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중앙일보] 우리가 중국을 이해하는 가장 큰 창구는 어딜까. 중국 언론이다. 많은 한국인이 중국 미디어가 전하는 소식을 통해 중국에 관한 정보를 얻는다. 한데 중국 언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오해의 증폭이다. 아닌 말로 아예 접하지 않은 만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가 한·중 관계에 큰 파동을 낳고 있는 현 시점에선 중국 매체를 올바르게 분석하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중국 외교부는 얼마 전 북한의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에 대한 논평을 하면서 중국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였다(不懈努力)’고 했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충분한 압력을 넣지 않고 있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개적인 중국 비판을 상기하면 체감 주파수가 다소 맞지 않는 발언이다.

한술 더 떠 겅솽(耿爽)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북핵 해결을 위한 중국의 노력이 국제사회로부터 광범위한 ‘인정과 찬양(認可和讚譽)’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도 대변인 특유의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니 듣는 사람이 오히려 ‘유체이탈감’이 든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한국 언론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중국의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어떤가? 전문가들은 이 신문이 중국 정부의 생각을 ‘대변’하는지 ‘아닌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곤 한다.

성경에 주석이 달린 것처럼 중국 언론은 주석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이 한국의 사드 배치 계획에 대한 보복으로 다양한 ‘금한령(禁韓令)’ 조치를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외교부가 한사코 “한류금지령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다(限韓令 沒聽說)”고 딱 잘라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중국에는 언론의 자유가 없다는 것이 보편적 인식인데 중국 외교부가 매번 ‘중국은 착실하게 언론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 이해하기 힘들다. 왜 이런 일이 생기나. 중국 ‘언론관’이 한국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팩트(fact)’보다 사회 영향을 고려
2008년 중국 쓰촨(四川)성에서 대지진이 발생해 8만 명 넘게 사망했을 때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사실 하나가 있다. 구조작업 초기에 인민해방군 낙하산부대 요원들이 투입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군인 희생자들이 발생한 것이다.

중국 기자들이 이 사실에 대한 보도 여부를 고민하고 있을 때 공산당 지도부는 소위 ‘대국의식(大局意識)’을 근거로 ‘보도 금지’ 조치를 내렸다. 중국에서 ‘대국의식’이란 저널리즘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배우는 ‘기자 윤리’에 해당한다.

‘전체 형국을 고려하는 의식’을 갖고 보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많은 지진 피해 희생자가 발생해 국가적으로 침통한 상황인데 구조작업을 위해 투입한 인원들마저 죽었다는 게 알려지면 국민 사기가 더욱 저하된다는 논리에서다.

국가적 재난 상황을 맞아 일종의 ‘선의의 거짓말(white lie)’을 장려한 것이다. ‘대국의식’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준거는 ‘국가 이익’이다. 즉 ‘눈앞의 사실’보다는 통합적이고 장기적인 국익의 안목에서, 그리고 사회안정을 감안해 보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하에선 언론이 체제 옹호를 위한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중국식 저널리즘: ‘사실’보다 ‘진실’
이 같은 논리를 따르는 ‘중국식 저널리즘’은 객관적 ‘사실(fact)’ 추구를 이상적 목표로 삼는 ‘서방식 저널리즘 이데올로기’와는 크게 다르다. ‘사실’ 자체가 꼭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게 아니다.

중국 저널리즘은 ‘사실’보다는 ‘진실(truth)’을 전달하는 걸 언론의 사명으로 삼는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중국 공산당 체제에서 ‘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진실이 아니라 소위 ‘사회주의 진실’이라는 점이다.

중요한 건 이 진실을 결정하는 주체가 바로 ‘당(黨)’이라는 사실이다. “신문 매체의 가장 중요한 직능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으로, 진실·정확·전면·객관성을 통해서다”. 이는 중국 공산당 언론교육 문건에 나오는 내용으로 ‘진실’이 맨 처음, ‘객관’이 맨 뒤에 언급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무오류’의 공산당이 ‘진실’을 결정
그런데 중국 공산당 체제 내부의 논리로 보면, 당은 오류를 범하지 않으며 그런 무오류의 공산당이 진실을 결정하고, 기자의 역할은 ‘당이 결정한 진실’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중국 공산당 체제의 언론관이다.

