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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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옥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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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4
    주소
  • 서울 종로구 효제동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3.3km
** 길이름 유래 : 한지 김상옥(1890-1923) 열사가 1923년 일본무장경찰 1000여명과 총격전을 벌이다가 자결한 곳으로, 그의 용기와 애국심을 기려 ‘김상옥길’로 명명되었다.


** 스토리 : 내 이름은 와타나베(渡邊). 조선이 일본제국의 통치를 받던 중인 1923년, 16살이었던 나는 종로경찰서에 근무하는 순사보였다. 내가 서에서 주로 하는 업무는 순사들이 기록한 보고서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종로는 워낙 사람들이 많고 시끄러운 곳이라 크고 작은 사건들의 보고서가 하루에도 수십 건이 넘었으므로 나는 언제나 업무에 치여 살았다. 그날도 그랬다. 지금의 기억으로는 1월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어이, 와타나베. 오늘도 수고 좀 해야겠구나!”

순사들은 퇴근하며 나의 책상 위에 보고서들을 아무렇게나 쌓았다. 다음날이면 또 새로운 보고서들이 마구 생겨날 것이기 때문에 그날의 보고서는 그날 정리하는 것이 우리 경찰서의 원칙이었다. 순사들이 퇴근 직전 겨우 마쳐서 낸 보고서들 때문에 당연히 나는 매일 야근을 해야만 했다. 나는 그 당시 총각이라 집에 돌아가도 기다리는 가족이 없었으니 야근이라지만 그리 괴로운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순사들이 잔소리를 해대는 낮보다 조용히 홀로 일을 할 수 있는 밤 시간을 즐기기도 했다. 그날 나는 저녁 8시가 조금 넘어 허기를 느꼈다. 하숙집 아주머니가 싸준 식은 도시락을 해치우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경찰서 한쪽 구석에 간이로 마련된 탕비실(湯沸室)로 갔다. 그때였다. 엄청나게 큰 폭음이 울리며 서편 담벼락과 가까운 내 책상 쪽 벽면이 산산조각 났다. 파편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폭발 소리가 경찰서 내부에서 공명하며 유리창들이 깨졌다. 나는 직접 파편을 맞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소리에 정신을 반쯤 잃었다. 경찰서를 나와 보니 밖도 아수라장이었다. 구경꾼들이 경찰서를 가리키며 입을 움직여댔지만 폭음에 먹먹해진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다음은 술에 취한 것처럼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숙집 아주머니 얘기로는 집에 제 발로 잘 걸어 들어왔단다.

한밤중에 순사 몇이 나를 찾아왔다. 자다가 일어난 나는 속옷차림에 그들을 맞았다. 순사들은 멀쩡한 나를 보자 신기한 듯 물었다.

“와타나베! 괜찮은 거야?”

“아... 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어떤 미친 녀석이 우리 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했어.”

“폭탄이요?”

“그래. 넌 정말 운이 좋았던 거야. 네 자리 쪽 벽이 완전히 산산조각 났더라고. 멀쩡한 거 확인했으니 됐다. 지금 경찰서는 비상 중이지만 넌 일단 좀 자고 아침에 출근해라.”

다음날 출근을 해보니 경찰서는 여전히 엉망이었다. 듣자니 경찰은 밤새 범인을 찾아 종로 전역을 수색했다고 한다. 성과는 전혀 없었던 것 같지만. 아침부터 시작된 현장검증에는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의 검사장과 총독부의 경무국장까지 나와서 수사를 지휘했다. 피해라고 해봐야 건물 조금 부서진 것이 다였지만 종로경찰서라는 공권력의 상징에 누군가 폭탄을 투척했다는 사실이 총독부에 우려를 안긴 것이다. 현장검증을 마친 경찰은 다시 대대적으로 수사를 시작했다. 나는 수사본부에서 폭발 당시의 정황 등을 간단히 진술하고 경찰서 안에 마련된 임시 책상에서 평소와 같은 업무를 시작했다. 순사들 대부분이 밤낮으로 수색작전에 나가있는 탓에 보고서의 양은 현저하게 줄었지만 분위가 분위기다보니 정시 퇴근이란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다만 차례가 되면 집에 가서 잠깐 눈을 붙이고 다시 서에 나오는 식이었다.

정리할 정식 보고서는 별로 없고 자리는 지켜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나는 자연히 순사들이 현장에서 적어낸 간이 보고서를 읽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현장에는 안 나가 보았지만 간이 보고서를 통해 현장 상황을 읽다보니 수사의 흐름이 잡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시간 때우기로 시작했지만 읽다보니 사건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나는 사건의 주동자에 대해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던 것이다. 누구에겐가 말을 하고 싶어서 답답했던 나는 아쉬운 대로 우리 서에서 심부름을 하는 조선인 아이를 붙잡았다.

“야, 너 우리 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범인에 대해서 들은 게 있니?”

아이도 궁금했던 듯 되물었다.

“아니오, 순사보님은 아시는 게 있으세요?”

“그게 말이야... 범인은 아주 귀신같은 녀석인 것 같아. 귀신도 잡는다는 고등계 형사들이 총출동 했는데도 목격자도 못 찾고 증거도 못 찾고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만 있거든.”

“그러면 귀신같은 사람이 아니라 귀신보다 더 날랜 사람인가보네요.”

“그래, 듣고 보니 그러네.”

