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3일, 화려한 봄날에 완도 보길도를 찾았다.

강진군 도암 면 소재지에서 시외 버스를 타고 도암 면, 신전 면, 북일 면, 원동을 거쳐 완도 읍 공용 터미널까지 약 30분이 소요됐다. 완도 읍에서 보길도가 있는 노화도 섬으로 가는 여객선을 타기 위해서 순환 버스를 타야 했다. 배차 시간은 친절하게도 화흥포 항구에서 노화도 행 배가 출항하는 시간에 맞춰서 운행되고 있었다.

오후 2시 35분에 화흥포 항구에서 노화 도로 출발하는 여객선이다. 여객선에는 대형, 소형차, 그리고 사람까지 두루 싣고서 출항한다. 보길도가 속한 노화 도까지는 약 35분이 소요되는데, 최근 해상 조난 사고의 빈발로 조금 안개가 심하면 출항은 금지되어서, 봄날의 아침 안개로 종종 배편이 끊기고, 오후가 되어서야 정상 운행되곤 한다.

손님을 실어 날리는 '만세호'는 참으로 편안한 실내를 가지고 있다. 마치 사우나실의 온돌방처럼 넓은 객실에 의자 없이 장판 바닥에 편안하게 눕거나 뒹굴면서 자유롭게 여유를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날씨가 추우면 난방을 더우면 냉방으로 손님을 편안하게 모시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승선 시간 35분은 너무 짧다.

노화도 동천 항구에 도착하면, 친절하게도 보길도까지 운항하는 순환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이제 보길도 섬이다. 가까이로 보이는 남도의 다도해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점점이 흩어져 있고, 저 멀리에는 망망대해의 수평선이 보일 듯 말 듯 하게 끝없이 펼쳐 있는 곳, 이곳은 섬이다.

보길도(甫吉島)는 완도에서 서남쪽으로 24킬로미터, 노화 도에서는 1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의 섬이나, 최근 노화 도에서 보길도까지 육교를 설치하여서 한 동네처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으며, 섬 인구는 약 2800명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한다.

보길도란 이름은 상당히 신비롭다. 즉 옛날 영암의 한 부자가 선산의 묏자리를 잡기 위해 풍수지리에 능한 지관을 불렀는데, 지관이 이 섬을 두루 살핀 후 '십영십일 구 (十用十一口, 甫吉)이라는 글을 남겼는데, 이 뜻을 선암사 스님이 해석하길," 섬 내에 명당 자리가 11구 있는데, 그 중에 10구는 이미 사용됐고, 한구는 쓸 사람이 정해 졌다"라고 풀어 '보길도'라 불렀다고 한다. 어쨌든 윤선도가 이곳을 지나면서 명당으로 점지하였으니, 길지 임에는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자, 이제 1박 2일의 보길도 여행을 시작 해보자.

어떻게 기웃거려 봐야 좋을 것인가? 누구는 차량을 가지고 와야 제대로 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고 하는데, 없는 차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다고 몇만 원씩 들여가면서 택시를 빌려 타고 쌩쌩 거리며, 섬 구석구석 쏘다니는 것은 취향이 아니다. 섬 전체를 운행하는 시내 버스도 여의치 않은 듯하니, 그냥 걸어서 가고 싶은 곳 몇 군데 돌고 나면 괜찮지 않겠는가? 꼭 다 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몰랐던 그 곳이니..

보길도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경, 주변의 어민들에게 보길도에서 1박 2일 동안 택시 타지 않고 도보로 갈 수 있는 꼭 가 봐야 할 곳을 물어 보니, 얼굴 한번 쳐다보고, 혼자 왔냐고 하면서 꼭 가 봐야 할 곳은 윤선도 유적지와 관련된 윤선도 역사 박물관, 부용동 정원의 세연정, 문학 체험 공원, 동천 석실 등이며, 나머지는 산길과 해안선을 번갈아 가며, 섬의 고유한 봄의 풍취를 즐기는 것이 최고라고 한다. 내 입맛에 쏙 드는 추천이다. 우선 남은 시간 저녁 무렵에는 윤선도 유적지와 세연정을 관람하고, 하룻밤 잘 자고 나서 다음날은 산속에 있는 동천 석실과 해안 도로를 산책하기로 했다.
보길도 봄 여행의 테마는 4가지 정도다.

첫째로는 단연 찬란한 동백꽃 사연과 온 천지를 화사하게 장식하고 있는 봄 꽃 향연의 즐김 이다.

