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치 입력이 특징인 스마트폰이 보급된 후, 한글의 천재성을 재입증한 모아키. 자판에서 모음 키를 없앴다. 자음을 터치하고 오른쪽으로 그으면 '아', 왼쪽으로 그으면 '어', 윗쪽으로 그으면 '오', 아랫쪽으로 그으면 '우'가 된다. 





다시 생각해 보는 우리말의 외래어




쇼핑, 패션, 브랜드, 글로벌, 미디어, 컵, 이슈, 디자인, 네트워크 등 우리들 일상에 녹아내린 영어단어가 어느 정도 분량일까 싶어 인터넷을 통해 자료정리를 해 봤더니 삽시간에 간단히 1,000개가 훌쩍 넘는 분량이 되었다. 다소 예상은 했지만, 엇! 뜨거라 싶어 다시 주의깊게 포털 사이트 구석구석을 살펴보니 도처에 출몰하는 수많은 영어단어들이 눈을 어지럽게 만든다. 가끔 사용하는 것까지 차근차근 모아 보면 대체 몇 천 개나 되려나. 개인차야 있겠지만 줄잡아 평균 5,000개는 족히 되지 않을까?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한국어는 온통 잡탕이라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며 조선어의 변질에 대해 불평을 했다던가. 실제 그랬다면 그 중 가장 큰 원인은 영어 외래어가 제공했음이 틀림없다. (언어에 구태여 주체성을 적용한다면 우리가 아직 조선시대의 문법과 말투를 준수하고 서구 각국이 아직도 라틴어를 고수해야 한단 말인가?)



일본어가 일제시절을 통해 30여 년간 우리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면 영어는 해방 이후 60여년간 한국어에 스며들었고 또 갈수록 가속도가 붙는 느낌이니, 만약 외래어를 오염의 관점에서 문제 삼는다면 이제는 분명 일본어보다는 오히려 영어쪽이 되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영어는 단지 피상적 단어 수입에만 그치지 않고 "너무 ~~해서 ~~하지 않을 수 없다"는 형태의 문법화된 관용적 표현방식에서부터 “우리의 의견이 적절한 형태로 그들의 합리적인 결정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기를 희망합니다”는 식의 마치 정치적 수사와도 같이 지나치게 완곡한, 예전에는 없었던 생소하고 기이한 표현방식에 이르기까지 우리 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우리말에 있어서 외래어 부분이라면 일본어나 영어 이전에 좀 더 근본적으로 따져 봐야 할 대목이 있으리라. 사실 창제 과정에서부터 일본어나 영어와는 비교할 수 없이 우리말에 많은 영향을 미친 언어는 두 말 할 나위 없이 중국어이다.



이 두 언어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간단히 살펴보자. 중국어의 영향은 단지 단어 수입이나 관용어구 정도에 그치지 않고 아예 문법화된 수준에 이르러 있다. 중국어에서 명사로도 동사로도 공히 사용되는 단어들의 경우 한국어에서는 이를 일단 명사화한 다음 '○○하다', '○○되다', '○○시키다'의 어미를 붙여 각각 동사, 피동사, 사역형으로 활용시키고 있다.



예컨대 '說明'을 일단 '설명'이라는 명사로 간주한 다음 '설명하다', '설명되다', '설명시키다'로 쓰고 있는 것이다. 형용사의 경우도 비슷해서 '悠久'의 경우 '유구'를 명사화한 다음 '유구하다'의 형태로 형용사를 만들어 쓰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활용법은 명사의 경우에는 ‘○○이다’의 형태로 처리되고 있다.



즉 외국어 단어 고유의 품사가 무엇이든 ‘~하다’나 ‘~이다’류의 어미를 접합시킨 후 어미변화를 꾀하면 즉각 전용되는 한글 특유의 유연한 구조와 장치 때문에 한자어를 비롯한 수많은 외래어 어휘들이 쉽게 수용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창제와 더불어 도입된 수많은 이들 한자어들은 기존의 고유어와 더불어 지금 우리말의 어휘를 풍부하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같은 의미인 단어를 상황이나 분위기에 따라 고유어나 한자어 중 하나를 임의로 적절하게 선택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바람직하다’와 ‘이상적이다’, ‘어긋나다’와 ‘위배되다’, ‘차지하다’와 ‘점유하다’ 등등 어감상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기본적으로 동일한 의미를 가지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단어는 셀 수조차 없이 많다.



물론 이러한 활용 기제는 영어와의 어울림에서도 마찬가지로 작동된다. 예컨대 'free'라는 영어 형용사는 ‘(나 오늘) 프리하다’로, ‘action'은 ’(멋진) 액션이다‘로 매우 쉽게 사용이 가능하다. 일본어의 ’아따라시이‘를 들여와 ’아따라시이하다‘로, 독일어의 ’노이‘를 들여와 ’노이하다‘로, 러시아어의 ’노브이‘를 들여와 ’노브이하다‘라고 간단히 전용시킬 수 있는 기제를 우리말은 갖고 있는 것이다.



