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해녀
말애씨는 그저 바다가 좋다. 바닷물 속에 들어갈 때의 번쩍 정신이 드는 기분도 좋고, 속에 있던 열이 모두 가라앉는 느낌도 좋다. 이렇게 물질을 해가며 조금씩 필요한 것들을 장만하는 삶이 좋다.
“내 바로 위에 언니가 대변에서 해녀 일 하는데 일등 사수가 또 하나 있어요. 세 살 위인데. 그 세 살 위짜리가, 용띠들이가, 지금 완전히 해녀로서는 늦게까지, 마지막까지 장식할 사람들이라. 지금 60대, 67살, 68살 고 두 나이 세대가 제일 많거든요. 끗발을 잡고 있고. 일단은 그 시대가 아마 앞으로 10년은 보겠죠. 10년을 보면은 아마 해녀는 사라지겠지. 할려는 사람은.”
해녀라고는 하지만 연중으로 작업하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연중으로 작업을 한다는 것은 1년 내도록 해녀 일을 주업으로 하는 ‘오리지널 해녀’라는 뜻이다. 67, 68세 되는 언니들 중에서 7~8명 정도가 해당한다.
“상꾼이라는 표현을 쓰거든요. 최고로 위, 상중하로, 상꾼.”
몇몇의 언니들이 그나마 연중으로 물질을 하며 해녀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이외의 사람들은 가을부터 겨울, 봄까지 해녀들이 가장 바쁜 시기에만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11월 20일 전후가 되면 말똥성게 채취가 시작된다. 그때부터는 잠시 해녀 일에 손을 놓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다 물질에 뛰어든다. 해녀들이 목돈을 벌 수 있는 가장 큰 기회가 바로 이 시기이다. 예전보다 찾는 사람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말똥성게는 여전히 전량 수출을 하기 때문에 수협에서 모두 관리한다. 수협을 통해 중간 상인이 성게를 구입하러 오는 식이다. 상인들은 상품을 재포장하거나 2차 가공을 해서 일본 상회를 상대로 판매를 한다. 해녀들이 잡은 양에 따라 돈을 수협에서 내어 주기 때문에, 이즈음이 해녀들이 가장 큰 돈을 만져볼 수 있는 시기이다.
예전에는 우뭇가사리도 많이 했지만 요즘은 바다가 오염이 되어서인지 대변항 주변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연화리나 동암, 공수 등은 대변보다는 바닷물의 상태가 나은지 그나마 조금 채취하기도 한다. 해삼은 말할 것도 없고 소라, 군소 등 모두가 이상할 만큼 줄어들고 있다.
“소라가 어디 다 가버리고 자꾸 숫자가 줄어요. 여름에는 추석 전에는 다 소라 같은 거 잡아가지고, 해녀들이 많이 잡았거든. 말똥성게 말고 또 성게라는 게 있거든요. 침 큰 거. 그걸 또 잡아가지고 일본 수출하고 또 그랬는데, 군소도 그렇게 많이 나더만은 자연산 군소가 자꾸 줄어든다니까요. 인제 중국에서 넘어온다대, 군소도. 중국산 군소는 질겨서 못 묵는다.”
이제 조금씩 잡아 오는 것은 제사 때나 집안에 쓰는 정도는 되지만 팔 수 있을 만큼의 양이 되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늦여름, 초가을에 잡아 저장해 뒀다가 추석 때가 되면 수십㎏씩 내다 팔아 목돈을 만들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저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줄군소라 해가지고 참군소가 한 다섯 마리 쭉 줄로 해가 누워 있거든요. 풀밭에. 근데 지금은 줄군소도 어쩌다가 한 마리, 두 마리 정도는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것도 다 사라져버리고. 군소가 없어. 개군소라고 잔잔한 거 있거든요. 그런 게 좀 있는데 그나마도 팔게 없어 팔게.”
해녀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말똥성게도 채취량이 많이 줄었다. 한때는 수협에 넘기는 양이 몇 백㎏씩 됐는데, 이제는 100㎏ 남짓. 그 정도로 채취량이 줄어들어서 연중 가장 대목이라는 말똥성게 채취기지만 이제 해녀들이 만지는 돈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말똥성게를 할 때면 물질을 직접 못하는 할머니들도 모두 모였다. ‘개바리’를 하기 위해서였다. 물속에서 물질을 하지 않고 물 밖에서 바닷가 돌을 뒤집어 생물을 잡는 것을 개바리라고 한다. 그렇게 할머니들이 소일거리를 해도 모두 돈을 벌수 있었다. 그렇게 벌어서 함께 먹고 살았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들도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나잠증을 소지한 해녀들을 모으면 모두 24~25명 정도가 된다. 이들이 모여 말똥성게를 채취한다. 입찰은 환율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들에게는 1년 벌이이기 때문에 ㎏당 얼마를 받는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입찰가도 지역마다 달라서 울산 쪽이 많이 나간다는 소문이 있는데, 대변 지역은 항상 적은 것 같아 아쉽다. 그 가격에 따라서 그녀들의 겨울나기가 결정되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봄이 되면 미역을 한다. 자연산 돌미역을 채취하는 작업이다. 미역이 나는 자리를 바탄이라고 하는데, 해녀들마다 뽑기를 해서 각자의 바탄을 배당받는다. 여기에도 좋은 자리가 있어서, 미역이 많이 달려 있는 곳에 배당이 되면 좋다. 그 돌미역을 캐어서 봄을 산다. 대변항은 봄이면 멸치잡이가 성황이다. 예전에는 멸치가 이렇게까지 인기를 끌지는 않았지만 요즘은 멸치 축제까지 할 만큼 찾는 사람들이 많다. 대변항에는 봄이면 생멸치의 맛을 보러 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멸치 탕이나 구이를 팔아서 돈을 번다. 장사를 못하는 사람들은 멸치 회를 팔 수 있도록 멸치를 까는 역할을 한다. 한 동이에 얼마씩 멸치를 까서 봄철의 생계를 잇는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봄에 미역을 한다고 물질을 조금 미루지. 겨울까지는 하고 음력설 지나고 나면 미역 일을 해요. 다시마 일도 조금 하고. 여름 되면은 인자 할 게 없으니까 바다에 나가지. 여름 되면 해삼이 조금 나거든.”
바다 속도 육지의 사계절과 똑같다. 여름이면 수초가 무성하게 우거져 있고, 가을이 되면 단풍이 지듯 수초가 사라지며 물 아래 바위가 훤히 보인다. 겨울에 보이지 않던 수초가 봄이 되면 새로 돋아나기 시작한다. 올 여름은 해삼이 많이 나왔다. 작년에는 태풍 탓인지 조류 탓인지는 몰라도 해삼이 참 귀했다. 바다 속을 풀밭이라고 부르는 그들의 말처럼 마치 농사를 짓듯 해산물들이 나고 진다.
해녀들 생활에서는 추석을 지낸 시점이 가장 비수기이다. 돌미역을 하는 해녀들은 이즈음에 돌 닦기를 한다. 미역이 잘 붙을 수 있도록 돌을 닦아주는 것인데 말똥성게를 하기 전에 빨리 끝을 내야 한다. 그리고 다시 말똥성게를 한다. 돌 닦기를 하는 시기가 되면 해산물이 모두 들어가 버리고 해녀들이 잡을 것이 없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나마 편히 쉴 수 있는 그녀들의 늦은 휴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