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1일 이화여대 정문 벽의 배꽃 부조 앞에서 중국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무차별 몰카에 이대 학생들 울상

"내 사진이 인터넷에? 막아달라"



학교 앞 상가는 관광객 유치 열기

"중국인은 최대 고객, 더 늘었으면"



[한국경제신문 ㅣ 김태호 기자] #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정문 앞. 수십명의 중국 관광객이 정문을 통과하자 이 대학 경비원이 A4 용지 사이즈의 안내판을 가이드에게 보여줬다. 이 안내판에는 ‘캠퍼스 무단 사진 촬영 금지’ 등 관광객이 지켜야 할 규칙들이 적혀 있었다. 또 다른 중국 단체관광객들은 정문 주변에서 한창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특히 대학 입구 벽면의 배꽃 문양 부조가 인기였다. 이 중 한 관광객이 동영상 카메라를 들고 정문 이곳저곳을 촬영하자 경비원들은 “동영상 촬영은 안 됩니다. 카메라 꺼주세요!”라고 말하며 바로 제재에 들어갔다. 경비원 A씨는 “사진은 괜찮지만 동영상 촬영은 가끔 인터넷에 올려 문제가 된 경우가 있어 제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 같은 시각 지하철 이화여대입구역에서 정문으로 내려가는 길에 늘어선 화장품 가게에서는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홍보가 한창이었다. 판매원들은 가게 밖으로 나와 중국어로 관광객 잡기에 열을 올렸다. 길거리 음식점에도 중국어는 필수. 닭꼬치 집에는 ‘맛집’임을 알리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M화장품 가게 주인은 “중국인이 몰리긴 하지만 생각보다 지갑을 열지 않아 매출은 크게 늘지 않고 있다”며 “좀 더 많은 관광객이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화여대가 중국 관광객의 필수 관광 코스로 자리잡으면서 이 학교 정문 주변에서는 ‘중국인’을 둘러싸고 엇갈린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몰려드는 중국 관광객으로 인해 “공부를 할 수 없다” “불안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제재를 촉구하고 있다. 반면 주변 상점들에 중국인은 생계 유지를 위한 주요 고객이 된 지 오래다. 이들은 오히려 더 많은 관광객이 오길 기대하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에 몸살 앓는 이화여대



사생활 침해 심각해


열람실 밖에서 문 두드린 뒤

쳐다보는 학생 촬영하기도

출입금지 안내도 무용지물



이화여대에서도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이화캠퍼스센터(ECC)다. ECC는 이화여대의 대형 지하 캠퍼스로 열람실부터 헬스센터, 공연장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의 생활을 지원하는 다양한 시설이 몰려 있는 공간이다. 특이한 디자인 때문에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하지만 중국인 관광객이 지나치게 드나들면서 학생들의 학업을 방해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최근에는 중국 인터넷 사이트 이룽 등에 이화여대 학생들을 몰래 찍은 사진들이 올라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 중국 사이트 유명 블로거는 ‘한국 이화여대생의 1000가지 포즈’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올렸고, 이 글 안에는 여대생 100여명의 사진이 포함돼 있었다. 이 사이트에는 학생들의 신체 특정 부위만을 촬영한 사진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고심 끝에 이화여대 측은 지난주 ECC 출입문 10곳에 ‘관광객 출입 금지’라는 안내문을 제작해 붙였다. 학생들의 사생활 등이 침해받을 수 있는 곳은 별도의 간판까지 제작했다.



하지만 이대 측의 이 같은 조치에도 이날 중국인 관광객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ECC 곳곳을 돌아다녔다. 열람실이 위치한 2번 출입문은 학생증 없이는 출입할 수 없는 곳이지만 일부 관광객은 다른 출입문을 통해 이곳을 지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 대학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김모씨(22)는 “열람실 밖에서 손으로 문을 두드린 뒤 쳐다보면 사진을 찍고 가는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며 “출입 금지 정도의 안내판으로 이들의 황당한 행위를 막을 수는 없고 좀 더 강력한 조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 이화여대 정문 앞 골목에 있는 화장품 가게에 중국 관광객을 위한 중국어 홍보 문구가 눈에 띈다.



‘중국인’은 매출 80%…명동된 이대 상권



‘제2의 명동’ 된 이대 상권

매출 80%는 중국인 차지

매장 직원도 중국어 가능자로

권리금 높아져 수익은 줄어



중국 관광객 때문에 몸살을 앓는 이화여대와 달리 주변 상가들은 ‘중국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중국인들이 주로 찾는 화장품 가게는 이화여대 주변에 수십곳이 있다. 구두, 가방 등 피혁 제품도 인기 상품이다. 과거 패션의 중심지였던 이화여대 주변 의류상가들도 앞다퉈 중국인에게 맞춘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화여대 정문 주변 구두가게 점원은 “매출의 80% 정도를 중국인이 올려주고 있다”며 “한국인은 잘 찾지 않아 점원도 중국어가 가능한 사람을 뽑고 있다”고 말했다.



가이드와 상점 간 연계 체계도 만들어지고 있다. 이화여대 주변의 한 닭갈비 집에는 점심시간이 다소 지난 오후 2시에도 많은 중국인이 몰려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곳 외에도 뷔페, 청바지 브랜드 등이 일부 여행업체와 계약을 맺고 가이드의 소개로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중국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명동 상점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주변 상점들의 고민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국 관광객 유치를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상가 권리금 등이 점점 높아지면서 실질적인 수익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화여대가 자리잡은 신촌 일대는 최근 권리금과 임대료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다. 게다가 이화여대 앞은 서울시가 관광과 쇼핑 특화 권역으로 계획하고 있는 지역이다.



3개월 전 이화여대에 문을 연 가방가게 주인은 “이태원에서 장사를 하다 이곳으로 옮겼고, 간판도 중국어로 제작했다”며 “구경만 하고 가는 관광객이 생각보다 많아 매출은 오르지 않는데 권리금이 높아 이윤을 남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I화장품 가게 주인은 “경쟁 업체가 너무 많아 과거에 비해 수익이 점점 줄고 있다”며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교내 ‘안내센터’로 상생 전략 찾아야



이화여대가 이처럼 중국인 관광 필수 코스로 자리잡은 것은 3년 정도에 불과하다. 2010~2012년 한국 방문의 해를 맞아 이화여대는 중국인들에게 ‘부자’가 될 수 있는 장소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이화여대의 이화(梨花)는 중국어 ‘돈이 불어나다는 뜻’의 ‘리파(利發)’와 발음이 유사하기 때문에 이곳을 찾아 사진을 찍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속설이 생긴 때문이다. 당시 중국 관영 CCTV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웨이보 계정을 통해 이화여대를 ‘한국 9대 관광지’로 홍보했다.



중국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이화여대 측은 지난해 국내 대학으론 최초로 ‘이화웰컴센터’라는 홍보관 운영에 들어갔다. 중국 관광객뿐 아니라 지역 주민, 동문 등을 체계적으로 맞이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관광객의 각종 일탈 행위가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홍보관의 역할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연택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전 한국관광연구원장)는 “하버드대 같은 해외 대학의 경우 대부분 관광객이 알아서 홍보센터를 먼저 방문하고 이곳을 통해 학교를 탐방하고 있다”며 “이 같은 관광객 유도 시스템이 아직 정착되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관광객을 자연스럽게 홍보센터로 유인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한·중 젊은 세대들 간에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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