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료사진] 이진룡 기념원 입구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다 순국한 독립운동가 이진룡(李鎭龍) 의사를 기리는 공간이 랴오닝성(辽宁省) 단둥시(丹东市) 콴뎬(宽甸)만족자치현에 마련됐다.

랴오닝조선문보(辽宁朝鲜文报)의 20일 보도에 따르면 이진룡 의사의 후손들은 현지 지방정부의 비준을 받아 지난 15일 그의 순국지인 콴뎬만족자치현 칭산거우진(青山沟镇) 인쾅쯔촌(银矿子村)에 '이진룡 기념원'을 준공하고 일반인에게 정식으로 개방했다.

이번에 조성된 200평방미터 규모의 기념원에는 이진룡 의사의 항일사적을 기록한 높이 2.5미터, 너비 2미터의 비지(碑志)석과 1919년 현지 주민이 이진룡 부부의 항일 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의열비(義烈碑), 우씨묘비(禹氏墓碑) 등이 있다. 의열비와 우씨묘비는 지난 100여년간 현지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보존돼 왔다.

이진룡 의사는 황해도 평산 출신으로 호 기천(己千), 일명 석대(錫大)로 불렸다. 지난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박정빈(朴正彬)·조맹선(趙孟善) 등과 의병을 규합, 선봉장이 되어 싸웠다. 1908년 강화에서 온 지홍기(池洪基) 부대와 연합해 예성강 부근에 유격전을 벌여 곳곳에서 승리하면서 해서명장(海西名將)으로 불리었다.

1911년 국내에서 의병운동이 불가능해지자, 같은해 10월 압록강을 건너 콴뎬현 지역으로 이주해 '대한광복회'를 창립하고 만주 곳곳에 흩어져 있던 이주민을 규합하고 항일사상을 고취하는 한편 군사훈련과 군자금 모금에 주력했다. 1917년 콴뎬현에서 일본에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고 1918년 5월 순국했다.

의병 군자금 마련을 돕고 부상자들을 간호했던 우씨 부인은 이 소식을 듣고 남편을 따라 순절했다.

한편, 한국 정부는 1962년 이진용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온바오 한태민]

관련뉴스/포토 (12)
#태그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