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는 신라인이다. 드라마 <해신>을 본 우리는 중국을 오가며 전투와 무역을 하던 장보고가 생생하다. 바로 산둥 땅 동쪽 끝, 바다를 바라보며 그의 기념관이 있고 동상이 우뚝 서 있다.



룽청(荣成) 시 스다오(石岛) 장보고기념관에 도착하니 개관식 준비가 한창이다. 입구에 마련된 행사장에 빼곡하게 사람들이 들어찼다. 징 소리에 맞춰 큰북을 두드리는 아주머니 판구(盘鼓) 악대, 북채도 옷도 다 빨갛다. 머리에는 또 모두들 노란 방울을 달고 있으니 낯선 색 대비, 약간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한국 장보고기념사업회도 참여한 공식 개관식이다. 국회의원들도 참가했고 한국 취재진도 꽤 있다. 이미 몇 해전 개관했으나, 이번에 행사를 하는 것은 외국인 이름을 사용한 기념관은 중앙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늦어진 것이라고 한다.















▲ 장보고 동상






수천 발의 축포, 하늘을 온통 뒤덮을 듯한 꽃가루가 휘황찬란 날리자 행사가 끝났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서니 장보고 동상이 아주 반갑다. 동상 위로 노란색, 붉은색 깃발이 만국기마냥 휘감고 있다. 바람 부는 대로 깃발은 휘날리건만 장보고의 시선은 정면, 저 너머 바다를 향해 늠름하다.



기념관 아래쪽 공터와 무대에는 민속공연이 한창이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서커스는 좀 지루했는데 마당에 재미난 구경거리가 있다. 바로 긴 막대 중간에 다리를 걸치고 말처럼 움직이는 가오챠오(高跷)이다. 가오챠오를 탄 채 사람을 목마 태우기도 하고 작은 북을 치며 걷다가 뛰다가 하는 민속놀이인 것이다.















▲ 민속놀이 가오챠오






당나라로 온 배경이나 무녕군(武宁军) 참전, 불교에 대한 관심, 청해진(清海镇)을 설립해 해적을 소탕하고 노비 매매를 금지했으며 해상무역을 발전했다는 기념관 안에 그의 일대기는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무녕군이 무엇인가.



당나라가 쉬저우(徐州)에 둔 행정기관이며 군대가 아닌가. 8세기 경 고구려 유민을 결집해 당나라 수도까지 진격하려던 이정기(李正己)가 세운 나라와 전쟁을 수행한 장보고는 현대적 민족의식으로 대꾸하기 힘든 1200년 전 신라인이었다.



동상 시선 쪽 산 정상에 청동 주조 동상이 앉아있다. 높이만 33미터가 넘는 엄청 큰 동상의 이름은 명신(明神)이다. 이 지방 신화 속에 등장하는 ‘해신’이다. 장보고를 신의 경지에 올렸던 드라마의 영향일까. 명신을 보노라니 신화 속 해신보다 역사에서 걸출했던 해신이 더 대단해 보이지 않는가. 신화에 나오는 신보다는 인간으로서 신의 경지로 이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칭송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 큰 동상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이 높은 산꼭대기에 말이다.



"저 명신 말이야. 만들어서 가져온 거야 아니면 산 꼭대기에서 만든 거야?"

"아니 어떻게 저 큰 걸 가져오나요? 산에서 만들었다고 하던데요."



계단을 따라 오르다 돌아보면 바다가 보인다. 바다를 무대로 역사의 신이 됐으며 바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신화가 된 둘을 비교해봐도 좋다. 높이가 다르고 서 있던지 앉아있던지 그들은 다 바다를 향해 있다.















▲ 명신 동상






돌아오는 길에 잠시 장보고 동상 앞에 다시 섰다. 역사의 무게가 느껴진다. 장보고가 살았던 시대, 그의 삶과 결코 가볍지 않은 능력과 지혜가 이 땅에 서 있다는 것에 뿌듯했다.



장보고가 824년에 이곳에 세운 불교사당 법화원을 둘러보러 갔다. 이곳에는 회전하는 극락보살계와 분수 쇼가 장관인데 이미 쇼가 시작됐는지 사람들이 갑자기 구름처럼 모여있다. 인산인해를 헤집고 들어가느라 사람들과 계속 부딪힌다.



음악에 맞춰 물이 뿜어 나오고 무지개가 살짝 내비치는 사이로 거대한 불상이 빙빙 돌아가는 장면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얼추 앵글 찰칵 소리가 마음에 들어갈 즈음, 렌즈 뚜껑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주머니를 다 뒤졌다. 땅만 보고 훑었지만 몇 번을 왔다 갔다 해도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거의 포기하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새까맣고 동그란 물체 하나가 보인다. 뚜껑 녀석이다. 얼마나 반가운지. 사람들을 밀치는 사이 톡 떨어져서는 아래로 한참 굴렀나 보다. 이 뚜껑이 없으면 내내 렌즈를 맨땅에 드러내고 다녀야 한다는 것인데 좀 큰 도시를 가기 전에는 구하기 어려울 듯싶기에 다소 긴장했던가. 마음이 풀리면서 고마운 생각이 든다. 누구한테 고마워해야 하는가. 해신 둘에다가 부처까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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