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주의에 갇힌 유일한 나라
장 교수는 ‘데이터로 본 한국인의 가치관 변동’을 주제로 발표했다. 주요 국가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추이에 따른 가치관 변화를 비교·분석한 통계적 연구다.
이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국가는 경제성장과 가치관 변화 간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명목 GDP가 낮을수록 경제성장, 권위주의적 정부 등 ‘생존’에 필요한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보였다. 명목 GDP가 높아지면 성적 소수자, 환경 보호, 양성 평등 등 다양한 가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은 1981년부터 1996년까지 명목 GDP상으로 무려 7배 정도의 경제성장을 이뤘음에도 가치관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연구는 1981년부터 공통의 질문지로 100여개 국가의 가치관을 비교한 로널드 잉글하트의 ‘세계가치관조사’를 참고했다. 장 교수는 “해외 사례를 보면 경제성장에 따라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강화되다가 일정 시점이 지나면 민주의식이 발전한다”며 “한국 사회는 이런 보편적 패턴을 따르지 않은 유일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라고 분석했다.
송호근 교수는 이런 현상의 원인을 “한국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신뢰와 관용에 기반한 ‘공민(公民)’이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한국 사회는 시민운동으로 민주화를 이뤘지만 이후 각계각층에서 쏟아진 다양한 요구를 정치권이 제도화하고 조정하는 데는 미숙했다”며 “노동과 복지가 선순환하는 제도가 갖춰져야 시민들이 공동체에 대한 연대감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송복 명예교수 역시 “한국 사회는 효율성 위주의 산업화시대 성공모델의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사회 불평등의 해소를 위해선 기득권의 양보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복지 정치는 고소득층의 임금 양보에서 시작한다”며 “귀족노조 등의 임금 양보는 기업의 지불능력을 키워주고 이는 곧 고용 증대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는 “고용증대는 세수를 늘리고 이는 복지 혜택으로 변해 사회 구성원에게 혜택으로 돌아간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