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녹차



요즘 밤공기는 참으로 좋습니다. 온도도 적당하여 덥지도 춥지도 않습니다. 저녁을 먹고 밖에 나가서 걷고 생각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씨가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저도 요즘에 밤만 되면 집을 나갑니다. 아내가 "저녁마다 나가냐?"고 잔소리를 해도 나갑니다.



나가는 겁니다. 최적의 날씨, 최적의 밤공기를 지금 감상하고 만끽하지 않으면 금새 사라질 것 같은 걱정과 설렘으로 나갑니다. 초록의 4월의 밤은 더할 나위 없는 풍성함과 부족함의 딱 중간에서, 어쩌면 그렇게 적당한 모습으로 서 있는지 모릅니다. 좋다는 뜻입니다.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자연의 조화가 제 마음에 거의 완벽에 가까운 만족을 주기도 합니다. 4월이 감추워 놓은 이 엄청난 비밀의 축복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는 조급함이 저녁만 먹으면 저를 밖으로 끄집어 냅니다.



어제는 아는 중국 사람이 자기 카페에 놀러 오라고 해서 갔습니다. 녹차를 타 주더군요. "아!!.. 녹차의 맛이 이렇게 훌륭하고 감미로운 거구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국의 찻잎은 청명절 이전에 딴 것이 제일 좋다고 합니다. 어제 제가 마신 차가 그런 차라고 하더군요. 알다시피 중국인들은 한국 친구를 처음 만나면 대부분 차를 선물합니다. 그래서 중국에 많이 다녀 간 한국 사람 집에는 아직 쳐다도 안 본 여러 종류의 녹차가 몇 박스나 있을 겁니다.



저도 과거 한국에 살 때는 그랬습니다. 차 맛도 모를 뿐더러 이미 커피에 중독된 터라 굳이 그 많은 차를 마실 기회도 없고 그럴만한 여유의 시간도 없었을 겁니다. 버리기에는 조금 아깝기도 해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기도 합니다. 가능한 술과 담배를 안 피우는 분들께 드립니다. 그 대상이 주로 교회의 목사님, 장로님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더군요. 아무튼 저는 차 맛을 아직은 잘 모릅니다.



그런데 밤 공기가 완벽에 가까운 4월 중순 밤에 중국 친구가 조용한 카페에서 직접 만들어 준 녹차는 이제야 비로소 "왜 중국인들이 이 맛을 즐기는지" 깨닫게 해 주더군요. 청명절 이전에 딴 차는 물의 온도도 60-70도를 유지해야 제 맛이 난다는 설명도 곁들여 해 주더군요. 수도물로 끓인 물에 녹차 잎을 담가서 준 지하 다방과 역전 다방의 녹차와는 근본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약속 다방의 미쓰 김이 타 주던 녹차나 새로 오픈한 갈무리 다방의 인상 좋은 정 마담이 타주던 녹차도 맛은 별반 차이가 없었을 겁니다.



요즘은 한국도 웰빙 바람이 불어 커피 대신 차를 마시는 분들도 꽤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커피 전문점은 증가 추세라 합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아무리 건강에 좋다고 해도 아직은 밋밋한(?) 녹차를 즐기기에는 세월이 한참 더 흘러야 할 겁니다.



그랬습니다.... 세월이 흘러 갑니다. 이방의 땅 중국에서 어느덧 많은 세월이 흘러 갑니다. 40대 후반에 오신 분들은 50 고개를 넘고 있고, 30대에 온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40대를 지나 갑니다. 이방의 땅에서건, 내 나라 땅에서건 세월은 이렇게 빠르게 갑니다.



바람처럼 스쳐 가기도 하고, 봄날의 눈처럼 순식간에 녹아 없어지기도 합니다. 어디로 갔는지도 모릅니다. 언제 갔는지도 모릅니다. 누구와 함께 그 많은 날들이 지나 갔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문득 문득 스치는 과거의 추억과 단상이 있을 뿐입니다.



이런 무심한 세월이 오늘도 흘러 갑니다. 그래서인지 어제밤에 마셔 본 녹차는 더 맛이 있고 깊숙하게 가슴으로 스며들었는지 모릅니다. 녹차의 맛을 이제 비로소 느껴 본다는 사실에 저도 "많은 세월이 제 인생에서 갔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6년을 살면서 이제야 겨우 차 맛을 알다니..." 이런 애꿎은(?)은 탄식도 그래서 동시에 해 봅니다. "중국을 온 목적이 결국은, 어떻게든지 돈이나 벌어 보자고 온 것은 아닌가, 중국인, 중국 문화... 이런 것은 처음부터 안중에도 없었던 건 아닌가... 눈만 뜨면 "어찌해야 중국 땅에서 돈을 버나.." 이런 생각에 밤과 낮이 무감각하게 흘러 간 것은 아닌지..."를 집으로 돌아오는 야심한 밤에 하늘을 우러러 보며 물어 보았습니다.



최근 1년 동안 아내가 한식당을 하면서 옆에서 중국인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 봅니다. 알지 못했던, 알려고 하지 않았던 사실이 아주 많더군요. 녹차의 맛을 이제야 조금 알듯이 중국인에 대하여도 이제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얼마 전에 어느 중국 친구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당신은 아직도 중국인을 몰라!!" 잠시 당황한 저는 "여지껏은 몰랐는데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가 제 눈을 똑바로 쳐다 보며 다시 한번 힘있게 말을 하더군요. "아냐!! 당신은 아직도 중국인에 대하여 전혀 몰라!!" ......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 합니다. 오나 가나 중국인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한참을 생각하고 고민하며 돌아 보았습니다.



정말로 나는 중국인을 모르는가?... 어쩌면 그 말이 맞는다는 결론이 나는 데는 하루가 채 안 걸리더군요. 중국인을 상대로 돈만 벌 연구를 했지, 정작 중국인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연구는 전혀 없었구나, 라는 한탄이 나오더란 말입니다. 중국 생활 6년.. 맹탕 살아 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중국인.. 이 알 수 없는 인간들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 와서 저를 고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4월의 밤이 5월의 화려함을 잉태하며 가는 중입니다. 더없이 좋은 밤에 저는 요즘 중국인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사업을 하던, 다른 일을 하던, 일단은 이번 기회에 미흡하나마 중국인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리를 한 번은 해 보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쉬운 숙제는 아닐 겁니다. 그러나 중국 땅에서 살면서 우리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항목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dw67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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