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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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인국민회 총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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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오락 > 기타
    주소
  • 캘리포니아 로스 앤젤레스 90007 1368 W Jefferson Blvd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9,585.5km
◆ 상태 : 잘 보존되어 있음
◆ 관련사항 : 1938년 4월 17일 부활절에 낙성된 대한인국민회 총회관 건물
◆ 관련자료 : 홍선표,「1930년대 재미한인의 통일운동」,《한국독립운동사연구》10, 1996
◆ 의견 : 건물에 대한 보수와 기념관으로의 활용이 시급함
◆ 특기사항 :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가 관리
◆ 내용 : 1935년 국민회 총회장으로 부임한 崔鎭河가 노인구제, 2세 청년의 교양, 임시정부 후원을 목적으로 국민회 중심의 합동운동을 전개하여 국민회의 위상이 크게 제고되자 1936년부터 새 총회관 건립을 추진하였다. 1936년 12월 27일부터 총회관 건물신축을 위한 의연모금을 시작한 후 한인 동포들은 7,109.78 달러의 의연금을 모아 1938년 4월 17일 부활절에 낙성식을 거행하였다. 국민회총회관의 신축으로 북미 대한인국민회는 샌프란시스코 시대를 마감하고 로스앤젤레스 시대를 열었다.
대한인국민회는 민족주의의 이념을 가지고 미주 한인사회의 안녕과 자치 그리고 조국의 독립을 최고 목표로 삼았다. 그 조직은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중앙총회 산하에 북미·하와이·멕시코·시베리아·만주 등 5개 지역에 지방총회를 두었으며, 그 밑에 116개소의 지방회를 두어 사실상 해외독립운동의 중추적인 기관으로 성장하였다. 1913년 5월 하와이지방총회는 하와이 지방정부로부터 사단법인의 관허를 얻었고 북미지방총회는 1914년 캘리포니아주 당국으로부터 법인 관허를 얻어 정부적 기능도 갖추었다. 이리하여 대한인국민회는 총영사관의 임무까지 대행하여 한인의 생명과 재산 및 권익을 증진하는 데 앞장섰다. 당시 미주 한인은 대부분 국민회 회원으로 등록하였으며 의무금으로 회비를 납부하였다. 이러한 대한인국민회는 1921년 3월 하와이지방총회가 대한인교민단으로 바꾸어 떨어져 나간 뒤, 북미 중심의 대한인국민회총회로 축소될 때까지 미주 한인사회의 민족운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