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보성 녹차원, 율포 해수욕장, 서울 인사동, 경복궁 나들이..
"세상에는 좋기만 한 일도 없고, 나쁘기만 한 일도 없다" 라는 옛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장모님을 하늘나라로 보내 드리고, 그곳의 대지인 보성군 차 밭과 율포 해수욕장을 찾았다. 사실 처가가 보성이지만 지금까지 그 유명한 두 곳을 직접 가보지는 못했는데, 큰일을 치고 식구들과 함께 바람 맞으려 나선 것이다.

'보성' 하면 녹차로 유명하다. 그런 차 밭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머리 속의 상상은 단순한 넓은 밭 언저리에 차나무가 가득 찬 넓은 평지를 연상하였는데, 왠걸 보성 차 밭은 공원이었으며, 산등성이를 계단식 밭으로 개간하여 보기 좋게 단장 해 놔둔 한 폭의 산수화 기지였다.

아마도 차 밭의 봄은 주변에 핀 벚꽃, 살구꽃, 진달래, 개나리로 산등성이를 화사하게 물들일 것이며, 만일 차나무 속에 군데 군데 솟아 있는 벚꽃이 옅은 봄바람에 후루룩 날리기라도 한다면, 파란 차 잎 위에 떨어지는 꽃잎으로 멋진 군무를 연출 할 것이다. 그리고 정서 깊은 가을의 오색 찬란함은 오롯이 푸르기만 한 차 잎의 정결함을 더욱 높여 줄 것이며, 파란 차 잎사귀에 살포시 내려 앉은 하얀 눈의 군상은 겨울의 깊이를 더없이 순결 하게 해 줄 것이다.

중국에서 여행을 하다 보면 황산(黃山), 우이산(武夷山), 항저우(杭州) 등 유명한 차 명산지는 일반 평지 보다는 야산 등허리를 개간하여 저 멀리 바라다 보면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하는 그 것이다. 역시 명 차의 맛은 산속에서 자연의 풍광과 더불어 서리와 눈, 이슬과 함께 생성되는 가 보다.

보성 차 밭은 볼거리가 많다. 산보 길을 따라 전봇대처럼 길게 자란 전나무 가로수 길을 걷다 보면, 야릇하면서 그윽한 전나무 향기가 가슴의 막힌 부분을 뚫어 주며, 무언가 잃어 버린 과거 속 한 자락의 추억을 묘하게도 상기시켜 주곤 한다. 아마도 어린 시절 전나무 밑에서 이뤄 졌던 자그마한 추억의 역사가 아닐까나?

전나무 가로수 길을 지나고 나면 가파른 산 등선을 따라 넓게 펼처진 차 밭이 우리를 압도한다. 푸르고 푸르게.. 산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차 밭은 질서 있고 규칙적인 훈련병 모습처럼 정렬은 되어 있지만, 산길 따라 꼬불꼬불 자연의 위치에 따라 잘 가꾸어 진 차 밭의 모습은 흘러가는 물길처럼 자연스러운 정감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차 밭의 뒷동산 정산에 올라 앞을 내려다 보는 풍광은 일품이다. 저 멀리 율포 해수욕장 바다가 보일 듯 말 듯하고, 앞 뒤로 올망졸망한 산 봉우리들이 고향의 아늑함을 가져다 주며, 그 속에서 파랗고 푸르게 산하를 메운 차 잎의 모습은 편안한 그리움을 가져다 준다.

한때 우리 전통 차가 대세인 적이 있었다. 눈 내리는 대나무 숲 서재에 앉아서 따끈한 한국 전통 차를 양 손으로 감싸 안으며, 설경 한번 쳐다보고 녹차 한잔 축이는 그 모습은 가히 한국적인 깊은 멋으로 각인되어 왔건만, 그 어느 때부터 인가 간장 달인 것 같은 외국계 커피 홍수로 우리 전통 차가 멀어져 가고 있다고 한다. 정말 아쉬운 일이다.

보성 차 밭을 관람하고 율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겨울 바다, 하얀 백사장, 고요함, 황량함, 쓸쓸함... 그래도 자연의 멋은 살아 있다.

겨울 바다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먼 바다를 쳐다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생각이 막히면 입 한번 크게 벌리고 짠 내음 풍기는 바다 바람을 가슴속 깊이 들이 마시면 된다.

가족들과 오랜만에 싱싱한 율포 생선회로 상심의 회포를 풀었다. "잊을 것 잊고, 살아 있는 자식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작고하신 부모님의 최대의 바램이다"
서울에 와서 아내와 함께 경복궁과 인사동 나들이에 나섰다. 지금까지 서울의 명소인 그 두 곳마저 가 보지 않았다고 하니, 부끄러운 일이다. 중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느끼면서, 정작 자국의 명소 마저 들여다 보지 못한 무관심에 새삼 무안하다.

인사동 거리와 골목 구석 구석의 모습은 가히 정답다. 너무 현대적이지 않고, 마치 7~80년대 중소 도시에 온 느낌이다. 특히 뒷골목의 먹거리가 무궁무진한 그 곳은 왠지 먹어 보지 않아도 배부르다. 우선 음식 종류가 소박해서 기분 좋다. 손 칼국수, 손 만두, 옛날 팥죽, 추어탕, 홍 탁, 돼지 불고기, 굴 밥, 김치 찌게, 된장 찌게, 소박한 가격에 푸짐한 전주 한식집, 각종 전 부침,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의 내로라하는 음식들이 소박하게 골목을 오밀조밀하게 꽉 차고 있다. 어느 집에 훌쩍 들어가더라도 배는 부르되 돈 걱정은 되지 않는다. 착한 가격이 참 정답다. 막걸리 한잔에 푸짐한 전 나부랭이 몇 개면 세상은 다 내 꺼다. 딱 내 스타일 이다.
경복궁에 들어갔다. 사실 궁전 등 건축물은 좋아하지 않는다. 유럽의 성당이나, 왕궁, 중국의 자금 성 등 별로 관심이 없다. 마찬가지로 경복궁에 대한 관심 역시 별로 다.

단지 중국의 자금 성과 비교 시, 규모나 화려함은 못 미치지만 한국적인 섬세함과 아기자기함이 훨씬 겸손하고 편안 하였다. 그리고 박물관도 잘 봤다.

지금껏 혼자서 배낭 짊어지고 이런저런 곳을 쏘다니다가, 하늘나라로 떠나신 장모님 덕분에 아내와 함께 남도의 한 자락과 서울의 명소를 구경하게 되었다. 역시 “세상에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 는 옛말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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