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남도 남동부에 있는 군. 북부는 봉천군, 동부는 배천군, 서부는 청단군과 잇닿아 있으며 남부는 서해에 면해 있다. 동서(개안리~발산리) 간의 길이는 21km이고, 남북(염전노동자구~봉덕리) 간의 길이는 38km이며, 면적은 479.37㎢(섬의 면적 0.22㎢)로서 도 전체면적의 5.67%를 차지한다. 앞바다에는 10개의 섬이 있으며 해안선의 길이는 55.2km이다. 현재 행정구역은 1읍 1구 27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 소재지는 연안읍이다.
1309년에 목(牧)을 폐지하고 부제(府制)를 실시할 때 서해도(西海道) 온주목(溫州牧)을 고려 태조 왕건이 이 지역을 기반으로 건국 위업을 달성하는데 크게 기여하여 끝없이 안전한 고장으로 되었다는 뜻에서 연안부(延安府)라 하였다 한다.
연안군에서 신석기시대의 유적유물이 발굴된 것은 이 시기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한때 백제의 손아귀에 들어 있다가, 후에 고구려의 판도로 되어 동음홀(冬音忽)·동삼홀(冬彡忽)·도랍현(刀臘縣)이라고 불렸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신라의 영토로 되어 동음홀을 해고군(海皐郡)으로 개칭하고, 도랍현은 구택현(雊澤縣)으로 개칭하였다.
고려왕조가 들어선 후 해고군은 염주(鹽州)로 개칭되었고, 구택현은 백주(白州)로 개칭되었다. 1309년에 서해도 연안부로 되었고, 1395년에는 풍해도(豊海道) 연안도호부(延安都護府)로, 1417년에는 황해도 연안도호부로 되었다. 1895년에는 해주부(海州府) 연안군으로, 1896년에는 황해도 연안군으로 개편되었다. 1912년에는 배천군이 연안군에 편입되면서 연백군(延白郡)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연안면(延安面), 호남면(湖南面), 해성면(海城面), 송봉면(松峰面), 해룡면(海龍面), 용도면(龍道面), 괘궁면(掛弓面), 목단면(牧丹面), 봉서면(鳳西面), 봉북면(鳳北面), 은천면(銀川面), 화성면(花城面), 금산면(金山面), 도촌면(道村面), 해월면(海月面), 온정면(溫井面), 유곡면(柳谷面), 운산면(雲山面), 석산면(石山面) 등 19개 면을 관할하였다. 1939년에는 연안면이 연안읍으로 개편되었다.
1945년에는 연백군이 황해도 연백군과 경기도 연백군으로 분리되면서 황해도 연백군은 운산면, 화성면, 금산면, 목단면, 괘궁면 등 5개 면을 관할하고 경기도 연백군은 연안면, 봉서면, 호동면, 호남면, 송봉면, 해성면, 해룡면, 용도면, 봉북면, 은천면, 도촌면, 온정면, 해월면, 유곡면, 석산면, 벽성군의 청룡면(靑龍面), 추화면(秋花面), 일신면(日新面), 내성면(來城面) 등 19개 면을 관할하였다. 1950년에는 평산군(平山郡) 적암면(積岩面)과 금천군(金川郡)의 산외면(山外面), 서북면(西北面)이 황해도 연백군에 편입되었고, 경기도 연백군이 해방되어 황해도 남연백군으로 개편되었다.
1954년 10월에 황해도가 황해남도와 황해북도로 분도되면서 황해남도 연안군으로 되었다. 1956년 9월에는 정촌리 일부를 분리하여 오현리(梧玄里)를, 호서리 일부와 호남리 일부를 통합하여 송호리(松湖里)를, 청정리 일부를 분리하여 심평리(深坪里)를 각각 신설하였고, 1958년 6월에 해남리 일부로 염전노동자구(鹽田勞動者區)를 신설하였다.
1974년 5월에 흥산리, 심평리, 청정리가 청단군에 편입되었고, 1991년 11월에 고포리를 동산리(東山里)로 개칭하였다. 2003년 현재 행정구역은 1읍(연안읍), 1구(염전노동자구), 27리(개안리, 도남리, 동산리, 나진포리, 용호리, 발산리, 봉덕리, 부흥리, 소아리, 소정리, 송호리, 신양리, 아현리, 오현리, 와룡리, 자양리, 장곡리, 정촌리, 창덕리, 천태리, 청화리, 풍천리, 해남리, 해월리, 호남리, 호서리, 화양리)로 구성되어 있다. 연안군 소재지는 연안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