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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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신창문화레저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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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0-64010849
1234
    현지어
  • 南新仓文化休闲街
  • nán xīn cāng wén huà xiū xián jiē
    분류
  • 여행/오락 > 여행지
    주소
  • 베이징 베이징 둥청구 东四十条22号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950.9km
난신창(南新仓,남신창)은 베이징 둥칭(北京市东城区)구 핑안다제(平安大街) 동쪽, 둥쓰스탸오차오(东四十条桥) 서남쪽에 위치해 있다. 난신창은 명, 청시대에 걸쳐 황실의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 중 하나였다.

명나라 영락제(永乐) 7년에 원나라 때의 창고(元代北太仓)토대 위에 처음 건설하여, 약 600년의 역사를 가진 곳이다. 현재 난신창은 규모면에서 가장 크고,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황실의 창고로서, 중국 전역에서도 보기드문 사례다. 따라서 수도 베이징의 역사(京都史)와 배로 양식을 실어날랐던 역사(漕运史), 황실 곳간과 비축물자들에 대한 역사(仓储史)를 보여주는 곳으로, 그 가치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곳간과 물자비축 역사는 유구하다. 대규모의 창고는 이미 한나라 때(汉代)부터 있었다. 예를 들면 산시(陕西, 섬서)성 화구(华县)의 화창(华仓)을 들 수 있다. 역대에 걸쳐 곡식창고의 설계는 매우 중시되었다. 보통 등급에 따라 곡식창고를 3등급으로 나누었는데, 이창(义仓), 창핑창(常平仓), 관창(官仓)으로 나누어졌다.

이창(义仓)은 농촌에서 스스로 만든 창고로 흉년을 대비하여 여유식량을 모아두던 창고다. 창핑창(常平仓)은 현급에 설치되었는 데 풍년에 농민들로 부터 곡식을 사들였다가(籴[dí]入), 흉년이 들면 곡식을 풀어(粜[tiào]出) 물가를 조절하던 역할을 했다. 마지막으로 관창(官仓)은 수도에 설치된 것으로 황실, 왕족, 관리들의 녹봉과 군대의 군량을 공급했으며 때론 흉년과 이재민을 구제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황제가 머물고 있는 수도에 세워진 관창은 다른지방의 관창에 비해 황실의 의미가 한층 더해졌으며, 난신창은 황실 창고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곳이다.

난신창은 역사적 가치를 가진 문화재로 고대에 식량 비축과 운송에 관한 살아있는 자료들을 가지고 있다. 특히 원대시절에는 남북대운하를 준설하고, 수도에 대규모의 식량창고를 건설하여 강남의 곡식과 물자를 대량으로 수도에 운송하였다. 당시 창고는 수도내 각각의 창고와 곳간에 물자를 운송하고, 적절히 저축하고 관리, 사용할 뿐만 아니라 당시 통치계급의 정권을 견고히하고 확보물자를 공급하는 주요형식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명청 양대 왕조에 걸쳐 민생 대계의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난신창은 이런 역사조건하에서 생겨나고 발전하였으며 지금까지도 여전히 옛 황청(皇城)의 동쪽에 굳건히 서 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난신창의 역사는 단지 곡식창고의 역사에 그치치 않고, 수도의 역사와 물자 비축에 관한 역사를 보여준다. 만약 남북을 잇는 대운하가 없었다면, 또 만약 원대 저명한 과학자 궈서우징(郭守敬)의 지휘에 의해 뚫린 퉁저우(通州)와 수도(大都)를 연결하는 충후이허(通惠河)가 없었다면, 난신창은 그 생존가치를 잃었을 것이고, 그 역사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탓에 난싱창은 원대에 세워진 수도의 역사와 물자의 운송, 비축에 관한 역사의 장면을 보여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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