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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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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4
    현지어
  • 운현궁
  • unhyeongung
    분류
    주소
  • 서울 종로구 운니동 114-10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2.5km
역사 공부와 운현궁 한 바퀴종로3가에서 낙원상가를 지나면 대로에 긴 한옥 담이보인다. 담 너머는 조선 제26대 임금인 고종이 즉위하기전까지 살았던 잠저(潛邸)인 운현궁. 흥선대원군의사저로 조선 말 정치의 흥망성쇠가 깃든 유서 깊은곳이다. 경복궁의 중건, 서원 철폐, 세도정치 개혁 등이이루어졌으며 대원군의 섭정 10여 년 동안 사실상조정(朝廷)과 같은 역할을 했다. 대원군이 권력에서물러난 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 곳으로서역사적 상징성이 크다. 파란만장했던 조선 왕조 말기의역사적인 현장인 셈이다.정문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길게 늘어선 기와집이보인다. 예전에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 업무를 맡은이들이 거처했던 수직사(守直舍)다. 현재는 방 안에화로·가구·호롱불 등의 생활용품으로 당시의 모습을재현해놓았다. 솟을대문 안쪽에는노안당(老安堂)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추녀 끝이섬세하고 아름다운 전형적인 한식 기와집이다. 흔히 볼수 있는 단청이 칠해 있지 않아 기둥이나 벽면이화사하지는 않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더 단아하고정갈한 느낌을 준다. 노안당은 대원군이 사랑채로사용하던 곳으로 민씨 척족의 세도 정치 아래에서유배되다시피 은둔 생활을 했던 건물이다. 만년에임종한 곳도 노안당의 큰방 뒤쪽에 있던 속방이었다.<노락당, 가상 투어 파노라마>360도 회전 입체 영상으로, 마우스나 키보드의 화살표키를 이용해 확대, 축소가 가능합니다.사대부가와 궁궐의 특성을 고루 갖추다노안당을 지나면 운현궁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중심이되는 노락당(老樂堂)이 있다. 가족들의 회갑이나 잔치등 큰 행사 때 주로 이용되었던 곳이다. 한때는궁궐처럼 화려하고 웅장했다고 한다. 당시 대제학김병학은 노락당과 하늘 사이가 한자 다섯 치밖에 안된다고 했던가. 흥선대원군의 권세가천하제일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다.노락당 왼편으로 돌아서면 안채인 이로당(二老堂)이있다. 여성들이 주로 사용했던 곳이라 안으로 들어가기어렵게 ㅁ자를 이루고 있으며 마당 한쪽에는 오래된우물이 있다. 사대부가와 궁궐의 특성을 동시에 갖추고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유물전시관이 마련되어운현궁을 수리·복원하면서 발견한 유품과 생활가구들을 전시한다.운현궁 옆으로는 크림색의 고풍스러운 서양식 건물이있다. 조선 시대 말기의 전형적인 건축 양식을 하고있는 이곳과 동떨어진 모습이 의아하면서도 유럽의저택 같아 궁금증을 자아낸다. 운현궁 양관(洋館)이다.가까운 거리인 듯하지만 지금은 운현궁이 아닌덕성여대 평생교육원 소유다. 양관에 이르기 위해서는운현궁을 나와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을 통해야 한다.조선 후기 최고의 권력가들이 모여 개혁 정치를도모했던 운현궁은 소규모의 사적으로 남아 있지만여느 궁궐 못지않은 행사들이 열린다. 고종, 명성황후가례 재현 행사, 국악 공연 등의 문화행사가 끊이질않아 시민들의 전통 문화 교육장으로서 큰 몫을 하고있다.<운현궁 전시실, 가상 투어 파노라마>360도 회전 입체 영상으로, 마우스나 키보드의 화살표키를 이용해 확대, 축소가 가능합니다.* 이로당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 운현궁 안채 이로당과 우물* 흥선대원군의 사랑채였던 노안당 전경* 추사 김정희의 글씨체를 집자해 대원군이 직접 쓴 현판* 노락당 건물들과 마당* 운현궁에서 운영하는 예절 교육 프로그램* 예전의 모습을 재현해놓은 방의 내부* 운현궁의 중심 건물인 노락당 전경* 운현궁 노락당 건물* 대원군이 거닐었음직한 후원 길공간개요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있는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의 사가. 