훗날 혹 세상이 바뀌어 세계 공용어로 지금의 영어가 가진 지위를 그 어떤 다른 언어가 차지하더라도 이 기제만 작동되면 즉각 수용이 가능하다. 문법구조 자체가 타 언어에 대해 대단히 친화적이라 할 수 있으며, 달리 표현하면 또한 매우 개방적이자 수용폭이 넓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외래어의 오염에 대해 무척 근심하기도 한다. 사회 각 분야에 남아 있는 일본어 단어에 대해 일제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다며 개탄하기도 하고, 근자에 들어 갈수록 늘어나는 영어 외래어에 대해서도 우려의 눈길을 보낸다. 옳은 말이다. 기본적으로 우리말 가꾸기의 자세가 미흡한 것은 사실이고, 이 부분은 좀 더 사회적인 각성이 있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외래어라고 해서 도입 자체를 오염의 시각으로만 접근한다면 이 수많은 한자어의 오염을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게다가 언어란 사회구성원들간의 의사소통의 도구일 뿐 어떤 절대적인 테제가 아니란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혹자는 우리말의 한자어가 중국어의 발음과 달라서 여타 외래어와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한자의 한국어식 독음은 타이완에서 사용하는 주음부호나 중국 남방어에서 보듯 표의문자의 특성에 따라 제각기 달리 발음하는 것일 뿐 외래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우리말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중국어, 일본어, 영어의 외래어는 조상 대대로 우리네가 살아온 역사적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그 관련성은 우리와의 원근친소에 따라 해당 국가 언어의 도입폭이 자연스럽게 조절되어 온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 근대에 들어 기껏 수 십 년간 접촉한 나라의 언어보다야 수백 년, 수천 년간 부대낀 나라의 언어로부터 더욱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은 자명하다.



근대에 들어 와서도 마찬가지다. ‘카푸치노’, ‘비바체’, ‘삐아노’, ‘알레그로’, ‘안단테’ 등의 이탈리아어나 ‘까페’, ‘마담’, ‘그랑 프리’, ‘뉘앙스’, ‘노블레스 오블리제’, ‘똘레랑스’, ‘테제’와 ‘오브제’ 등의 프랑스어가 일정한 분량으로, 또 ‘아지트’, ‘뻬치카’ 등의 러시아어나 ‘아르바이트’, ‘캠페인’과 같은 독일어, ‘카스텔라’와 같은 포르투갈어 등이 일부 우리 생활에 녹아 내려 있지만 해당 언어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의 합의가 거기까지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영어에 대해서도 무분별한 도입과 개인 저마다의 무질서하고도 임의적인 사용이 문제일 뿐 그 자체가 문제시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일부 우려의 시각과는 별개로 결국은 사회 구성원 절대 다수의 합의가 그 사용량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다만 외래어로서 절대적인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한자어의 경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눈에 띈다. 고유어와 한자어의 차이만 있을 뿐 원래는 같은 뜻이었던 것이 모화(慕華)사상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한자어는 고급 단어로, 고유어는 격이 떨어지는 단어로 전락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습관(習慣)'이란 단어에서는 서면체의 느낌 또는 좋은 의미가 와 닿지만, '버릇'이란 단어에서는 구어체 감각 내지는 비속한 느낌을 받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실제 공식적인 서면체 문장에서 한자로 변환가능한 단어를 모두 한자로 바꿔버리면 지면이 컴컴할 정도로 분위기가 달라진다. 매끈하게 고유 단어로 구성된 문장이라 해서 격이 달라질 이유는 전연 없는데도 그리 된 것은 아마도 가꾸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했던 탓일 것이다.



(사족)

한글 자모의 빼어난 독창성과 과학적인 특성에 대해 잠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 모음은 천지인의 형상을 본 떠 만들었다는 고전적인 얘기는 생략하자.



휴대전화를 사용해 한글 문자 메시지를 보낼 경우 21개의 모음 모두를 'ㅡ', '・', 'ㅣ'의 단 3개의 키로 표현 가능하다고 중국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시범을 보여 주면, 표의문자의 특성상 병음을 타자한 후 화면에 드러난 여러 글자 중 하나를 선택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는 그들은 한글자모 전송방식의 간단함과 속도에 대해 거의 까무러치는 수준으로 감탄한다.



한글 자모는 그야말로 애초부터 빠른 속도가 요구되는 디지털 시대에 꼭 알맞게 디자인되었다고 할까. 한 마디로 개방적인 특성 외에 매우 미래지향적, 선진형이라는 특성도 아울러 갖추고 있다. 이쯤 되면 우리 모두는 다시 한 번 세종대왕의 음덕에 감사의 예를 표해야 하지 않을까.(pjt00417@naver.com)

관련뉴스/포토 (12)
#태그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