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남도 남부에 있는 군. 북부는 태탄군, 동부는 벽성군ㆍ강령군과 잇닿아 있으며 남부와 서부는 서해에 면해 있다. 북서~남동(제작리~장송리) 간의 길이는 43km이고, 북동~남서(진해리~연봉리) 간의 길이는 18km이며, 면적은 638.69㎢(섬의 면적 18.51㎢)로서 도 전체면적의 7.65%를 차지한다. 가까운 바다에는 창린도(昌麟島), 기린도(麒麟島), 용호도(龍湖島)를 비롯한 20여 개의 섬이 있다. 해안선의 길이는 314.2km이다. 현재 행정구역은 1읍 3구 24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 소재지는 옹진읍이다.
고구려시기에는 옹천이라 하였고 고려 초에 옹진이라 불렀다. 옹진군은 옹천에서 ‘옹’자를 따고 이 고장에 나루가 있다 하여 나루 ‘진(津)’자를 붙여 이름지었다. 원래 옹진이란 말은 이 고장의 화산골마을이 벼랑으로 둘러싸여 모양이 독과 같고, 그곳에 나루가 있다는데 기인한다.
옹진군에서 신석기시대의 유적유물이 발굴된 것은 적어도 이 시기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삼국시대에 고구려의 영토가 되어 옹천(甕遷)이라 불렸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신라의 판도로 되어 폭지군(瀑池郡)에 속하였다. 고려왕조가 들어선 후 옹진(甕津)으로 개칭되었으며 후에 옹진현으로 되었다. 조선이 건립된 후 1417년에 옹진현은 해주목(海州牧)의 속현으로 되었다.
1895년에 해주부(海州府) 옹진군으로 되었다가, 1896년에 황해도 옹진군으로 개편되어 동면(東面), 서면(西面), 남면(南面), 북면(北面), 용천면(龍泉面), 용연면(龍淵面), 가천면(茄川面), 교정면(交井面), 구주면(邱洲面), 봉현면(鳳峴面), 마산면(馬山面), 부민면(富民面), 신흥면(新興面), 아미면(峨嵋面) 등 14개 면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구주면과 봉현면·용연면 일부를 병합하여 봉구면(鳳邱面)으로, 동면과 남면을 병합하여 동남면(東南面)으로, 신흥면과 아미면을 병합하여 흥미면(興嵋面)으로 각각 개편하여 관하에 동남면, 흥미면, 봉구면, 서면, 용천면, 교정면, 가천면, 북면, 마산면, 부민면, 용연면 등 11개 면을 두고 관할하였다. 1938년에 마산면이 옹진읍(甕津邑)으로 개편되어 옹진읍, 부민면, 용연면, 봉구면, 흥미면, 동남면, 북면, 가천면, 교정면, 서면, 용천면 등 1읍 10면을 관할하였으며, 1940년에 옹진읍을 옹진면으로 강등하였다. 광복 후 군영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북위 38°선 이남지역이 남반부에 속해 있다가, 지난 6·25전쟁시기 북반부지역에 소속되었다.
1954년 10월에 황해도가 황해남도와 황해북도로 분리되면서 황해남도 옹진군으로 되었다. 같은 해에 순위리와 어화도리를 강령군에 편입하였다. 1956년에 태탄군 은동리가 이관되었으며, 1961년에 도원리가 옹진읍에 흡수되었다. 1967년 10월에 옹진읍·은동리·수대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옹진노동자구(甕津勞動者區)로 개편하고, 1972년에 구곡리를 구곡노동자구(九谷勞動者區)로 승격하였다.
1977년에 염불리를 국봉리(國峯里)로, 소강리를 연봉리(蓮峯里)로 각각 개칭하였다. 1981년 6월에 남해리를 남해노동자구(南海勞動者區)로 승격하였고, 1993년 12월에 노호리를 원사리(院寺里)로 개칭하였으며, 1996년 7월에 삼산리 일부를 분리하여 선풍리(先豊里)를 신설하였다.
2003년 현재 행정구역은 1읍(옹진읍), 3구(구곡노동자구, 남해노동자구, 옹진노동자구), 24리(구랑리, 국봉리, 기린도리, 대기리, 냉정리, 연봉리, 용천리, 용호도리, 입석리, 만진리, 본영리, 삼산리, 서해리, 선풍리, 송월리, 수대리, 원사리, 은동리, 장송리, 전산리, 제작리, 진해리, 창린도리, 해방리)로 구성되어 있다. 옹진군 소재지는 옹진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