귀신보다 더 날랜 사람이라. 나의 호기심은 더욱 강해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난항이던 수사의 초점은 한 사건 때문에 어느 인물로 모아지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잡아다가 심문하는 막무가내 수사도 빛을 발할 때가 있는 모양이었다. 확실치도 않은 정보를 듣고 무작정 김상옥이라는 사람을 체포하러 갔던 경부보가 어께에 총을 맞는 등 오히려 당하고 온 것이다. 그날로부터 수사의 방향은 김상옥이라는 조선인을 체포하는 것으로 선회하였다. 결국 무장경찰 천여 명은 김상옥이 도주한 남산 주위를 포위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귀신보다 더 날랜 사람.’

나는 머릿속에서 그 이미지를 지울 수가 없었다.

‘귀신보다 더 날랜 사람, 김상옥.’

이름까지 붙여 입으로 웅얼거려보기도 했다. 그날 김상옥을 체포하러 갔던 사람은 경부보를 포함, 15명. 그것도 고등계 소속의 정예요원들이었다. 김상옥은 말 그대로 귀신보다 더 빠르게 그들을 제압하고는 상처조차 입지 않고 달아났다. 어느덧 내 마음 속의 호기심은 그에 대한 막연한 선망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은 보고서에서 신기한 내용을 발견하고 마치 그의 무용담을 읽는 것처럼 좋아하기도 했다.

‘용의자 김상옥을 잡기 위해 발자국을 추적하니 발자국 사이가 5미터씩 떨어져 있었다.’

어떻게 인간이 한걸음에 5미터를 걸을 수 있단 말인가. 날래다 못해 축지법까지 쓰는 것이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김상옥에 관한 보고서 삼매경에 빠져있을 때, 서가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헐레벌떡 들어온 순사 하나를 잡고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지금 난리 났다. 그 김상옥이라는 조선인이 드디어 엄청난 사고를 쳤어.”

순사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경찰이 제보를 받고 김상옥이 숨어있는 집으로 급습했다. 고등계 형사들은 벽장문을 열고 권총을 발사했지만 오히려 김상옥이 응사한 탄환에 맞아 쓰러졌다. 형사들이 당황하는 사이, 김상옥은 다락의 벽을 차서 뚫고 옆집인 효제동 74번지, 75번지를 지나 76번지로 피신했다. 그러나 76번지에 김상옥이 있다고 판단했던 경찰은 김상옥이 어느새 다시 72번지로 이동했다는 소식을 듣고 혀를 내두르면서 다시 천여 명의 무장경찰들을 투입시켜 그를 포위했다.

거기까지 들은 나는 더는 서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내 눈으로 그 대단한 사람을 꼭 한번은 보고 싶었다. 나는 서를 나와 효제동으로 달렸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무장한 경찰은 김상옥을 에워싼 채 큰 소리로 김상옥에게 항복을 권유하고 있었다.

30분이 지나자 경찰은 총격을 개시했다. 잠잠하던 김상옥도 쌍권총으로 대응사격을 하기 시작했다. 1대 1000의 치열한 총격전이 시작된 것이다. 김상옥은 건물 담벼락 깊숙이 몸을 숨긴 채 대응사격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체포가 용의치 않았다. 경찰은 지붕으로 올라가 공격할 계획을 세웠지만, 김상옥은 지붕에 오른 경찰 2명을 잇따라 명중시켜 계획을 무산시켰다. 약이 오른 경찰은 말 그대로 무차별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72번지의 대문까지 부순 경찰은 총을 난사했다. 경찰은 72번지 정문과 뒷집인 74번지에서 협공을 펼쳤지만 그는 화려한 사격술로 3명을 쓰러뜨려 물러나게 만들었다. 그러나 재차 경찰의 난사 공격을 받은 김상옥은 화장실로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현장에서 피를 발견하고 그가 부상을 입은 것으로 판단했다. 그 얘기를 전해들은 나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나를 본 순사들은 일본인이 당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우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김상옥이라는 인물에게 감동을 하여 눈물을 흘렸다. 아무리 적이긴 하지만 1000여명의 적을 맞아 꿋꿋이 홀로 싸우는 모습은 그때까지 나의 영웅이었던 미야모토 무사시를 떠올리게 했다. 김상옥은 나에게 새로운 영웅이었다.

좁혀지는 포위망 속에서 총알이 떨어진 김상옥은 결국 마지막 남은 총알 한 발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내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나는 조심스럽게 순사들을 헤치고 김상옥이 자결한 현장으로 다가가 보았다. 그는 양 손에 권총을 꽉 쥐고 두 눈을 부릅뜬 채 죽어있었다. 당시 그의 나이가 34세였다.

이제 나도 100살이 넘었으니 죽을 때가 가까웠다. 그러나 오늘까지 난 하루도 그의 이름을 잊어본 적이 없다. 그는 내 나라의 적이었지만 나에게는 영웅이었다. 한 인간이 영웅이 되는 데에 그가 어느 편에 서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주어진 운명에 맞서 최선을 다해 이겨가는 모습,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살아가다가 지칠 때마다 힘이 되는 존재야 말로 진짜 영웅이다.

한국인으로서 김상옥길을 걷는 이들이라면 그 영웅의 존재가 더욱 절실하게 느껴질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 가상의 일본인을 화자로 하여 쓴 글이지만 당시 김상옥의 활약상은 자료를 근거로 하였으며, 객관성을 지키려고 애썼다.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서울4대문 안 길 이름), 2010,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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