고종이 이곳에서 열두 살 때까지 자라다 왕이 됐으며 생부(生父) 이하응은 흥선대원군이 됐다. 운현궁(雲峴宮)에서 대원군은 서원 철폐, 경복궁 중건, 세제 개혁 등 많은 사업을 추진했다. 원래는 궁궐에 견줄 만큼 크고 웅장하였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사랑채 노안당, 안채 이로당과 노락당만이 남아 있다. 정원 등은 잘 보존되어 있으며 인기 드라마 의 촬영지로도 쓰인 양관이 가까이에 있다.이용시간 11 ~ 3월 09:00 ~ 18:00 4 ~ 10월 09:00 ~ 19:00 매표 시간은 관람 시간부터 관람 종료 30분 전까지운영요일 화수목금토일휴무일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국가 지정 공휴일인 경우 해당 날짜에 개관하고, 화요일 휴무)가격 어른 (25세 이상-64세 이하) 700원 30이상 단체550원 청소년 (13세 이상-24세 이하) 300원 30이상 단체250원 군인 (제복 입은 하사 이하 군인) 300원 30이상 단체250원할인정보 일반 단체 할인 혜택 550원 청소년 단체 할인 혜택 300원 군인 단체 할인 혜택 250원 - 무료 - 65세 이상 : 신분증제시 12세 이하 :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 국가유공자 : 유공자카드 또는 수첩 제시 장애인 : 장애인카드 또는 수첩 제시 한복 착용객 : 한복 착용자 점심시간 : 화~금요일 12시~13시 다둥이 가정 : 다둥이 카드 제시/카드에 명시된 가족 수만큼 입장 군인명문가 : 관련 증명서 제시 장애인동반 1인 : 장애인 동반시 카드제시 국빈 및 외교사절 : 국빈 및 외교사절과 그 수행자 5·18민주유공자 참전유공자 장애인 편의 장애인용 화장실 있음 주 출입구에서 내부 마당 연결 통로는 턱이 없지만 유물전시관 입구와 전시관 가운데는 턱이 있는 곳도 있어 주의 요망한국어 안내 고종 명성황후 가례 재현 행사(4월, 9월) 궁중의상 패션쇼(9월) 운현궁 전통예절학교 운현궁 문화교실외국어 안내 가능유적지 지정 사적 제257호지정 내역 서울특별시 사적 제257호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동에 있는 운현궁은 조선조 제26대 임금인 고종의 잠저(潛邸)이며 흥선대원군의 사저. 한국 근대사의 유적 중 대원군의 정치 활동의 근거지로서 유서 깊은 곳이다. 흥선군 이하응이 자신의 아들인 고종을 왕위에 즉위시킨 산실이자 집권 이후 대원군의 자리에서 왕도정치로의 개혁을 단행한 곳이다. 대원군이 권력에서 하야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정치적 영향력을 내외에 행사한 곳으로 고종이 즉위하기 전까지 살았던 잠저(潛邸)였기에 역사적 상징성이 더욱 크다. 흥선군의 사저가 운현궁으로 불리게 된 것은 1863년 12월 9일 흥선군을 흥선대원군으로, 부인 민씨를 부대부인으로 작호를 주는 교지가 내려진 때부터였다. 한일합방 후 일제는 1912년 토지 조사를 실시하면서 대한제국의 황실 재산을 몰수하여 국유화하고 이왕직 장관을 시켜서 운현궁을 관리하게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운현궁을 유지·관리하는 일은 소유권에 관계없이 이로당의 안주인들이 계속 맡아했다. 운현궁의 소유권이 다시 대원군의 후손에게 넘겨지게 된 것은 1948년 미군정청의 공문에 의해서였다. 이후 그 소유권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정부와 대원군 후손 사이에 법적 공방이 있었으나 그 해 9월 21일 결국 대원군의 5대손 이청(李淸, 1936~)씨에게 운현궁 소유권이 확정되었다. 그러던 것이 1991년 운현궁을 유지, 관리하는 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기면서 양도 의사를 이청씨가 밝힘에 따라 서울시에서 매입하게 되었고, 1993년 12월부터 보수 공사를 시작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된 것이다.관리기관 운현궁 관리사무소관광팁 운현궁 양관 : 본래 흥선대원군의 손자인 이준용을 위해 지은 건물로 양관이라고 불린다. 프렌치 르네상스 풍의 석재를 혼용한 벽돌 2층 저택에 16개의 천장 문양이 모두 다르다. 1948년 덕성여자대학교에 매각되어 한때 교사로 쓰였고 지금도 평생교육원으로 쓰인다. 인기 드라마 의 촬영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운현궁 정례 행사, 운현궁 일요 예술마당, 고종 명성후 가례(국혼례) 행사 안내 - 궁중의상체험 - 대원군행차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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