지 못했구나.”
이러한 저우언라이의 자탄(自嘆)과 비탄을 덩잉차오는 일기에 적었다. 이 일기가 제한적으로나마 공개된 것도 저우언라이가 죽고 한참 뒤의 일이다.
저우언라이의 마지막 제사는 그런 정황 속에서 우러나왔다. 나라를 위한 그의 마지막 당부였다. 간절함에 있어서 절규나 다름없는 이 말은 그의 절친이자 동지요 후배였던 덩샤오핑에 의해 잘 지켜져 왔다. 낮은 자세의 포복, 백성의 먹거리 마련을 위한 과감한 경제개방 정책 등은 오늘의 중국을 일군 핵심 가치다.
2006년 가을 후진타오가 두보(杜甫)의 시 한 구절을 읊었다. 그것도 미국 워싱턴 한복판에서.
會當凌絶頂 언젠가 기어코 정상에 올라서면
一覽衆山小 산 아래 작은 산들 내려다보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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