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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대첩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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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青山里战斗纪念碑
  • qīng shān lǐ zhàn dǒu jì niàn bēi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지린 옌볜 조선족자치주 허룽시 青山村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566.7km
■ 청산리대첩 기념비

◎ 옛주소 : 화룡현 和龍縣 청산리 靑山里 백운평 白雲坪 입구
◎ 현주소 : 화룡현 和龍縣 청산리 靑山里 임장 林場 입구
◎ 사적지 : 청산리전투가 일어난 곳

◆ 청산리전투는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 사이에 청산리 일대에서 홍범도의 연합부대와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이 연합하여 백운평 전투를 비롯하여 10여 차례 일본군과 싸운 전투다. 2001년 세운 거대한 기념비의 뒷면 벽에는 “청산리 항일대첩 기념비”의 건립 취지문과 이 기념비 건립의 경위를 밝힌 글이 석판에 새겨져 있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청산리항일대첩기념비」
해내외를 진감한 청산리 항일 대첩은 항일투쟁사상 천고에 빛날 력사적 전역이어늘 1920년 10월 21~26일 김좌진•홍범도가 통솔하는 항일련합 부대는 화룡시 2~3도구에서 연변 각 민족 주민의 대폭적 지원하에 협동 작전으로 백운평 와록구 어랑촌 874고지 고동하반전투 등 대소 수차 격전을 거쳐 천으로 헤아리는 일본침략군을 섬멸하였거늘 소수로 다수를 타승한 이전과는 연변 내지 동북 지역 반일무장 투쟁사상 새로운 시편을 엮음은 물론, 조선 인민의 반일 민족 독립 운동을 주동한 력사로서 청사에 새겨졌어라.

◆ 청산리 대첩은 “일군 무적” 의 신화를 깨뜨리고 연변 내지 전국 각 민족 인민의 항일투지를 지대히 고무하고 일본 군국주의의 위풍을 추풍 락엽처럼 쓸어버렸거늘, 그 실패를 달가와 않은 일본침략군은 연변 지역 무고한 백성에 대하여 선후로 2,600명을 참살한 보복의 “경신녀 대학살”을 감행하였은즉 그 죄 하늘에 사무치고 그 참상에 치가 떨리는도다.

◆ 청산리 대첩 80 주년에 즈음하여 연변 지역 각 민족 인민은 이 기념비를 세워 선렬들의 충혼을 기리고 위 위업 천추 만대에 전하노라
경신년 대참안 중 조난 당하신 동포 원혼들이여, 고이 잠드시라!
청산리 전역 중 피흘려 분전하신 항일 열렬들이여, 영생불멸하라!
연변 각 민족 인민 삼가 드림
2001년 8월 31일 준공
「청산리항일대첩기념비 건립문」

◆ 청산리항일대첩기념비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인민정부와 화룡시인민정부의 령도하에 주내 여러 민족인민들의 공동한 노력에 의하여 오늘 여기에 세워지게 되었다. 5000평방미터의 부지에 넓이 25미터, 높이 17미터 60센티로 된 이 기념탑은 연변 건축설계원에서 설계하고 화룡시태달건축유한공사에서 시공하였다. 이 기념비 수전중 연변국제공공관계협회와 연변해외문제연구소가 일상사업을 주최하고 처리하였다.

◆ 우리는 각계 인사들의 여러 면으로 되는 성원과 지지를 받았다. 특히 한국광복회의 정성어린 지지를 받았다. 이에 진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린다.
◆연변여러민족인민청산리항일대첩기념비수건위원회
◆ 2001년 8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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