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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수 생가-남강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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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장태수 생가-남강정사
  • Jangtaesu Birthplace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전북 김제시 금구면 서도리 65-1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198.7km
장태수(張泰秀 ; 1841∼1910)는 조선말기 문신으로 일제가 무력으로 한국을 강제 병합하여 식민지로 만들자 순국으로 항거한 애국지사다.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성안(聖安), 호는 일유재이다. 전라북도 김제 출신으로 내부협판 장한두(張漢斗)의 아들이다. 1861년(철종 1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承文院權知副正字)에 제수된 뒤 전적, 선략장군부사과(宣略將軍副司果), 예조정랑, 사헌부지평, 정언, 장령 등을 역임하였다. 1867년(고종 4) 양산군수에 임명되어 부국양병에 주력하고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조영규(趙英珪)의 제단을 고쳐 제향하였다. 그의 공이 인정되어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제수되고 1872년 고종을 수행하여 송도에 다녀왔다. 그 뒤 병조참의, 돈령부도정(敦寧府都政), 동부승지,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춘추관수찬관(春秋館修撰官) 등을 지내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 중에는 고산현감에 부임하였다. 1895년 단발령이 내리자 사직하고 스스로 남강거사(南岡居士)라 자칭하고 은거하였다. 그러나 1904년 이후 다시 관계에 진출하여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시종원부경(侍從院副卿), 칙임관 등에 임명되었다. 1910년 일제가 한국을 강점하고 회유하자 단식 끝에 절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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