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위량 녹지그룹 회장이 지난해 6월 중국 베이징 조어대 국빈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photo 녹지그룹

▲ 장위량 녹지그룹 회장이 지난해 6월 중국 베이징 조어대 국빈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photo 녹지그룹


[주간조선] 제주도와 중국의 부동산 재벌인 녹지(綠地)그룹 사이가 껄끄럽다. 제주도가 지난 5월 28일 건축설계 변경허가를 내준 제주드림타워의 건축허가를 전면 재검토할 움직임을 보이면서다. 제주드림타워는 제주시 노형동 노형오거리에 들어서는 지하 5층, 지상 56층의 제주 최고층 빌딩(높이 218m)이다.

롯데관광개발의 자회사인 동화투자개발(대표 박시환)이 녹지그룹과 함께 오는 2017년까지 약 1조원을 들여 연면적 30만6517㎡의 특급호텔과 콘도미니엄 2동을 지어올리기로 한 상태다. 제주드림타워에는 9179㎡ 규모의 외국인 전용 카지노도 입주할 예정이었다.

지난 6월 4일 지방선거에 출마한 제주지사 후보들은 “교통정체, 경관파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역 시민단체의 주장을 반영해 제주드림타워의 건축허가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임 제주지사로 당선된 새누리당의 원희룡 후보 측도 선거 직전 “제주드림타워의 건축허가 관련 행정 절차를 일일이 되짚어 보겠다”고 말한 바 있다.

녹지그룹 측은 교통 및 재난영향평가까지 통과해 건축허가까지 나온 마당에 재검토가 논의되자 당혹해 하고 있다. 녹지그룹은 지난해 매출 3300억위안(약 54조원)을 올린 중국 굴지의 부동산 재벌이다. 더욱이 녹지그룹이 중국 상하이시가 51%의 지분을 쥔 사실상 지방공기업이란 점에서 한·중(韓中) 간 외교마찰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녹지한국투자개발(녹지코리아)의 강민휘 부사장은 주간조선에 “중국 상하이 본사에서도 현재 상황을 잘 알고 있다”며 “애초 건축허가가 다 나와 있던 상태로 지난 30년간 투자자를 못 찾고 있었는데, 막상 녹지그룹에서 투자하려고 하자 시민단체와 지역 언론에서 중국 자본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강 부사장은 “상하이 본사가 크게 우려하고 있다”며 당초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녹지그룹이 제주드림타워 사업에서 발을 뺄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56층 높이 218m에 불과한 빌딩이 이슈가 되는데도 녹지그룹은 당황한 눈치다. 높이 200m 이상이면 초고층으로 분류되는데, 요즘 추세로는 적어도 높이 300m 이상은 돼야 한다. 녹지그룹은 지난 2010년 장쑤성 난징에 높이 450m의 즈펑빌딩을 올렸고, 랴오닝성 다롄(大連)에서 높이 518m, 장쑤성 쑤저우(蘇州)에서도 높이 358m 초고층 빌딩 건설을 추진해 왔다. 이들 빌딩 모두 국내 최고층인 인천 송도의 동북아트레이드타워(높이 305m)를 훨씬 능가하는 초고층 빌딩들이다.

녹지그룹을 이끄는 사람은 장위량(張玉良) 회장이다. 녹지그룹의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장위량 회장은 매 분기마다 제주도를 찾을 정도로 한국 사업에 상당한 애착을 보여왔다. 중국 자본에 대한 제주도 세간의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중국 기업임에도 세월호 피해 유가족들에게 성금 2억원을 내놓는 등 친한(親韓) 행보를 해왔다.

녹지그룹은 그간 홈페이지를 통해 ‘제주몽상(夢想·드림)타워’란 이름과 함께 “높이 218m의 제주시 랜드마크가 될 ‘제주 최고의 쌍둥이 빌딩’”이라고 소개해 왔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 제주드림타워 건축허가가 재론되며 녹지그룹이 투자키로 한 ‘1조원’이 허공으로 날아갈 위기에 몰린 셈이다.

