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 단호하게 회사 창업
김정남으로 하여금 더욱 부담을 느끼게 한 것은 1996년의 일이다. 김정남은 북한에서 점차 일어나기 시작한 자본주의단체 집회에 나타나 이를 지지하고 여기서 중국식 개혁개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같은 언행은 부친의 노여움을 샀다.
북한 대한국정보기구인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에 속했던 장진성(张真晟) 씨는 "1996년 8월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단체 집회에 건장한 체구의 젊은 남성이 나타났다"며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 있게 '부친이 내게 국가경제를 약간은 재정비해보라고 말했는데 개인적으로 경제를 재건하려면 중국식 개혁개방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여긴다. 우리가 먼저 기업을 설립한 후에 다시 자회사를 설립해나가는 식으로 발전시키면 자본주의로 바뀌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 사람이 바로 김정남이었고 당시 엄청난 흥분감을 느꼈다"며 "그의 말을 듣고 나서 개인적으로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아는 바에 의하면 김정남의 행동은 매우 신속했다. 집회가 끝난지 일주일도 안 돼 평양 도심에 위치한 대동강구역에 있는 한 아파트에 '광명성총공사'라 적힌 간판을 세웠고 회사 건물 착공에 들어갔다.
김정일은 장남의 일련의 행동에서 '위험한 사상'이 싹틀 수 있다고 예감해 그를 경제부문에서 전출하고 그에게 정치를 더 배울 것을 요구했다. 이어 아들의 심복을 체포하고 관련 활동을 하는 것을 제한했다. 이후 김정남은 실질적으로 비밀경찰인 국가안전보위부의 부부장을 맡게 됐다. 김정남이 이같은 결정에 얼마나 실망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장진성 씨는 "김정남이 이 일로 부친이 우둔하고 완고해 융통성이 없음을 더더욱 느꼈을 것이고 이는 그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고 여겼다. 이 때 김정남은 해외로 이민할 것을 결심했다.
한국 관련 부문에 따르면 김정남은 베이징, 마카오에 아내 셋과 자녀 셋이 있다. 베이징 북쪽 근교에 있는 빌라에는 전부인 신정희와 아들 김금솔이 있으며 마카오에는 둘째 부인 이혜경과 아들 김한솔, 김송희가 있다. 이외에 김정남은 마카오에 또 하나의 집이 있는데 여기에는 고려항공 스튜어디스 출신의 서영라가 살고 있다.
마카오 세자르로드 8~10번지는 안가 빌라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남의 둘째 부인인 리 씨와 아들 둘이 이 곳 빌라의 12층에 거주하고 있다.
기자는 이전에 이 빌라는 찾은 적이 있다. 빌라 안에 들어가니 6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이전에 일정 기간 12층에 사는 남매를 종종 본 적이 있지만 최근에는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기자가 김정남의 사진을 보여주자 그는 곧바로 즉석에서 "이 사람은 본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들 남매는 마카오 타이파에 위치한 국제학교에 다녔는데 일본 기자가 학교에서 그들의 행적을 추적하자 곧바로 학교에 다시 오진 않았다.
한국 정보부문이 파악한 현황에 따르면 마카오 최남단에 위치한 포우사다 데 콜로아네(Pousada de Coloane, 중국명 竹湾豪园) 361번지 역시 리 씨와 아들 두명의 거처인데 현지 주민에 따르면 이들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나중에 국정부문 관료는 "김정남과 둘째 부인은 이미 별거한 상태"라고 밝혔다.
다른 소식통에 따르면 마카오 옛 거리 관음당(观音堂) 부근의 분향각(芬香阁) 12층이 김정남과 그의 보디가드 및 친구들이 종종 술을 마시는 곳이다. 하지만 분향각의 경비는 "뚱뚱한 김정남은 본적이 없지만 분명 외국 기자가 몇차례 이 곳에 와서 그의 행적을 추적한 적은 있다"고 밝혔다.
한 외신은 이전에 알티라 호텔(新濠锋酒店) 식당과 카지노 1층 홀에서 김정남을 몰래 촬영한 사진을 공개한 바 있다. 호텔 식당 종업원은 "김정남은 이전에 분명 이 곳을 종종 찾았지만 2010년 3~4월 이후로는 온 적이 없다"고 밝혔다. 같은해 3월 26일은 바로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을 때이다. 설에 따르면 김정남은 자신의 안전을 우려해 마카오를 떠났다.
김정남이 쿠알라룸푸르에서 사망하자 그의 아들 김한솔의 신변안전 역시 매체의 큰 주목을 받았다. 일부 소식에 따르면 김한솔은 프랑스 파리에서 학업을 마친 후 행방을 알 수가 없다.
김한솔은 현재 22세로 김정남과 둘째 부인의 아들이다. 2011년 10월, 그는 순식간에 한국과 일본의 뉴스메이커가 됐다. 같은해 9월 30일, 누군가가 페이스북(Facebook), 트위터(Twitter)와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YouTube)에 김한솔로 보이는 남성이 북한 문제에 대해 활발하게 논하는 것을 제보했고 한국, 일본 언론이 이 사실을 안 후 곧바로 이를 무섭게 추적했다. 다음날 김한솔의 사진, 글은 완전히 사라졌고 이틀 뒤에는 유튜브에서의 그의 계정 역시 '정보는 오직 친구에게만 공개'로 설정돼 비공개로 전환됐다.
김한솔은 보스니아국제학교(세계연합대학 모스타르 분교)에 등록된 계정을 썼다. 앞서 보스니아 현지 언론은 "막 입학한 김한솔의 부친은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이라고 전한 바 있다. 학교 대변인 역시 "김한솔의 국적은 북한이며 그의 영어는 매우 유창하다"고 말했다.
김한솔은 비자수속을 마친 후 보스니아에서 수업을 듣고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학교 숙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아는 바에 의하면 이 국제학교의 1년 학비는 약 2만5천달러(2천868만원)로 북한 사람의 평균 수입의 100배를 넘는다.
김한솔은 SNS 홈페이지에 영어로 자기소개를 했다. 취미는 촬영, 관광, 와인, SPA 등이며 좋아하는 영화는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 '리멤버 타이탄(Remember the Titans)' 등이었다. '민주주의냐? 아니면 공산주의냐?'는 질문에서 그는 '민주주의'를 선택했다.
또한 "나는 북한사람이며 현재 마카오에 거주하고 있다. 북한에도 인터넷이 있다. 나는 북한 인터넷에 위성통신시스템을 설치했다. 조신민주주의공화국은 영원히 왕성하게 번영할 것이다", "나는 북한의 중산층 생활 수준에 속해 있다. 하지만 설령 맛있는 음식이 있고 먹고 싶다 하더라도 함부로 먹지 못한다. 왜냐하면 마음 속으로 항상 북한 인민들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나는 북한사람이 기근에 시달리는 것을 알고 있고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한솔의 대화기록을 보면 '김철'이라는 친구와 자주 채팅을 했다. 마카오에 거주하는 김정남은 싱가포르, 홍콩 등 동남아 호텔을 오갈때 종종 썼던 이름이 '김철'이라는 가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