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과 삼성SDI는 부랴부랴 준비해 4차 인증을 신청했다. 하지만 6월말 발표된 4차 인증 결과에서 30여개사가 새로 인증을 받았지만 이들은 탈락됐다. LG화학과 삼성SDI는 중국에선 배터리를 팔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업계엔 5차 인증이 9월께 공고될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10월말이 돼도 공고는 뜨지 않았다. 그새 한국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만들거나 만들 예정이던 장화이자동차, 상하이자동차 등이 잇따라 해당 모델 생산을 중단했다. 7월 발표된 한국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이 영향을 주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쏟아졌다. LG화학 배터리를 쓴 전기차를 내놓으려던 현대자동차도 고민에 빠졌다. 한국 배터리를 쓰면 보조금을 받지못해 중국 시장에 발붙이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는 BMW 폭스바겐 GM 포드 등 한국 배터리를 써온 글로벌 업체들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의 자국 배터리 육성 계획은 치밀했다.
그러던 11월 중국 정부는 새 모범규준 인증 제도를 들고 나왔다. 수정안은 리튬이온전지 최소 연간 생산능력을 0.2GWh(기가와트아워)에서 8GWh로 40배 높이는 등 요건을 높였다.
2017년 초까지 의견 수렴을 한 뒤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삼성SDI의 시안 공장과 LG화학의 난징 공장의 생산능력은 2~3GWh수준으로 새 기준에 못 미친다. 하지만 중국에서도 이 기준을 넘는 곳은 BYD 등 두 곳에 불과해 수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이 제도를 보조금과 연계하지 않을 수 있다는 보도도 나와 일말의 희망을 갖게했다.
12월엔 중국 정부가 2017년부터 삼원계 배터리를 탑재한 버스도 보조금 신청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삼원계 규제를 1년만에 푼 것이다. 중국은 대신 배터리 업체가 ‘전기버스 안전기술조건’을 만족하는 제3기관의 증명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올 1월 들어선 배터리 모범규준 인증을 보조금과 연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국 배터리 업계를 옥죄된 명시적인 규제인 삼원계 규제와 모범규준 인증을 1년만에 모두 거둬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를 한국 배터리 업계의 어려움이 사라질 것으로 보기엔 이르다. 중국의 움직임은 세계무역기구(WTO) 등에 제소될 수 있는 명시적인 차별적 규제는 없애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규제로 전환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아서다. 시 주석의 다보스 연설을 앞두고 세계로부터 비난을 피하기 위해 명시적인 규제들을 없앴을 수도 있다. 실제 삼원계 규제는 없앴지만 보조금을 타려면 LG화학, 삼성SDI가 중국 당국이 인정하는 제3기관으로부터 전기버스 안전기술조건을 만족하는 증명서를 받아야한다. 여기서 불합격을 주면 보조금 수혜를 입을 수 없다. 또 중국 공업정보화부가 지난해 12월29일 오전 2016년 5차 보조금 대상 목록에 95개사 498개 모델을 올린 뒤 반 나절만에 LG화학 배터리 탑재 4종, 삼성SDI 1종 등 한국 배터리를 탑재한 5개 모델을 삭제하는 등 차별적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시 주석의 발언 다음날인 18일(현지시간) 미국의 윌버 로스 상무장관 내정자는 “중국은 자유무역을 실천하기보다는 말을 더 많이 하는 나라”라며 밝혔다.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도 “중국이 자유무역을 강조하면서 한국 기업에 사드 보복을 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비판했다. 미하엘 클라우스 주중 독일대사는 두터운 진입 장벽, 과도한 기술이전 요구, 허술한 지식재산권 보호 등을 꼬집으며 “중국은 언행을 일치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이 세계로부터 존경받으려면 진정한 자유무역을 해야한다. 중국이 배터리 비관세 장벽을 무너뜨릴지 아니면 만리장성처럼 더 쌓아나갈 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