상하이 출신인 장위량 회장은 상하이시 공무원으로 인사와 주택건설 업무를 담당하다 1992년 녹지그룹을 창업했다. 이후 대형 빌딩, 쇼핑몰, 아파트 등을 개발하며 사세를 급속히 키워 왔다. 포브스 선정 세계 500대 기업에 드는 기업으로, 완커(萬科)·바오리(保利)·헝다(恒大) 등과 중국 부동산 업계를 좌지우지하는 주요 디벨로퍼로 꼽힌다.

중국에서 부동산 개발업자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방정부로부터 개발에 필요한 땅을 우선적으로 불하받아야 한다. 디벨로퍼와 관(官) 사이의 끈끈한 ‘관시(關係)’가 뒷받침돼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녹지그룹은 1989년 상하이시 서기 출신인 장쩌민(江澤民) 총서기의 집권으로 ‘상하이방(上海幇)’ 천하가 열리며 승승장구해 왔다. 상하이방이 요직을 차지한 시진핑 정권에서도 마찬가지다.

든든한 관시와 중국 국내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녹지그룹은 최근 해외사업으로 눈을 돌리던 중이었다. 지난 2월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연면적 15만㎡의 초고층 ‘로스앤젤레스 녹지센터’를 착수하며 북미 지역에도 진출했다. 이 중 장 회장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곳이 상하이와 제일 가까운 제주도였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장 회장은 “제주도의 지가는 1무(畝·666㎡)당 50만위안(약 8190만원)으로 1무당 최소 1000만위안이 넘는 하이난다오(海南島)의 20분의 1에 불과하다”며 제주도 투자에 높은 기대를 걸었다고 한다. 또 장 회장은 “중국 여행객들은 국외에서 식음료와 문화 탓에 중국인이 운영하는 호텔을 더 좋아할 것”이라며 “중국의 호텔 경영자들도 중국인의 수요를 더 잘 파악할 수 있다”면서 제주 호텔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고 한다.

장위량 회장의 ‘제주 사랑’에 따라 녹지그룹은 2012년 10월부터 제주 서귀포시 동흥동 일원에 제주헬스케어타운도 조성해 왔다. 9억달러(약 9170억원)를 들여 외국인 의료관광 등에 쓰일 의료휴양시설과 숙박시설을 조성하는 사업이었다.

이후 장위량 회장은 지난해 6월 중국 베이징 조어대(釣魚臺) 국빈관에서 열린 한·중비즈니스포럼에서도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 제주도 사업에 대해 언급했었다. 당시 녹지그룹은 “장위량 회장이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 녹지그룹이 제주도에 9억달러를 들여 개발 중인 제주헬스케어타운에 관한 상황을 보고했고, 박 대통령은 이에 대한 충분한 동의와 높은 칭찬을 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사업 무산 위기에 놓인 녹지그룹이 중국 자본의 대한(對韓) 투자를 주도하는 기업 중 하나란 것. 또 정체가 모호한 다른 중국 기업들과 달리 실체가 분명해 한국 측 파트너들도 믿고 사업을 벌일 수 있었다.

실제 지난 5월 15일에는 롯데그룹의 신동빈 회장도 상하이 녹지그룹 본사를 방문해 장위량 회장과 회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녹지그룹 측에 따르면 신동빈 회장은 “롯데그룹과 녹지그룹 쌍방이 합작할 공간이 많다”며 “전략합작파트너 관계를 맺고 싶다”고 밝혔다고 한다.

결국 지방선거로 인해 행정 일관성이 흔들리며 외국 기업의 수조원대 투자까지 발목을 잡은 셈이 됐다. 그만큼 한국에 대한 해외신인도는 떨어지고, 경기활성화는 지체될 수밖에 없다. 과거 서울에서 서울시장이 바뀌며 현대차의 뚝섬 110층 빌딩이 무산된 것과 유사한 사태가 제주도에서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는 이 때문에 나온다.

이에 녹지그룹의 자본이 투입된 또 다른 프로젝트인 제주헬스케어타운에서도 제주드림타워의 사태 진행을 예의주시 중이다. 제주헬스케어타운을 주관하는 국토교통부 산하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에 따르면, 제주헬스케어타운은 1단계 콘도(188실)를 준공한 상태로, 현재 2단계 콘도(212실)를 건설 중이다. JDC의 조용석 홍보부장은 주간조선에 “제주헬스케어타운에도 녹지그룹이 참여하고 있지만 별개로 추진하는 사업”이라며 “카지노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서 별다른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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