보길도 섬에는 4월 초가 되니 봄 꽃이 한창이다. 개나리, 진달래, 복사꽃, 벚꽃, 유채꽃, 배추꽃 등 꽃이란 꽃은 전부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동백꽃이 단연 압도적이다. 섬 곳곳마다, 집집마다, 가로수에도, 명승지에도 이름 모를 깊은 산속의 산책로에도 동백꽃은 여일하게 피어 있다.

4월 초라서 동백꽃 개화기는 살짝 시기가 지났지만, 이즈음에는 동백나무에 걸린 꽃과 바닥에 널브러진 꽃이 반이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우수수 떨어지는 빨간 동백 꽃을 보는 심정은 왠지 처연하다. 특히 물 위에 떨어져 빨갛게 물들어진 동백꽃의 모습은 낙화유수와 인생무상을 생각게 하는 묘한 상실감으로 가슴 한 곁을 멍하게 한다.

혹시 동백꽃 꿀을 아시나요? 하늘을 향해 피어 있는 빨간 동백꽃 속의 노란 꽃 밭침 속에는 꿀이 한 모금 들어 있답니다. 물론 해당 동백꽃은 이제 수명이 다하여 곧 땅에 떨어질 정도여야 하고요, 동안 봄비와 태양의 조화가 몇 번을 거쳐야만, 동백꽃 속에 녹아 있는 달콤한 꿀을 맛볼 수 있답니다. 어릴 적 배고플 때 긴 대나무 대롱으로 꿀물을 빨아먹고, 잘못 들어온 꿀벌 때문에 입안이 얼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죠.. 보길도의 동백꽃 꿀은 더욱 은근하고 감미로웠답니다.
두 번째는 단연 한국 3대 가사 문학의 한 사람인 윤선도의 문학 향기를 음미하는 것이다.

윤선도는 병자호란을 계기로 제주도로 향하던 중 보길도를 발견한 이후 85세로 일생을 마치기까지 7차에 걸쳐 이 섬을 왕래하며, 약 13년간을 머무르며 어부사시사 40 수와 한시 41편을 남겼고, 1671년 그 장구한 삶을 보길도에서 마쳤다고 한다. 즉 보길도가 윤선도 시의 산실인 셈이다.

윤선도는 보길도에서 불과 13년간 머물렀지만, 그가 남긴 흔적은 역력하다. 부용동에 1년을 은거하며 보길도의 여러 자연의 명소를 시로 표현하였으며, 특히 나이 65세에 부용동에 머무르며, 천고의 절창’오우가’와 '어부사시사'를 통해 어민들의 삶과 애환, 그 속에서 자연의 즐거움을 느끼는 안빈낙도의 모습을 연출하였다.

윤선도의 정치적 진로는 선비로서 고지식하여 중앙 정치 무대에서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였지만, 이곳 보길도에 안주하면서 본인의 못다 이룬 한을 글과 시로서 남겨, 후세에 영원한 보석으로 남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길도는 정약용 선생의 18년 유배지 강진의 '다산 초당' 만큼이나 값진 곳이라 하겠다.
세 번째는 섬이면서도 육지 같은 편안한 산보와 풍경 감상이다.

보길도는 섬이다. 그런데 막상 섬 안으로 들어 보면 섬인지 육지인지 분간이 안 간다. 육지에 있는 꽃은 섬에도 없는 게 없고, 대신 섬에만 있는 해안선을 따라서 돌고 도는 산보길, 그리고 가끔씩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실려 오는 비릿한 바다의 맛은 역시 섬의 한가운데 임을 실감할 수 있다.

보길도 섬 내 산보 길은 잘 다듬어 져 있다. 해안선 도로, 산속의 산책로, 어촌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동네 산책로, 이곳 저곳에는 시골의 풍경이 흠씬 묻어 있다. 정겨운 시골 산책로를 걷다 보면 수시로 만나는 동백꽃, 벚꽃, 복사꽃, 개나리, 논밭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자운영, 유채꽃, 민들레, 제비꽃 들의 향연, 수탉의 홰치는 소리, 가끔씩 울어 대는 동쪽 산의 뻐꾸기 소리, 이름 모를 산새 소리, 풀벌레 소리, 그리고 향긋하게 느껴 지는 논밭의 인분 냄새까지도 평안하기가 그지없다. 그렇다 그 곳은 걷기에 참으로 좋은 곳이다.

아, 그래도 한가지 불만은 있다. 혼자 걷는 나그네에게 사납게 달려드는 시골 개들.. 정주기 어려운 동물이다.
네 번째는 마음의 편안함이다.

내 마음속에 무엇을 느끼고 무엇에 즐거워 할 수 있는가는 결국 본인의 마음이다. 보길도에 오면 딱 본인의 마음만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1박2일 보길도의 봄나들이는 이렇게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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