따라서 이 같은 중국 공산당 체제의 언론관을 깨닫지 못하고 외국인 시각에서 중국 매체의 보도를 이해하려고 하면 오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컨대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는 서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종종 ‘민주’를 강조하곤 했다.

서방에선 이에 ‘중국도 민주(democracy)를 원하고 있다’고 해석한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원자바오가 말한 민주는 서방식 민주가 아니라 ‘중국 공산당 영도하의 민주’란 뜻이었다. 즉 ‘민주’가 무엇인가 또한 중국 공산당이 결정한다는 이야기다.

사회주의도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호칭을 쓰는 중국에서 ‘민주’가 무엇이냐에 대한 해석권과 집행권 또한 공산당이 가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보편적으로 쓰는 단어조차도 중국 특색의 체제란 논리에서는 전혀 다른 뜻을 갖는다. 중국은 공산당의 정권 유지를 위해 다양한 체제 논리를 개발했으며, 언론도 이런 체제 유지 수단의 하나란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보다 언론을 더 ‘중시’
흔히 ‘중국엔 언론의 자유가 없다’고 생각해 중국 정부가 언론을 소홀히 한다고 여기면 큰 오산이다. 중국 공산당은 지상 최대 과제인 공산당 집권 유지를 위해 언론을 활용한 체제 논리를 개발했으며, 언론을 자본주의 사회보다 더 중요시한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총편집(總編輯: 한국의 편집인에 해당)은 장관급의 높은 인사가 맡는다. 언론 관리에 실패하면 정권이 치명타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당국은 소련 붕괴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언론 통제 실패에서 비롯된 민심 이반으로 보고 극도로 경계한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종종 중국의 언론자유 침해 상황을 비판할 때마다 중국 정부도 이에 지지 않고 자국 외교부를 통해 “중국은 언론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고 매번 반박하는 이유다. 물론 이 말이 중국에도 서방과 같은 언론 자유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중국 정부의 언론 대변인은 ‘사실’을 말하지 않으며 공식적으로 정해진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진실은 오류가 없는 공산당이 결정하는 ‘사회주의 진실’이며, 이런 것이 바로 중국 내부의 체제 논리다. 중국 대변인이 체제 유지를 위한 ‘정치적 발언(political statement)’을 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를 서방 국가가 다시 반박하면, 중국은 또 이에 질세라 “서방 국가가 중국에 편견을 갖고 있다”고 응수한다.

중국 공산당은 이 같은 ‘언론관’을 ‘마르크스주의 신문관(馬克思主義新聞觀)’이라 해서 각 대학의 신문방송학과에서 가르치고 있다. 특히 공산당 산하 언론사, 즉 당보(黨報)에 근무하는 기자들은 공산당의 강령과 원칙을 준수하고 공산당 정신에 따라 기사 편집을 해야 할 것임이 강조된다. 이는 현재 중국 언론학을 상징하는 키워드다.
사드 여론전
사드 문제와 관련해 중국은 한국을 상대로 대대적인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관영 매체를 동원해 ‘전쟁 상황을 가정한 사드 괴멸론’ 등 일종의 심리전도 전개 중이다. 때론 막말까지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대국으로서의 중국의 ‘국격(國格)’까지 의심하게 된다.

중국 언론은 왜 이리 거친가. 이는 중국이 북한과 마찬가지로 ‘여론전’에 임하면서 이를 실제 ‘전투’처럼 치열하게 생각하는 사회주의 전통의 잔재를 여전히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언론을 ‘전쟁터(陣地)’라고 했다. 중국은 그 정도의 각오로 ‘진실’을 사수할 결심이 돼 있다. 이 같은 중국의 도전에 우리는 어떻게 응전해야 하나.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면서도 상당히 이질적인 언론 생태계를 갖고 있는 중국 언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그 첫걸음이 돼야 할 것이다.
◆이성현
미국 그리넬대 학사, 하버드대 석사, 그리고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학위(정치 커뮤니케이션)를 받았다. 미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팬텍펠로를 거쳐 현재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중국과 미·중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중앙SUNDAY에 ‘써니 리’라는 필명으로 중국 관련 칼럼을 집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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