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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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거주지 보타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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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申采浩旧居 普咤庵
  • shēn cǎi hào jiù jū pǔ zhà ān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베이징 베이징 둥청구 建国门南大街 东便门桥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949.8km
■ 신채호 거주지 보타암

◎ 현주소 : 북경시 北京市 동화시북리 東花市北里 동정 東正 8, 숭문문 崇文門 동대가 東大街 동편문교 東便門橋 주변
◎ 사적지 : 1918년경 신채호가 거주하였던 곳

◆ 신채호는 1918년경 북경에서 보타암에 거주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한국사 연구와 집필에 전념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경에서 발행되던 『중화보中華報』, 『북경일보北京日報』등에 논설을 발표하면서 명성을 드날렸다. 이러한 논설을 통해 신채호는 ‘한중항일공동전선’을 결성하여 무장투쟁을 전개할 것을 주창하기도 하였다.

◆ 보타암은 도교사원인 태평궁太平宮에서 운하를 사이에 두고 북쪽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도시개발로 운하가 고가도로로 변하였고, 길건너 북쪽에는 고층건물이 들어서 있어 당시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 신채호(申采浩): 1880년(고종 17)∼1936년. 한말·일제강점기의 역사가·언론인·독립운동가. 본관은 고령(高靈). 호는 일편단생(一片丹生)·단생(丹生) 혹은 단재(丹齋). 필명은 금협산인(錦頰山人)·무애생(無涯生)·열혈생(熱血生)·한놈·검심(劍心)·적심(赤心)·연시몽인(燕市夢人), 가명은 유맹원(劉孟源).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에서 활약하며 내외의 민족 영웅전과 역사 논문을 발표하여 민족의식 앙양에 힘썼다. '역사라는 것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라는 명제를 내걸어 민족사관을 수립, 한국 근대사학의 기초를 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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