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


















2월 17일 수원지방법원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게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2년, 나머지 피고인들에 대해서도 4년에서 7년의 실형과 자격정지를 병과하는  선고를 하였다. 이는 이석기와 관련자들이 작년 5월 서울 합정동의 종교 수련시설에서 회합을 갖고, 당시 북한에 의해 조성된 전쟁 위기상황을 계기로 유사시 혜화 전화국, 평택유류저장소 등 국가 기간시설을 폭파하기 위해 총기를 구입하거나 폭약을 제조하는 방법을 사전에 논의한 혐의로 내란음모 및 선동,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찰이 기소한 데 대해 혐의의 대부분을 인정한 것이다.



더 나아가 재판부는 이석기가 주도한 RO(혁명조직, Revolutionary Organization)를 2000년 대법원에 의해 반국가단체로 판시된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능가하는 지하혁명조직으로 규정했다. 민혁당은 1992년 김영환ㆍ하영옥 등 80년대 대학가를 풍미했던 주사파 핵심들이 조직한 지하혁명당이었다. 당시 민혁당은 ▲북한의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고 ▲조직의 강령 규약을 암기하도록 하며 ▲조직원 간 위장명칭을 사용하도록 하고 ▲북한의 지하당 조직 구축의 대표적인 원리인 단선연계(單線連繫, 횡적연계 없는 상하연계)•복선포치(複線布置, 중요 단위에 2개 이상의 선을 구축하는 것으로 사고발생 시 활동승계를 위함)의 방식으로 조직을 건설하여 남조선혁명을 추구했다.



과거 민혁당도 북한의 대남혁명론에 입각한 활동을 벌였지만, 이번 이석기 RO처럼 ‘혁명의 결정적 시기’에 폭력혁명조직으로 전환될 수 있는 구체적 준비를 한 것은 발견할 수 없다. 그리고 민혁당은 총책이었던 김영환이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서 김일성을 만나고 나서 북한 체제의 반민족, 반인권성을 깨닫고 사상을 전향하면서 결국 1997년 중반 스스로 해산하였다. 그러나 하영옥 등은 전향하지 않고 재차 북한에서 파견한 간첩과 접선하여 반국가 활동을 진행하다 체포되어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이때 하영옥의 직계 핵심 간부로 경기도당의 책임을 맡았던 사람이 이석기다. 그 역시 2002년 체포되어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년 3개월만인 2003년 8월 15일에 석방되었다.  



이석기는 민혁당 시절 그가 관리했던 경기도 중심의 조직을 다시 재건해 RO를 건설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들은 80년대 운동권 주사파의 남조선혁명론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교조화 되었다. 이번 사건에서 보면 실제 폭력에 의한 혁명을 실천하려고 했다. 재판부도 이런 점을 정확히 파악, 이석기 RO를 “조직원 가입절차 강화, 분기•연(年) 총화를 통한 사상검열 강화, 조직 보위와 운영 면에서 민혁당을 능가하는 특성이 있다”고 판결문에 적시했는데, 이는 이석기가 기존 민혁당이 해체되게 된 원인과 수사기관에 의한 검거 등에 대해 분석하면서 이 부분을 보완해 RO를 더욱 강력하게 운영했다고 본 것이다. 이석기는 수배와 구속과 수감 생활을 계기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반성해 국가발전에 새롭게 기여하는 인물로 다시 태어나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철저한 혁명가로 거듭나려 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이들이 소수라고 해서 이들을 큰 위협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적지 않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를 보면, 1968년에 우리나라의 1996년에 있었던 한총련의 연세대 점거와 유사한 사태가 발생했는데, 전공투(全共闘) 등 일본의 좌익 학생운동권이 동경대 야스다 강당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다 화염병을 투척하는 등 과격한 투쟁을 벌인 사건이다. 이후 일본의 학생운동은 일본 국민으로부터 고립되고 소수화 되었다. 더욱 과격화 한 이들은 적군파(赤軍派) 등으로 변신해 비행기를 납치하고 수류탄과 총으로 무장해 외국 대사관을 점거하고, 자파 내의 온건파를 처형하는 등 극단적 투쟁으로 치달으며 사회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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