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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단일화 합의 장소 - 김성수 숙소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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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3·1운동 단일화 합의 장소 - 김성수 숙소 터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서울 종로구 계동 계동길 84-6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3.0km
1919년 2월 초순 재동 최린의 집과 계동 김사용의 집(김성수의 숙소)에 중앙고보 숙직실에 모여 독립운동 거사를 모의하기 시작한 최린·송진우·현상윤·최남선은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민족대표로 처음에 박영효·윤용구·한규설·김윤식 등 대한제국 시절 요직에 있었던 명망가들을 추대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여의치 않자 천도교계와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거사를 추진하기로 하고, 최남선이 나서 평안도 기독교계의 지도자로 활약하던 이승훈과 접촉을 시도하였다.

1919년 2월 11일 최남선의 편지를 받고 급거 상경한 이승훈은 계동 김사용의 집(김성수의 숙소)에서 최남선을 대신해 나온 송진우와 만났다. 이 자리에서 송진우는 이승훈에게 독립운동 거사계획을 알리고 기독교 측의 참가를 요청하며 동지규합의 일을 부탁하였다. 이승훈은 그 자리에서 송진우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동지 규합을 위해 당일 평안북도 선천으로 돌아갔다. 이처럼 계동 김사용의 집(김성수 의 숙소)는 천도교 측과 기독교 측이 간접적으로나마 송진우를 매개로 첫 접촉을 갖고 독립운동 일원화의 계기를 마련한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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